[오피니언 칼럼] 최창일 시인, "트로트, 교과서에 오르다 … 대중의 노래에서 배움의 언어로"

  • 등록 2025.11.07 10: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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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교육화, 문화 다양성의 새로운 이정표
전통과 대중의 경계를 허무는 음악 교육의 진화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가수 송가인의 대표곡 '가인이어라'가 중학교 음악 교과서(박영사)에 실렸다. 트로트라는 장르가 우리나라 정규 교과서에 공식 등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겉으로 보면 작고 사소한 변화 같지만, 이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일이다. 오랜 세월 ‘대중의 노래’로 불리던 트로트가 '배움의 언어'로, 즉 교육의 영역으로 들어왔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깊다.

트로트는 한국 근현대사의 그늘과 함께 걸어왔다. 일제강점기의 ‘타향살이’, ‘목포의 눈물’ 같은 노래들은 고단한 식민의 세월 속에서 삶을 위로하는 노래였다.

해방과 전쟁, 그리고 산업화의 시대를 지나며 트로트는 서민의 정서를 담은 '국민의 음악'으로 성장했다. 남진, 나훈아, 이미자 같은 이름들은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시대의 감정을 노래한 상징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음악의 무대를 바꾸었다. 1990년대 이후 대중음악의 중심이 발라드, 아이돌, 힙합으로 옮겨가면서 트로트는 '옛 노래', '촌스러운 음악'으로 밀려났다. 방송에서 자취를 감췄고, 젊은 세대의 기억에서도 멀어졌다. 그럼에도 트로트는 사라지지 않았다. 라디오의 신청곡, 동네 잔치, 부모 세대의 노래방에서 은밀히 이어져 왔다. 그 침묵의 강 위로 다시 빛을 비춘 인물이 바로 송가인이다.

2019년 방영된 <미스트롯>은 트로트의 르네상스를 열었다. 송가인은 단순한 오디션 우승자가 아니라, '정통 트로트의 복원자'였다. 판소리를 전공한 그는 국악의 시김새와 호흡을 트로트 창법에 녹여내며, 잊혀가던 전통의 미학을 다시 불러냈다. 그의 대표곡 '가인이어라'는 떠는 음, 꺾는 음, 점점 세게·여리게 같은 섬세한 표현을 통해 트로트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 노래가 교과서에 실린 것은 단순히 인기가 높아서가 아니다. '가인이어라'는 전통과 대중, 음악성과 교육성이 교차하는 지점에 선 작품이다.

교과서에는 "트로트의 시김새를 살려 노래하고 발표해 보자"는 문장이 함께 실렸다. 학생들이 직접 트로트 창법을 배우고 그 안의 정서를 체험하게 하는 학습 활동이다. 트로트가 처음으로 교실 안에서 ‘배우는 음악’이 된 것이다.

그 의미는 단지 음악 교육의 확장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교과서 속 ‘음악’이라 하면 대부분 서양 고전음악이나 국악 중심이었다. 대중가요는 언제나 변두리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번 교과서 등재는 대중음악이 더 이상 ‘비공식 문화’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정체성을 담은 하나의 예술로 인정받았다는 상징이다. 음악 장르의 문제를 넘어, 문화적 다양성을 교육 속에서 실천하는 일이다.

트로트는 시대의 거울이다. 서민의 애환을 품은 그 멜로디에는 한 세기의 한국 현대사가 스며 있다. 노동의 땀, 이별의 눈물,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 그 선율 속에 흐른다. 트로트의 교과서 등재는 이 역사와 감정이 미래 세대에게 전해지는 새로운 통로가 열렸다는 뜻이다. 학생들은 베토벤의 <운명>과 함께 '가인이어라'를 배우며 '우리의 소리', '우리의 정서'를 만난다.

음악 교육의 본질은 음정과 박자를 익히는 데 있지 않다. 노래를 통해 시대를 읽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며,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화를 공감하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트로트는 가장 한국적인 교육 재료다. '한'과 '흥', 절제된 감정과 폭발하는 감성이 교차하는 그 구조 속에 한국인의 언어와 정서, 생활의 리듬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송가인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통 트로트와 판소리는 비슷한 점이 많아요. 저에게는 둘 다 뗄 수 없는 장르죠."

그의 말처럼 트로트는 단순한 유행가가 아니다. 세월을 견디며 한국인의 마음속을 흐른 ‘삶의 노래’다.

이제 그 소리가 교과서의 악보로 옮겨져, 새로운 세대의 목소리로 다시 울려 퍼진다. 트로트가 교과서에 실린 일은 하나의 뉴스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대중문화가 스스로의 가치를 자각한 사건이며, 세대와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문화적 진화의 표지다.

'가인이어라'를 부르는 교실의 노래 속에서 우리는 전통이 현재와 만나고, 대중이 예술이 되는 장면을 본다. 트로트는 이제 '추억의 노래'가 아니라 '배움의 음악'이다.

한국 대중음악사의 새로운 악보 한 장이 이렇게 완성되고 있다.


-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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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섭 기자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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