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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창일 시인, 병든 아내 곁에서 피어난 언어의 꽃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 동사(動詞)의 시학으로 읽다
사랑은 '존재;가 아니라 '움직임'이었다… 돌봄과 견딤으로 완성된 한국 서정시의 고전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문장을 해석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은 읽는 순간 이미 독자의 감정을 붙든다. 이 시는 사랑의 시이면서 동시에 병상일기이고, 상실의 기록이며, 존재를 붙드는 기도의 언어다.

사람들은 이 시를 눈물의 시, 간호의 시, 순애보의 시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도 읽을 필요가 있다. 바로 '명사'가 아니라 '동사'의 시로 읽는 것이다.

명사는 대상을 고정하지만, 동사는 살아 움직인다. 명사가 존재를 말한다면, 동사는 삶을 말한다. '접시꽃 당신'의 핵심은 ‘아내’라는 존재 자체보다 그 존재를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화자의 몸과 마음에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 시는 동사로 증언한다.

기다리고, 닦아주고, 바라보고, 견디고, 부르고, 울고, 살아내는 동사들. 그 동사들이 모여 한 인간의 영혼을 흔드는 깊은 서정을 만든다.

도종환의 시 세계는 본래 정적인 풍경보다 움직이는 감정에 가깝다. 그의 언어는 언제나 누군가를 향해 흐른다. 특히 '접시꽃 당신'에서는 병든 아내를 둘러싼 일상의 움직임들이 하나하나 살아 있다.

시 속 화자는 단지 슬퍼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계속 움직이는 사람이며, 고통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바로 그것이 이 시를 특별하게 만든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감정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사랑은 대부분 동사로 나타난다. 사랑은 기다리는 것이고, 밥을 짓는 것이며, 병실에 앉아 있는 것이다. 한밤중 잠든 사람의 숨소리를 확인하는 일 또한 사랑이다.

사랑은 거대한 선언이 아니라 작은 반복이다.

'접시꽃 당신'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는 사랑을 철학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준다.

병든 사람 앞에서 인간은 무력해진다. 의사는 설명하고 약은 투여되지만, 결국 인간은 고통을 대신 앓아줄 수 없다. 간병은 가장 절망적인 노동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시 속 화자는 그 절망 속에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사랑의 마지막 형태인지도 모른다.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라는 첫 문장 역시 단순한 배경 묘사가 아니다. 여기에도 이미 동적인 세계가 존재한다.

빗방울은 떨어지고, 스며들고, 흔들린다. 시는 처음부터 정지된 풍경이 아니라 움직이는 세계로 시작한다. 자연조차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인간의 병도, 슬픔도, 시간도 함께 흘러간다.

접시꽃 역시 가만히 서 있는 꽃이 아니다. 여름 내내 햇빛을 견디고 비를 맞으며 피고 지는 존재다. 접시꽃은 이 시에서 단순한 상징물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 가깝다.

병든 아내의 모습과 접시꽃의 모습은 서로 겹쳐진다. 꺾일 듯하면서도 끝내 서 있는 존재. 화자는 그 앞에서 무너지고, 또다시 일어난다.

이 시를 동사의 시로 읽을 때 가장 중요한 단어는 아마도 '견딘다'일 것이다.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단 하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바로 곁에 남아 있는 것이다.

견디는 것이다. 시 속 화자는 거대한 영웅이 아니다. 그는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시는 바로 그 평범한 견딤 속에서 숭고함을 발견한다.

현대 사회는 결과를 숭배한다. 빨리 낫는 것,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것, 고통을 제거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접시꽃 당신'은 해결되지 않는 삶의 자리로 독자를 데려간다.

병은 쉽게 낫지 않고, 인간의 운명은 끝내 통제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은 살아야 한다. 울면서도 밥을 먹고, 병실 창문을 열고, 약을 먹이고, 새벽을 맞는다.

이것이 삶의 실제다. 그리고 그 실제는 모두 동사로 이루어진다.

이 시가 한국 독자들에게 유난히 깊게 남은 이유는 우리 사회의 정서와도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오랫동안 '참는다'는 감정 속에서 살아왔다. 부모 세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고, 병든 가족을 돌보는 일을 운명처럼 감당해 왔다.

'접시꽃 당신'에는 바로 그런 시대의 슬픔이 배어 있다. 그래서 이 시를 읽으면 단지 한 시인의 개인사가 아니라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그림자가 함께 떠오른다.

이 시에는 '돌봄의 동사'가 가득하다. 돌봄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근원적인 움직임이다. 아이를 안아주는 일, 아픈 사람의 등을 쓸어주는 일, 밤새 곁에 머무는 일.

이런 행동들은 대개 기록되지 않는다. 역사책에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 문명을 지탱하는 것은 사실 이런 작은 동사들이다.

도종환은 바로 그 사소한 움직임들을 시의 중심으로 끌어올린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가 비극을 과장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절제되어 있다. 절규보다 침묵이 많고, 울부짖음보다 담담함이 깊다. 그래서 더 아프다.

격렬한 수식보다 조용히 흔들리는 문장이 독자의 심장을 오래 두드린다. 이것 또한 동사의 힘이다. 작은 움직임이 더 큰 진실을 드러낸다.

도종환의 시는 결국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사랑하며 살아왔는가. 당신의 삶에는 어떤 동사가 남아 있는가.

사람은 결국 자신이 반복한 동사가 된다. 끝까지 사랑한 사람은 사랑이 되고, 끝까지 견딘 사람은 희망이 된다.

'접시꽃 당신'은 바로 그 사실을, 한 송이 접시꽃처럼 조용히 피워 보인 시다.


-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화평론가)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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