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억압의 시대마다 사람들은 끝내 '자유'라는 이름을 써 내려갔다. 시는 선언이 아니라 가장 조용하고 치열한 저항이었다.
1942년, 나치 점령 하의 파리. 인쇄소도, 출판사도, 말 한마디도 검열의 그물 아래 놓인 시절이었다. 폴 엘뤼아르(Paul Éluard, 1895~1952)는 그 어둠 속에서 단 하나의 낱말을 향해 시를 썼다.
"자유". 그 시는 처음엔 지하에서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고, 이윽고 영국 RAF 비행기가 프랑스 상공을 날며 전단지로 뿌렸다. 점령된 땅에 씨앗처럼 흩뿌려진 시. 그것이 엘뤼아르의 '자유'였다.
시는 단순하다. 반복의 형식이다. 스물한 개의 연(聯)이 똑같은 구조로 이어진다.
"내 학교 공책 위에
내 책상과 나무들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무엇 위에 그 이름을 쓰는가. 어린 시절의 기억 위에, 폐허 위에, 부재(不在)의 침묵 위에, 그리고 마침내 "내 삶을 되찾아" 온 한 낱말-자유-위에. 엘뤼아르는 연인에게 바치는 시처럼 그것을 썼다. 자유란 사랑받아야 할 이름, 불러야 비로소 존재하는 이름이라는 듯이.
그로부터 삼십팔 년 후, 지구 반대편의 봄날에 또 다른 이름들이 적혔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0년 5월 18일. 계엄군의 총구 앞에서 사람들은 도청 앞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무엇을 원했는가.
시위대가 든 것은 무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목소리였고, 몸이었고, 그리고 자유라는 이름이었다.
총탄이 날아들어도 그 이름은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쓰러진 몸들 위에, 피 묻은 교복 위에, 어머니들의 통곡 위에 더 또렷이 새겨졌다.
엘뤼아르의 시가 위대한 것은 그것이 선언이 아니라 '쓰기'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는 "나는 자유를 원한다"라고 외치지 않았다.
"나는 네 이름을 쓴다"고 했다. 쓰는 행위, 그것은 가장 낮고 조용한 저항의 형태다. 노트 위에, 나뭇잎 위에, 모래 위에, 눈(雪) 위에. 쓰는 이가 사라져도 쓰인 이름은 남는다.
광주의 그 오월도 그랬다. 총칼로 봉쇄된 도시, 고립된 시민들, 끊긴 전화선. 그러나 그 안에서 사람들은 계속 이름을 썼다. 벽에, 유인물에, 서로의 기억 속에.
엘뤼아르는 초현실주의자였다. 그는 꿈과 욕망의 언어로 시를 썼다. 그러나 '자유'는 초현실주의를 넘어선다. 그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시다.
점령과 공포와 침묵이라는 현실, 그것에 맞서는 한 인간의 필사적인 쓰기라는 현실. 초현실주의가 언어의 해방을 꿈꿨다면, 이 시는 그 해방을 위해 실제로 몸을 던진다. 시인의 말이 비행기에 실려 점령된 하늘을 가로질러 떨어질 때, 시는 더 이상 은유가 아니었다. 시는 행동이었다.
광주항쟁을 생각할 때마다 이 시의 반복 구조를 떠올린다. 스물한 개의 연이 같은 리듬으로 이어지듯, 그 열흘의 항쟁도 날마다 같은 구조로 반복되었다. 새벽의 공포, 낮의 저항, 밤의 연대. 그리고 또 새벽.
끝이 보이지 않는 반복 속에서도 사람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왜였을까. 엘뤼아르의 시가 그 답을 준다. 이름을 쓰기 시작한 이상, 그 이름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시의 마지막 연은 이렇게 끝난다.
"그리고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삶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자유여."
자유는 결과가 아니라 시작이다. 누군가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삶은 새로 시작된다. 광주의 오월이 한국 민주주의의 씨앗이 된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그날 스러진 이들은 끝을 맺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의 이름을 완성했고, 그 이름은 이후의 모든 봄을 가능하게 했다.
엘뤼아르의 '자유'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시이지만, 동시에 모든 억압받은 자들의 시다. 그것은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인간이 자유를 갈망하는 한 언제나 다시 쓰이는 시다. 광주의 금남로에서도, 베를린 장벽 붕괴 앞에서도, 미얀마의 거리에서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어딘가의 어둠 속에서도, 누군가는 가장 낮은 목소리로 그 이름을 쓰고 있다.
5월이 오면 종종 붓을 든다. 광주를 생각하며, 엘뤼아르를 생각하며. 종이 위에 자유(自由)라는 두 글자를 쓰는 일은 단순한 서예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쓰기 자체가 저항이었던 시절을 기억하는 일이고, 아직 자유를 쓰지 못한 곳들을 향한 작은 연대의 몸짓이다.
詩(시)와 畵(화)와 舞(무)가 하나로 이어진다는 시화무(詩畵舞)의 정신으로 시인은 쓰고, 화가는 그리고, 춤추는 이는 몸으로 그 이름을 새긴다.
자유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쓰여지는 것이다. 노트 위에, 길바닥 위에, 세월 위에, 그리고 죽음 위에도.
엘뤼아르가 가르쳐주었고, 광주가 증명했다. 이름을 쓰는 한, 자유는 희망 위에 다시 계속된다.

-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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