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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데스크 칼럼] 기억은 기념이 될 수 있지만, 기념이 곧 기억은 아니다

207억 원의 '감사의 정원', 시민의 공감은 어디에 있었나
광화문광장은 권력의 전시장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숨결이 살아 있는 시민의 광장이다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본지 편집국장) = 서울시(시장 오세훈)가 최근 광화문광장에 조성한 '감사의 정원'을 둘러싼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이를 자유와 헌신, 국제 연대의 가치를 기리는 상징 공간이라고 설명하지만, 시민들의 시선은 기대보다 훨씬 차갑고 냉정하다.

문제는 단순히 하나의 조형물이 아니다. 207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 충분했는지 의문이 남는 공론화 과정, 그리고 대한민국 현대사의 상징 공간인 광화문광장에 특정 메시지를 담은 구조물을 대규모로 설치한 방식 자체가 시민사회에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은 소중하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리고 공동체의 가치를 되새기는 일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기억은 행정의 설계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돌을 세우고 조형물을 만든다고 해서 시민의 마음속에 역사 의식까지 자동으로 새겨지는 것은 아니다. 기억은 강요가 아니라 공감 속에서 살아남는다.

무엇보다 이번 논란의 핵심에는 '절차의 민주성'과 '시민적 합의'라는 오래된 질문이 놓여 있다. 시민들은 묻고 있다.

왜 지금이어야 했는가. 왜 하필 광화문이어야 했는가. 왜 충분한 사회적 논의보다 행정의 속도가 앞섰는가. 광화문광장은 단순한 도시 공원이 아니다.

그곳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현대사의 심장과 같은 장소다.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던 곳이며, 억울한 죽음을 추모했고, 시대의 정의를 외쳤던 공간이다. 기쁨과 분노, 슬픔과 희망이 켜켜이 쌓여 있는 집단 기억의 장소다.

그렇기에 광화문에 무엇을 세우는가는 단순한 조경 사업이 아니라 역사 해석의 문제이며, 시민 감수성의 문제이고, 민주주의의 문제다. 특정한 역사 메시지를 담은 구조물을 대규모 예산으로 밀어붙이는 일일수록 더욱 신중했어야 한다. 광장은 권력이 자신의 역사관을 전시하는 무대가 아니라 시민 모두의 숨결이 공존하는 공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민들의 삶은 지금 결코 가볍지 않다. 끝없이 치솟는 물가와 전세난, 폐업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들, 미래를 포기한 듯 살아가는 청년 세대의 한숨은 이미 도시의 일상이 되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수백억 원 규모의 상징 조형 사업은 시민들에게 쉽게 공감받기 어렵다.

자칫하면 '시민을 위한 행정'이 아니라 '행정을 위한 행정', 혹은 보여주기식 치적 사업으로 읽힐 위험도 크다.

물론 국가 공동체는 기억을 필요로 한다.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다. 하지만 진정한 감사는 거대한 구조물의 높이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을 기억하려는 태도, 역사 앞에서의 겸손, 그리고 시민과 함께 기억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완성된다.

기념은 행정이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기억은 시민이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살아남는다. 이번 논란은 단순한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공공 공간은 누구의 것인가. 세금으로 만드는 기념사업은 어떤 절차와 합의를 거쳐야 하는가. 역사 기억은 권력이 결정하는 것인가,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인가.

서울시는 지금이라도 이 질문 앞에 겸허해야 한다. 기억을 앞세운 기념사업이 오히려 시민의 기억으로부터 멀어지는 역설을 경계해야 한다.

광화문의 바람은 늘 시민의 목소리와 함께 불어왔다. 권력은 때때로 광장을 장식하려 했지만, 결국 그 공간을 살아 있게 만든 것은 시민들이었다. 기억은 조형물보다 오래 남는다.

그리고 시민은 언제나, 자신들의 삶과 무관한 기념보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먼저 기억한다. 행정이 잊지 말아야 할 가장 단순한 원칙도 바로 그것이다.

광장의 주인은 돌과 철제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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