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푸른 오월, 한국 수필문학의 정점으로 불리는 금아 피천득 선생의 문학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한 뜻깊은 자리가 마련된다.
맑고 절제된 문장 속에 인간의 순정과 삶의 품격을 담아냈던 피천득 선생의 문학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독자들의 마음속에 잔잔한 파문으로 살아 있다. '인연', '오월', '수필'로 대표되는 그의 문학 세계는 화려한 수사보다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로 한국 현대문학의 한 축을 이루어왔다.
그 고요하고도 맑은 정신을 오늘의 문학으로 이어가기 위한 첫걸음이 '제1회 피천득문학상'이라는 이름으로 결실을 맺게 됐다.
한국 수필문학의 거목 피천득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제1회 피천득문학상 시상식 및 후원회 출범식'이 오는 29일 오후 3시 서울 잠실 롯데월드 3층 롯데민속관 입구 내 금아피천득기념관 앞 화랑 다목적실에서 열린다.
금아피천득선생기념사업회(회장 정정호)가 주최하는 이번 행사는 피천득 선생 서거 19주기를 추모하고, 그의 문학적 업적과 정신을 오늘의 문학으로 이어가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행사는 제19주기 피천득 선생 추모식을 시작으로 제1회 피천득문학상 시상식, 피천득문학상 후원회 출범식 순으로 진행된다.

제1회 피천득문학상 수상자로는 시 부문 노유섭 시인, 수필 부문 손광성 수필가, 번역 부문 이소영 번역가가 선정됐다.
시 부문 수상자인 노유섭 시인의 작품 세계는 절제된 언어 속에서 존재의 본질을 응시하는 데 특징이 있다. 그의 시는 격렬한 감정의 분출보다는 일상의 미세한 흔들림과 내면의 결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데 집중한다.
사소한 풍경과 작은 감각에서 출발한 시적 사유는 점차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되며 독자를 깊은 성찰의 자리로 이끈다.
특히 이미지 중심의 간결한 표현과 여백의 활용은 노유섭 시의 중요한 미학으로 꼽힌다.
그의 시는 많은 것을 설명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 침묵과 여백 속에서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시를 단순히 읽는 차원을 넘어 오래 머물고 되새기게 만드는 힘이다.
과장 없이 깊이를 확보하는 그의 시 세계는 한국 서정시의 정제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필 부문 수상자인 손광성 수필가는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체험을 바탕으로 인간과 세상에 대한 성찰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작가다.
그의 글은 화려한 수사나 과장된 감정보다 진솔한 체험의 결을 중시하며, 독자에게 공감과 위로를 함께 건넨다. 특히 삶의 고단함과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따뜻하면서도 절제된 문장으로 풀어내는 방식은 수필 문학 본연의 미덕을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의 문장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버텨낸 시간'에서 비롯된 깊은 신뢰를 품고 있다. 삶의 상처와 흔들림을 통과해온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온기가 문장 곳곳에 스며 있으며, 이는 독자들에게 오래 남는 울림으로 이어진다.
또한 이날 행사에서는 수상자 중 손광성 수필가가 '피천득을 추억하다'를 주제로 회고 강연에 나서 금아의 문학과 인간적 면모를 되새기는 시간을 마련한다.
번역 부문 수상자인 이소영 번역가는 원작의 정서를 충실히 살리면서도 한국어 특유의 미감을 자연스럽게 구현해내는 번역 작업으로 주목받아 왔다.
번역은 단순히 언어를 바꾸는 기술적 작업이 아니라 문화와 감각, 시대의 정서를 함께 옮기는 섬세한 창작 행위에 가깝다.
이소영 번역가는 원문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어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리듬과 호흡을 구현함으로써 번역 문학의 완성도를 높여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원작의 뉘앙스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한국어 문장의 아름다움과 문학적 깊이를 동시에 확보하는 균형 감각은 번역 문학의 중요한 성취로 평가된다.

故 금아 피천득(皮千得, 1910년 음력 4월 21일~2007년 5월 25일) 선생은 한국 수필문학을 한 차원 높은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문인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문장은 단아하고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사람과 자연, 계절과 기억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
특히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라는 문장은 한국 산문의 가장 아름다운 문장 가운데 하나로 지금도 회자된다.
이번 문학상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피천득 선생의 문학적 가치와 정신을 동시대 문학 속에서 다시 호흡하게 하려는 데 의미가 있다.
급속한 시대 변화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예의와 순수한 감수성, 삶을 바라보는 맑은 시선을 잃지 않으려 했던 금아의 문학은 오늘날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정정호 금아피천득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은 "피천득 선생의 문학은 단순한 향수의 문학이 아니라 인간의 품격과 언어의 품위를 일깨우는 정신의 유산"이라며 "문학상을 통해 그 뜻을 이어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번 후원회 출범 역시 단발성 기념사업에 머물지 않고 피천득 문학의 정신을 지속적으로 계승·확산하기 위한 기반 마련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문학은 결국 한 시대의 마음을 기록하는 일인지 모른다. 피천득 선생은 평생 맑고 단정한 언어로 인간과 삶의 아름다움을 길어 올렸고, 그 문장들은 지금도 오래된 편지처럼 조용히 독자의 가슴에 닿는다.
빠르고 거친 말들이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금아의 문학은 더욱 선명해진다. 타인을 향한 배려와 절제, 삶의 작은 순간을 오래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오늘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문학의 본령이기도 하다.
제1회 피천득문학상은 단지 한 문인을 기리는 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문학이 어디에서 왔으며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되묻는 자리다.
오월의 끝자락, 피천득이라는 이름 아래 다시 모인 문학인들의 걸음은 어쩌면 이 시대 메말라가는 언어의 숲에 조용히 맑은 물 한 바가지를 길어 올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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