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김정현 기자= 더불어민주당 독립운동가 후손 국회의원들이 14일 광복절 74주년을 맞아 일본의 경제침략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더불어민주당 독립운동가 후손인 권칠승(황보선 선생의 외손)‧박찬대(이상룡 선생의 외손)‧설훈(설철수 선생의 자)‧송옥주(차병혁 선생의 외증손)‧우원식(김한 선생의 외손)‧이용득(이상룡 선생의 손)‧이종걸(이회영 선생의 손) 의원은 14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광복절 74주년을 맞이한 대한민국은 숭고한 해방의 정신 위에, 이 땅을 지켜온 민족 존엄의 가치를 되살려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이런 때 일본 아베 정권은 새로운 한반도 100년의 커다란 장애물이 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들은 "아베 정권은 군국주의 재무장의 야욕을 위해 평화와 번영으로 거듭난 한반도 질서를 냉전의 구체제로 되돌리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며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판결을 부정하고 역사를 바꿔 침략과 식민 지배의 책임에서 벗어나려 한다"면서 "아베 정권의 경제 보복은 한반도 질서를 위협하고, 대한민국 경제의 발목을 노리며, 일본의 군국주의 재무장을 위한 새로운 침략전이다"고 주장
(서울=동양방송) 고진아 기자 = 국가보훈처는 3월의 독립운동가로 3·1독립만세운동과 일제 식민지배 참상을 전세계에 알린 영국인 F.W.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박사를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1889년 3월 영국에서 태어난 스코필드 박사는 1907년 개나다 토론토로 이주, 토론토대 온타리오수의과대에서 세균학 박사학위를 받고 1916년 캐나다장로회 선교사로 부인과 함께 입국해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세균학을 가르쳤다. 스코필드 박사는 1919년 3ㆍ1 운동이 일어나자 일제가 학살을 자행한 화성 제암리와 수촌리의 참상을 사진으로 촬영해 일제의 만행을 세계 곳곳에 폭로했다. 이 때 스코필드 박사가 작성한 ‘제암리의 대학살’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중국 상하이에서 발행되던 영자신문 상하이 가제트 1919년 5월27일자에 실렸으며 ‘수촌 만행 보고서’는 미국 장로회 기관지 프레즈비티리언 위트니스 1919년 7월26일자에 실렸다. 3ㆍ1 운동을 세세히 기록하던 그는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찾아가 유관순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를 면회하고 조선총독부에 감옥 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고문과 비인도적 만행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일제의 비인도적 만행들을 조사해 영국의 성서공
(서울=동양방송) 고진아 기자 = 국가보훈처는 독립기념관, 광복회와 공동으로 미주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이끈 한시대 선생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한시대 선생은 1889년 황해도 해주에서 부친 한준상과 모친 문성선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03년 노동 이민자로 하와이로 건너가 한인기숙학교와 중학과정인 밀스학교를 졸업했고 1913년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로웰고등학교 4학년으로 편입, 졸업했다. 고교 졸업 후 1916년 4월 대한인국민회 맨티카지방회를 설립해 부친이 초대회장에, 선생은 법무원에 선임돼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뛰어 들었다. 1917년에는 흥사단에 입단했고 다뉴바지방회 대의원 자격으로 1918년 개최된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대의원회에 참석해 1918년 신규사업 10개조를 입안했는데 국어학교 설립등 주로 민족교육을 강화하는 내용이었다.3.1운동 소식이 전해진 이후 미주지역에서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외를 중심으로 선전, 외교활동과 재정모금활동이 추진됐다. 선생 역시 독립의연금 모금운동에 적극 참여해 당시로서는 거금인 550.85달러를 납부하기도 했다. 1921년 다뉴바에서 결성된 국민대표회기성회에 참가했는데 기성회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독립운동
(서울 = 동양방송) 고진아 기자 = 국립대전현충원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그 위훈과 공적을 높이고자 구국회를 조직해 항일투쟁을 역설하다 아들과 함께 순국한 '구연영 순국선열'을 1월 현충인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구연영 순국선열은 1896년 1월 1,000여명의 의병으로 이천 수창의소를 조직했고 종군대장으로서 넓고개 전투와 이현 전투 남한산성 전투를 지휘해 큰 승리를 거뒀다. 그 후 기독교에 입문해 이천중앙교회 담임전도사로서 선교활동을 하며 구국회를 조직,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서 항일투쟁을 하다 일진회의 밀고로 일본군 수비대에체포돼 아들 구정서 전도사와 1907년 8월 24일 총살당했다. 한편 기독교 감리회 목회자로서는 최초로 순국한 구연영 부자는 정부로부터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으며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 1022호에 안장돼 있다.선생은 1864년 6월 20일 구철조의 3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경기도 광주군 실촌 지역에 세거해온 유력 가문에서 엄격한 충효정신의 바탕 위에 충군애국사상을 배우며 자랐다. 구연영 선생은 국가보훈처 선정, 2014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추서되기도 했다.1895년 일제에 의해 자행된
(서울 = 동양방송) 고진아 기자=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염재야록을 저술한 조희제 선생(1873~1939)이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조희제 선생은 조선의 국운이 쇠퇴하던 시기 의병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전북 임실 출신으로항일의식이 투철한 집안에서 자랐으며 일제에 맞서 목숨을 끊은 송병선과 항일투쟁에 나섰던 기우만 의병장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선생은 수십 년에 걸쳐 각지를 돌아다니며 독립투사들과 애국지사들의 애국활동들의 기록을 모았다. 또한 법정에서 애국지사들의 재판 과정을 방청하며 기록하기도 했다. 명성을 떨치고 그 행적이 역사에 잘 기록된 인사보다는 초야에 묻힌 애국지사들의 충절을 기록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 책의 표지에 덕촌수록(悳村隨錄)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선생은1질은 책상 위에 두고 1질은 궤짝에 넣어 마루 밑 땅에 묻었다고 한다. 덕촌수록은 염재(念齋) 조희제(趙熙濟) 선생이 1895년 을미사변 이후부터 1918년까지 의병장, 애국지사들의 절의실적(節義實蹟)을 모아 전기체로 서술한 6권 2책이다. 염재는 염재야록(念齋野錄) 원고를 완성하고 일제 경찰의 관심을 피하기 위해 책의 표지에는 덕촌수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울 = 동양방송) 고진아 기자 =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2016년도‘이달의 독립운동가’13인을 선정하고 그 결과를 10일 발표했다. 이달의 독립운동가로는 1월 조희제, 2월 한시대, 3월 스코필드 박사, 4월 오영선, 5월 문창학, 6월 안승우, 7월 이신애, 8월 채광묵·채규대 부자(父子), 9월 나중소, 10월 나운규, 11월 이한웅, 12월 최수봉등 13명의 독립운동가가 선정됐다.보훈처 관계자는 "이번에 선정된 2016년도 독립운동가들은 근현대사 전공학자 등으로 구성된‘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위원회’의 심의와 관련기관의 검증을 거쳐 최종 결정됐다"고 말했다.앞으로 매월 한 인물씩 본보에서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1월의 독립운동가는 '염재야록(念齋野錄)’을 통해 의병장과 애국지사들의 행적을 기록한 조희제(趙熙濟) 선생(1873.12.10~ 1939.1.9)으로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애국장을 치렀다. 그는 항일 의병과 애국지사들의 행적을 목숨 걸고 기록했다. 한말 의병장들과 애국투사들의 독립운동 행적 자료들을 수집해 염재야록을 저술했다. 1938년 일제 경찰에 구속되면서 원고는 압수당하고 1939년 일제 경찰의 잔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