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최창일 시인, '바람 사이에 다리를 놓다'

2022.08.15 15:49:00

"지용의 향수는 우리에게 떠나 가버린 모든 것들의 향수"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 없다'는 뜻의 '공전절후(空前絶後)'라는 말이 있다. 비교할만한 것이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다는 의미도 지닌다. 주로 영화 선전에 이용된 말이다.

'공전의 히트'라는 문구와 같은 것들이다.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공전절후’에 흥행의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이다. 거기에 더한 부류도 있다. 언어의 건축자인 시인이다.

시(詩) 도반은 바람에 언덕에서 시를 쓴 크리스티나 로제티(Christina Georgina Rossetti)에게 '공전절후'의 시인이라 불러주고 싶다. 1980년대 바람의 시인으로 시, 동시, 종교시, 논설문에 이르러 계관시인 후보에 오른 천상시인이다.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 나도 너도 볼 수 없었지/ 그러나 나뭇잎이 매달려 떨고 있을 때/ 바람은 가로질러 가고 있네//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 너도나도 볼 수 없었지/ 그러나 나무들이 머리 숙여 인사할 때/ 바람은 지나간다//'

크리스티나 로제티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 시 전문이다.

1830년 12월에 태어나 1894년 12월에 독신으로 살다간 영국이 내세우는 여류 시인의 한사람이다. 그는 눈보라 치는 12월에 태어나 눈보라 치는 12월 29일 끝자락에 고독하게, 지극히 고독하게 바람의 언덕에서 바람 사이에 다리를 놓으며 눈을 감은 시인이다. 지금이야 큰 병이 아니겠지만 당시엔 희소병 취급을 받은 눈이 튀어나오는 갑상선 기능항진증과 유방암으로 영면하게 된다.

크리스티나 로제티는 그 누구도 표현하지 못한 바람에 대하여 동화 같은 귀여운 시구를 만들었다.

동서양의 독자들도 바람에 대한 접근이 비교적 신선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시(詩) 도반들도 알듯이, 시(詩)도 변모하고 발전이 거듭되는 생물이다. 운율과 표현은 선학의 시가 기준이 되면서 이미지와 은유가 변모하는 것.

멀다 싶은 비유지만 차범근이 1970년대에 독일에 있었기에 2020년대의 손흥민의 발전된 축구를 볼 수 있는 것도 비슷한 이치다.

한국인의 애송시 정지용의 <향수>는 가요곡으로 널리 불린다. 시인의 향수 시편은 다채로운 바람의 영상이 들어 있는 표본적 시다. '공전절후'의 유의어인 미증유(未曾有)라는 말이 있다. 일찍이 있지 않았던 처음 벌어진 일이라는 뜻이다.

바람의 입체를 거리감과 속도감으로 이리 격조함은 미증유라는 말로 표현된다. 바람이 바깥과 안이 있다는 것은 과학은 말하지 않아도 지용의 향수에서 표현해 주고 있다.

신이 천지를 창조하며 첫째 날에 빛과 어둠을 만들었다. 천지는 바람 풍(風) 경치 경(景)이 포함되어 풍경이다. 천지를 창조하는데 첫째 날에 바람이 같이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첫째라는 것은 중요함이 전제된다.

시인들은 자연 속, 모든 자연풍경에 들어 있는 바람에 대하여 현혹, 내지는 관심이 크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우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휘적시던 곳/' 정지용 시인의 <향수> 앞부분이다. 긴 시다. 지면상 부분만 소개한다.

'빈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는 누구도 보지 못한 바람을 그것도 칠흑 같은 밤, 빈 들판을 겨울바람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지용의 향수를 미증유라 할 수 밖에 없다.

지용은 개화기의 시인으로 유럽의 시를 많이 만났을 것이다. 크리스트나 로제티의 시의 다채로운 바람의 상자를 열어 보았을 것이다. 크리스티나가 본 바람과 정지용이 본 바람과는 다르지 않다.

정지용 시인이 본 바람은 근대에 만들어진 휴대전화, 줌인을 줌 아웃을 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김 벌레(1941~ )라는 음향 효과의 달인이 보여주듯 바람 소리, 말발 자국 소리가 들린다. 휘날리는 잔상이 눈 앞에 펼쳐지는 느낌을 가져다준다.

지용의 <향수>는 햇빛 아래 밝고 넓은 벌판의 은유들이 모두가 바람결에 움직인다. '검은 귀밑머리 날린 어린 누이와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하늘의 성근 별에서 시작되는 수직 구조로 구성되는 시편의 묘(描)다.

실개천이 흘러가는 벌판이 확산의 외부공간이라면 등불 밑에 돌아앉아 도란거리는 그 방안은 응축의 내부 공간이다. 모두가 바람에 움직이는 형태다.

풀 섶의 이슬에 적시는 것도 바람의 부분이다. 아스팔트에 사라져가는 고향도 향수의 바람이다. 지용의 향수는 우리에게 떠나 가버린 모든 것들의 향수다. 바람을 보여주듯 표현한 시인이다. 시는 바람의 언덕을 좋아한다.

- 최창일 시인(이미지문화학자, '시화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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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섭 기자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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