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최창일 시인, "시인의 고통은 모서리에서 자란다"

2023.03.25 14:29:54

"진실의 원점은 늘 고통의 중심이 아닌 모서리에서, 더한 고통을 감내"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정원도(1960~) 시인이 <마부>와 <말들도 할 말이 많았다>는 두 권의 시집을 펴냈다. 정원도 시인과 일면식도 없다. SNS를 서핑하다가 우연히 조우(遭遇)한다. 시인이 14세 때에 마부(馬夫)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시인은 반야월 동산에 모셔진 아버지의 서사를 시집으로 내기로, 결심한다. 시(詩)작은 수월치 않았다. 50년, 반세기의 세월이 걸렸다.

한국의 대표적인 미당이 기억된다. 자화상에 나오는 '애비는 종이었다'가 스치기 때문이다. 통렬하게 고백하는 시인의 심정에 다가서면 아버지를 가진 타자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땅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할 말이 많다. 제국주의에 종으로 끌려가고 위안부로 끌려갔다. 엄지손가락이 잘렸다. 일본놈 감독은 손가락을 공중에 던지며 서로들 시시덕거렸다. 그 어머니들이 3월의 차가운 광장에 나와 울었다. 오늘의 위정자는 그들의 만행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에서라,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자칫 쾌청치 못한 자로 동료에 손가락질을 당하는 판국이다. 탁구장에서는 탁구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옳다. 학인의 말을 따르기로 하자.

테네시 윌리엄스, 유진 오닐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극작가로 평가받는 아서 밀러(Arthur Miller, 1915~2005)의 대표작 <세일즈맨의 죽음, Death of a Salesman, 1949>는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윌리 로우맨은 예순세 살 된 세일즈맨이다. 그는 주변의 사람들에 좋은 사람이라는 호평의 사람이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면서 언젠가는 세일즈맨으로 성공하고 자기의 자그만 사업을 갖는 소박한 꿈을 갖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가장이며 상냥한 린다, 아내가 있다. 월부로 집 한 채를 샀다. 몇 십 년 후면 그 집이 자기 소유가 될 것이다. 게다가 이웃이 부러워하는 두 아들까지 두어, ‘행복한 삶’의 조건을 갖추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가 않다. 나이가 들수록 윌리의 꿈은 점점 멀어진다. 세일즈맨으로 서의 성과급은 자꾸 줄어든다. 회사는 일방적인 해고를 명한다. 희망의 상징이던 두 아들도 무능한 아버지에 반항하며 빗나가기 시작한다. 배반감, 슬픔, 피로, 그리고 산산조각이 난 꿈에 대한 절망감은 윌리를 거의 정신착란으로 몰고 간다.

윌리는 결국 결심한다. 두 아들에게 보험금이라도 남기기 위해 자동차로 폭주하여 자살한다. 그의 죽음으로 타게 된 보험금은 겨우 집의 마지막 월부금을 낼 수 있을 만한 액수였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산업화의 전형이다. 물질주의화 된 현대문명 속에 마치 하나의 소모품처럼 버려지는 보통 시민의 삶이 통렬하게 그려진다.

작품의 처음 장면, 윌리는 견본이 가득 든 무거운 가방을 양손에 들렸다. 집으로 돌아온다. 세일즈 여행에서 돌아온 그의 어깨는 축 처져 있다.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이다. 그러나 밀러는 윌리가 파는 물건이 무엇이며, 그 가방에는 어떤 견본이 들어 있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그 내용물이 무엇이든, 궁극적으로 윌리가 팔고 있는 것은 우리들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들이 사회적으로 '성공'이라는 것을 하지 못한 아버지에게 등을 돌릴 때, 끝까지 깊은 연민과 이해로 남편을 지키는 린다는 말한다.

"너희 아버지는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란 건 아니야. 윌리 로우맨은 큰 돈을 번일 도 없고, 신문에 이름이 난적이 없어. 하지만 네 아버지는 인간이야. 그러니까 소중히 대해 드려야 해. 늙은 개처럼 객사를 시켜서는 안 돼."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버지들은 로우맨처럼 큰돈을 버는 일도, 언론에 오르내린 일도 없다. 가끔씩 인생 역전의 복권을 사면서 허무맹랑한 꿈을 꾸어보지만, 매일 매일 가족을 위해서 더러워도 감내하며 굽신거리고 손을 비비며 성실하게 살아간다. 그래서 아버지들은 가슴속에 꿈 하나를 숨기고 자신을 팔기 위해 무거운 가방을 들고 세상의 밀림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정원도 시인의 <마부>와 <말들도 할 말은 있다>의 시집을 대하면서 시는 지식으로 쓰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한다. 고통은 모서리에서 자란다는 말이 있다. 언어에 대한 고통을 키우지 않으면 감히 마부 아버지의 서사를 쓸 수 없었다.

시인은 진실의 원정은 반세기 동안 계속되었다. 진실의 원점은 늘 고통의 중심이 아닌 모서리에서, 더한 고통을 감내한다. 그것은 시인의 고통이 아니라 마부 아버지의 쓰라린 고통의 기록이다.

-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화학자, '시화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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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섭 기자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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