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최창일 시인, '파수꾼'으로 보는 우상과 홀로 선 양심

  • 등록 2026.06.04 18:13:47
크게보기

영웅을 넘어 인간을 바라볼 때 비로소 시작되는 성장
집단의 목소리가 아닌 자신의 양심으로 세상을 읽어야 할 시대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한 명쯤의 '파수꾼' 세우고 살아간다. 부모일 수도 있고, 스승이나 사회적 지도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파수꾼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혼란과 절망 앞에 선다. 세계적인 작가 하퍼 리의 소설 <파수꾼>은 바로 그 순간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정의의 상징이었던 아버지의 몰락 앞에서 한 인간이 자신의 양심을 발견해 가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성숙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세계 문학계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앵무새 죽이기>로 전 세계인의 추앙을 받았던 하퍼 리(Harper Lee, 1926~2016)의 '잃어버린 초고', <파수꾼>이 반세기 만에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출간과 동시에 거대한 논쟁의 중심에 섰다. 우리가 정의의 화신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애티커스 핀치가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모임에 참석하는 노인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수꾼>은 단순한 '실망스러운 후속작'이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은 『앵무새 죽이기』가 남긴 순수한 도덕주의의 균열을 메우며, 한 개인이 어떻게 시대의 광기 속에서 자신의 양심을 독립시키는가를 보여주는 처절한 성장 서사다.

<파수꾼>의 배경은 1950년대 중반 미국 앨라배마주 메이콤이다. 1930년대 대공황기를 다룬 <앵무새 죽이기>로부터 약 20년이 흐른 시점이다. 이 시기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태로운 전환기 가운데 하나였다. 1954년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판결로 공립학교 내 인종 격리가 위헌으로 결정되면서 수백 년간 유지되어 온 남부의 질서가 흔들리고 있었다.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던 진 루이즈(스카우트)가 고향 메이콤으로 돌아왔을 때 마주한 것은 평화로운 고향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배타성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놀랍게도 그녀가 평생 존경해 온 아버지 애티커스가 있었다.

<앵무새 죽이기>의 애티커스 핀치는 완벽한 인간이었다. 그는 증오와 편견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도 정의를 지키는 도덕적 나침반이었다. 그러나 <파수꾼> 속의 애티커스는 시대 변화에 불안해하는 남부 보수층의 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진 루이즈에게 이 발견은 단순한 실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믿어온 세계 전체가 무너지는 경험이었다. 그녀에게 아버지는 법이었고, 정의였으며, 신념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파수꾼>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믿는 정의가 과연 자신의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권위에 기대어 형성된 것인가.

소설의 제목 '파수꾼(Watchman)'은 성경 이사야서 21장 6절에서 유래한다.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그가 보는 것을 보고하게 하라."

작품 속에서 삼촌 잭은 진 루이즈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의 파수꾼은 그의 양심이다. 집단적인 양심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한 문장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진 루이즈의 고통은 아버지가 변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녀가 자신의 양심을 아버지에게 맡겨버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버지를 한 인간으로 바라보기보다 자신의 도덕적 판단을 대신해 줄 우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은 결국 그 우상을 무너뜨리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폐허 위에서 비로소 자신의 양심과 마주하게 된다.

하퍼 리가 묘사한 1950년대 미국의 갈등은 오늘의 우리 사회와도 닮아 있다.

세대 간의 갈등, 정치적 대립, 급격한 사회 변화가 낳는 불안과 혐오. 우리는 종종 자신이 속한 집단의 목소리를 자신의 양심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집단은 책임지지 않는다. 책임은 언제나 개인의 몫이다.

애티커스 핀치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던 독자들 역시 어쩌면 진 루이즈와 같은 위치에 있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 영웅을 원한다. 누군가가 옳고 그름을 대신 판단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파수꾼>은 말한다.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결함을 가진 인간과, 그 속에서도 스스로 판단하려 애쓰는 양심만이 존재할 뿐이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진 루이즈는 아버지를 떠나지 않는다. 대신 그를 절대적 존재가 아닌 한 명의 불완전한 인간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굴복이 아니라 성숙이다.

<파수꾼>은 오늘의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파수꾼은 누구인가. 당신의 양심은 과연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권위와 집단의 논리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가.

하퍼 리가 이 원고를 오랫동안 세상 밖으로 내놓지 않았던 이유는 어쩌면 독자들이 이 불편한 질문을 감당할 준비가 될 때를 기다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우상을 만든다. 정치인도, 종교인도, 스승도, 부모도 때로는 절대적인 존재로 신격화한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도 완전할 수 없다. 완벽한 영웅을 찾으려 할수록 우리는 자신의 양심을 타인에게 맡기게 된다.

<파수꾼>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우상을 허무는 데 있지 않다. 우상이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자기 양심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데 있다.

오늘날처럼 진영과 집단의 논리가 개인의 판단을 압도하는 시대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영웅이 아니다. 외부의 권위가 아니라 스스로를 지켜보는 내면의 파수꾼이다.

그리고 그 파수꾼은 언제나 고독하다. 그러나 그 고독 속에서만 인간은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화 평론가)

i24@daum.net
장건섭 기자 i24@daum.net
<저작권ⓒ 동양방송·미래일보,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PC버전으로 보기

㈜미래매스컴 등록번호 : 서울 가00245 등록년월일 : 2009년 4월 9일 기사제보 i24@daum.net 서울특별시 성동구 자동차시장1길 33 그랜드빌딩 대표전화 : 02-765-2114 팩스 02-3675-3114, 발행/편집인 서정헌 Copyrightⓒ(주)미래매스컴. All rights reserved. 미래일보의 모든 콘텐츠는 무단 전재,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