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김선영 시인의 '어떤 관찰'… 담장 너머의 소음보다 깊은 것

  • 등록 2026.06.11 08:5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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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너머의 소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연의 평정, 그리고 인간 내면의 성찰"
"세상의 소음이 잦아든 자리에서 비로소 들리는 생명의 목소리"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모든 소리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가장 큰 소란보다 나뭇잎 하나 흔들리는 침묵이 더 깊은 진실을 말해준다.

김선영 시인의 시 '어떤 관찰'은 담장 너머에서 들려오는 정체 모를 소리를 통해 인간의 불안과 호기심, 그리고 자연이 지닌 본래의 평화를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 어떤 관찰

- 김선영 시인

카페 정원에 있었다
낯선 소리가 담장을 넘어 온다
귀가 먼저 반응하고
생각은 한 박자 늦는다

감각의 이동
의심보다 빠른 호기심

그만큼 또렷한 소리는
대개 그런 용도로 쓰인다

소리의 분절이 정수리 끝을 긁고 내려온다

누군가는 멈춰야 하고
누군가는 뛰쳐나와야 할 것 같은데
정원은 반응하지 않는다

나무 그림자도 조금 전에 그 모양 그대로다
이야기가 되기 직전의 것들만 남기고
소리의 높이로 잔디밭 가장자리에 서 있다

낮 동안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저녁으로 넘어가는 빛을 그대로 받아 안는다

잎을 고르게 만지는 해가 있고
울타리가 있고
나무 한 그루가 있고
느슨한 저녁 풀잎 위에 붉음이 내려 앉는다

감각이 더 많이 열린다
잎맥 속에 흐르는 붉은 피
뿌리의 목소리까지 들린다

그 모든 것이 놀라지 않게 풀밭을 향해 휠체어를 돌린다

담장 너머에서 누군가 수근 거리는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 감상과 해설 / 장건섭 시인(본지 편집국장)

김선영 시인의 '어떤 관찰'은 제목 그대로 '관찰'의 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라 인간의 감각과 내면을 향한 깊은 관찰이다.

시는 "카페 정원에 있었다"라는 평범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공간이다. 그런데 갑자기 "낯선 소리가 담장을 넘어 온다."

익숙한 풍경 속으로 불확실성이 침입하는 순간이다.

흥미로운 점은 시인이 그 소리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이었는지 끝내 밝히지 않는다. 대신 소리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반응을 보여준다.

"귀가 먼저 반응하고
생각은 한 박자 늦는다"


이 대목은 현대인의 심리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우리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전에 반응하고, 판단하기도 전에 흥분한다.

특히 스마트폰과 SNS가 지배하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자극적인 뉴스, 확인되지 않은 소문, 과장된 정보들이 담장 너머의 낯선 소리처럼 우리 곁에 끊임없이 밀려온다.

시인은 이를 "의심보다 빠른 호기심"이라 표현한다.

오늘날 사회를 돌아보면 이 구절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대립, 인터넷 공간의 혐오와 분열은 대부분 충분한 숙고보다 즉각적인 반응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은 소리의 진실보다 소리의 크기에 먼저 반응한다.

하지만 시 속 정원은 다르다. 정원은 반응하지 않는다 시의 전환점이 되는 구절이다.

사람은 흔들리지만 자연은 흔들리지 않는다. 담장 너머의 소란에도 나무 그림자는 그대로이고, 잔디는 그대로이며, 저녁빛은 자신의 시간을 따라 천천히 흐른다.

이 장면에서 시인은 자연의 질서를 통해 인간 사회를 되비춘다.

세상은 늘 소란스럽지만 자연은 본래의 리듬을 잃지 않는다. 그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평정(平靜)이다.

특히 후반부에 이르면 시는 더욱 아름다운 생명의 세계로 들어간다.

"잎맥 속에 흐르는 붉은 피
뿌리의 목소리까지 들린다"


이 구절은 감각의 확장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담장 너머의 소리에 집중했던 화자가 이제는 나무의 혈관과 뿌리의 숨결까지 느끼게 된다.

외부의 소란에서 내부의 생명으로 시선이 이동하는 것이다.

결국 시는 소리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그 대신 화자는 휠체어를 풀밭 쪽으로 돌린다. 이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세상의 소란을 향해 달려가지 않고 생명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바꾸는 선택이다.

갈등보다 평화, 소문보다 본질, 소음보다 생명을 향한 움직임이다.

그리고 마지막.

"담장 너머에서 누군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소리가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화자의 내면이 달라진 것일까.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진정한 평화는 세상이 조용해지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중심을 찾는 데서 시작된다.

김선영 시인의 '어떤 관찰'은 일상의 작은 사건을 통해 인간의 심리와 현대사회의 소통 방식을 성찰하는 작품이다.

시인은 자연과 인간을 대비시키며 소란과 평정, 호기심과 성찰, 외부 세계와 내면 세계의 관계를 탐색한다.

특히 휠체어라는 시적 장치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삶의 방향성을 상징한다.

시인은 소음의 근원을 향해 달려가지 않고 생명의 근원인 자연을 향해 나아간다.

이는 오늘날 과도한 정보와 갈등 속에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는가를 묻는 시적 제안이기도 하다.

■ 김선영 시인

여강 김선영 시인은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를 졸업한 뒤 꾸준한 창작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시인이다.

삶의 결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감성과 인간 내면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일상의 작은 풍경 속에서도 깊은 성찰과 위로를 길어 올리는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는 시집 <달팽이 일기>, <어디쯤 가고 있을까>, <시든 시들한 詩>를 비롯해 국영문 시집 <향낭 속에 간직했던 시어가 꽃이 되다>, <감정 스펙트럼 노트>, <봄날은 간다> 등 다수의 저서를 펴내며 꾸준한 창작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인간의 감정과 자연의 생명력을 섬세하게 결합하는 서정성은 김선영 시인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특징으로 평가받는다.

문학적 성과 또한 눈부시다.

제17회 서울시문학상, 전국나라사랑 독도사랑 수필부문 최우수상, 제27회 영랑문학상 본상, 제28회 순수문학상 본상, 제22회 황진이문학상 본상, Poetry Korea 2021 국제화상, 제9회 전라북도 인물대상(문화창작 공로부문 대상), 제3회 서울시민문학상 대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았다.

현재는 사단법인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이사, 사단법인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기독교문인협회 간사 및 편집위원, 월간 순수문학 부회장, 사단법인 한국시인협회 회원, 동국문학인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문단의 발전과 문학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김선영 시인의 시는 화려한 수사보다 삶의 체온을 담아내는 언어에 가깝다.

자연과 인간, 기억과 상처, 사랑과 위로를 한 편의 시 속에 녹여내며 독자들에게 공감과 치유의 시간을 선물한다.

"마음의 결을 어루만지는 시, 삶을 위로하는 언어의 빛"이라는 소개 문구처럼 그의 시 세계는 상처 입은 시대를 향한 따뜻한 손길이자,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사유의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특히 최근 작품들에서는 자연과 생명의 질서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는 성찰적 시선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상은 언제나 담장 너머의 소리로 가득하다. 누군가는 분노를 전하고, 누군가는 불안을 퍼뜨리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으려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소란 속에서도 나무는 제 속도로 자라고, 풀잎은 저녁빛을 받아들이며, 하루는 조용히 저물어 간다.

김선영 시인의 '어떤 관찰'은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의 귀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담장 너머의 소문인가, 아니면 잎맥 속을 흐르는 생명의 목소리인가.

때로는 세상의 소음을 따라가는 것보다 풀밭을 향해 천천히 방향을 돌리는 일이 더 큰 지혜일 수 있다.

시가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 것은 수군거림의 내용이 아니라, 그 소리를 내려놓고 자연의 숨결에 귀 기울이던 한 사람의 고요한 뒷모습이다.

그것이 이 시가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깊은 위로이자 성찰의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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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섭 기자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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