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시는 언어를 넘어 마음을 잇는다. 한국어와 영어를 나란히 실은 전민 시인의 제14 한영시집 <Lights of Love(사랑의 빛)>(도서출판 시아북)은 인간과 사랑, 시간과 생명, 민주주의와 평화, 그리고 한국과 세계를 잇는 시적 교량이다.
삶을 성찰하는 철학적 시편들과 국내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작품 해설이 함께 수록되어 한 권의 시집이면서 동시에 한 편의 문학 강의처럼 읽힌다.
사랑은 영혼을 뽑아 빛을 만든다
표제작 '사랑의 빛'에서 시인은 누에가 자신의 몸을 뽑아 비단을 만들듯, 사랑은 영혼을 뽑아 진실한 나눔을 만든다고 노래한다.
"누에는 제 몸을 뽑아
껍질로 비단을 짜지만
사랑은 영혼을 뽑아
진실로 자선을 베푼다."
이 네 줄은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이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희생이며, 베풂이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빛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시간과 인생을 노래하는 시인
전민 시인의 시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화두는 '시간'이다. '인생론'에서는 "인생은 용돈"이라는 단 한 줄로 인생의 유한함을 압축한다.
또 '시간은행'에서는 시간을 저축하고 대출할 수 있다면 생명이 위급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싶다는 상상을 펼친다. '인생통장'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남은 시간 잔고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삶을 돌아본다. 이처럼 전민 시인은 시간을 경제의 언어로 비유하면서도 결국 인간의 존재를 묻는다.
사회를 향한 따뜻한 시선
이 시집은 서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민'에서는 국민을 할인상품처럼 이용하는 정치 현실을 풍자하고, '민주화'에서는 "대화는 사랑을"이라는 희망의 결론을 제시한다.
'북 핵실험 악몽'에서는 핵전쟁의 공포를 통해 평화의 소중함을 절규한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증오보다 사랑과 화해를 선택하는 시인의 태도가 인상적이다.
자연 속에서 인간을 배우다
전민 시인의 자연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난초에서는 품격을, 감나무에서는 교육과 성장의 의미를, 연꽃에서는 양심을, 거울에서는 정직을, 암소에서는 생명의 존엄을 읽어낸다.
사물은 철학이 되고, 자연은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한국과 세계를 잇는 시
이번 시집에는 영어 번역뿐 아니라 베트남어 작품도 함께 실렸다.
'하노이엔 하롱베이가 있다'는 2024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되었던 '제22회 베트남 시의 날'에서 낭송된 작품으로, 하노이와 하롱베이를 한국인의 시선으로 아름답게 노래한다.
국내 독자는 물론 해외 독자들도 함께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한 점에서 문학의 국제화를 실천한 시집이라 할 수 있다.
국내 문단이 함께 읽은 시집
이 시집에는 김철교, 이오장, 양왕용, 김용재, 김명수, 이채강, 나태주 시인 등 국내 대표 문인들의 작품 평론 10편이 함께 실렸다.
작품마다 다양한 해석과 감상이 더해져 독자는 한 편의 시를 여러 개의 창으로 바라보는 즐거움을 얻게 된다.

시인의 길, 사랑의 빛을 향하여
"인생은 용돈입니다."
단 열한 글자 남짓한 이 한 문장은 전민(田民) 시인은 시인의 시세계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문장이다.
인생을 거창한 철학이나 운명으로 설명하기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졌다가 언젠가는 모두 써버리고 마는 '용돈'에 비유하는 그의 시선은 담백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1948년 충남 홍성군 은하면 금국리에서 태어난 전민(본명 전병기)은 만해 한용운 시인의 생가와 이웃한 마을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책을 읽고 싶어도 책이 귀했던 시절을 보냈지만, 홍성고등학교 도서위원을 자원하며 마음껏 독서를 시작한 경험은 훗날 그의 문학 인생을 여는 결정적인 씨앗이 되었다.
공주교육대학 재학 시절 석초문학회에서 윤석산 시인과 문학평론가 박철희 교수를 만나 본격적으로 시의 길에 들어섰고, 1971년 새여울시문학 창립동인으로 활동하며 나태주, 이장희, 김명수 등과 함께 작품을 다듬었다.
이후 1985년 월간 <시문학> 추천을 통해 정식 등단하면서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국어교사로 평생 학생들과 함께한 그는 대전 전민고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난 뒤 오히려 더욱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주민등록증을 갱신하며>를 시작으로 <도망친 암소>, <행복은 비워둔 자리를 찾는다>, <사랑의 빛>에 이르기까지 14권의 시집과 칼럼집을 펴내며 삶을 시로 기록해 왔다.
그의 시는 화려한 언어보다 생활 속 사물에서 철학을 길어 올린다.
'인생론'에서는 시간을 용돈으로, '인생통장'에서는 삶을 통장으로, '시간은행'에서는 시간을 저축과 대출의 대상으로 바꾸어 우리 삶의 유한성을 새로운 은유로 보여준다.
'감나무'에서는 접붙임을 인간 성장의 비유로, '난'에서는 우정을, '거울'에서는 정직을, '마음의 문'에서는 양심을 이야기한다. 평범한 사물들이 그의 손을 거치면 삶의 교훈과 철학을 품은 상징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의 문학관은 한마디로 '사랑'이다.
"시는 사랑과 같은 근원에서 태어난다."
고향을 향한 그리움, 어머니의 헌신, 자연에 대한 경외, 사람을 향한 연민은 그의 시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비판을 하더라도 증오가 아니라 사랑으로 귀결되고, 풍자를 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다.
문학단체 활동에서도 그는 언제나 현장을 지켜 왔다. 호서문학회 회장,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한국시문학문인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PEN한국본부 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국제계관시인연합한국본부 이사장으로 한국 시의 영어 번역과 해외 보급에 힘쓰고 있다.
특히 고(故) 창운 김용재 시인의 시비 건립을 위해 전국 문인들과 뜻을 모아 대전 테미문학관에 시비를 세우는 데 중심 역할을 했으며, 한국 시를 세계에 소개하는 영문 시선집 <poetry korea> 발간 사업도 이어가고 있다.
후학들에게 전하는 그의 말은 단순하지만 깊다.
"처음부터 완벽한 시를 쓰려 하지 말라. 진실한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시는 기술보다 진정성이고, 화려한 기교보다 삶의 체온이라는 믿음이다.
그는 요즘도 특별한 약속이 없는 날이면 하루 대부분을 책상 앞에서 책과 원고를 벗 삼아 보낸다. 틈이 나면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리며 새로운 시상을 얻는다. 여행 또한 그의 또 다른 시 창작의 원천이다.
전민 시인이 말하는 '그대'는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다. 고향이고, 유년의 기억이며, 어머니이고, 사랑이며, 시 그 자체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언제나 사람 냄새가 난다. 세월이 흘러도 삶을 향한 따뜻한 시선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오늘도 남은 시간을 아껴 쓰며 자신의 '인생통장'을 조용히 채워가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독자들에게 사랑의 빛으로 오래도록 남아 또 다른 삶을 비추고 있다.
전민 시인의
그는 사랑을 말하면서도 인간의 품격을 생각하고, 시간을 노래하면서도 삶의 책임을 돌아본다. 자연을 통해 인간을 배우고, 현실을 통해 희망을 찾으며,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베트남어를 통해 문학의 국경을 허문다.
사랑은 빛이 되고, 시간은 통장이 되며, 인생은 용돈이 되고, 마음은 문이 된다. 그 비유들은 결국 한 사람의 삶을 더 따뜻하게 비추는 등불이 된다.
<사랑의 빛>은 전민 시인이 오랜 세월 시로 길어 올린 삶의 철학을 한 권에 담아낸, 깊은 울림의 한영시집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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