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문학은 이름으로 서지 않는다

  • 등록 2026.07.17 02: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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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이인의 그림자와 상업화된 문학의 민낯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편집국장 = 문학은 이름이 아니라 작품으로 기억된다. 한 사람의 이름은 수십 년 동안 써 내려간 작품과 삶, 그리고 독자와 쌓아온 신뢰가 만든 또 하나의 문학사다. 그래서 문인의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사람의 문학적 양심과 정신을 상징하는 고유한 브랜드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문단의 현실은 그 이름마저 흔들고 있다. 동명이인이라는 우연은 때로 한 사람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고, 평생 쌓아온 명예를 훼손하는 그림자가 된다. 작품과 인격은 전혀 다른데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독자의 오해를 받는 현실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문학인의 가장 큰 자산은 신뢰다. 그런데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에서는 검색창 하나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흔해졌다. SNS와 온라인 홍보가 범람하면서 이름은 쉽게 소비되고, 진실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결국 한 사람의 행동이 또 다른 사람의 평판을 대신하는 왜곡이 발생한다.

그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혼란이 문학계의 상업주의와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문학은 본래 인간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문학은 시장의 논리와 홍보의 기술에 잠식되기 시작했다. 작품보다 화려한 이력이 앞서고, 창작보다 포장이 더 큰 힘을 갖는 풍토가 형성되고 있다.

그 단적인 사례가 무분별하게 양산되는 각종 문학상이다.

문학상은 본래 뛰어난 작품을 발굴하고 문학적 성취를 기리는 제도다. 공정한 심사와 사회적 권위, 그리고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문학의 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출처와 심사 기준이 불분명하거나 문학적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들이 난립하고, 이를 개인의 경력과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일이 적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물론 모든 민간 문학상이나 신생 문학상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규모와 관계없이 공정한 심사와 문학적 가치에 기반해 운영되는 상들도 많다. 문제는 상 자체가 아니라, 검증과 신뢰보다 상업적 이익이나 과도한 자기 홍보를 우선하는 운영 방식이다.

상이 많아질수록 문학이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학상의 권위가 희석되고 독자들은 무엇을 신뢰해야 하는지 혼란에 빠진다. 문학은 작품으로 평가받아야 하는데, 상의 개수로 실력을 증명하려는 기형적인 풍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상업적 행태가 문학인의 이름과 결합될 때다.

이름은 같고, 홍보는 넘쳐나며, 독자는 구분하지 못한다. 결국 평생 작품으로 살아온 문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그 사람이 아니다"라는 해명을 반복해야 하는 현실은 문학계 전체가 함께 성찰해야 할 문제다.

문학은 본래 경쟁보다 공존의 세계다. 그러나 오늘날 일부 문단에서는 작품보다 직함이 많고, 시보다 상장이 많으며, 문학보다 홍보물이 더 많이 회자되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난다. 이름 앞에 붙는 화려한 수식은 늘어나는데 정작 독자의 마음에 남는 작품은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예로부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다. 본래 경제학에서 비롯된 이 말은 오늘의 문학 현실에도 낯설지 않다. 화려한 포장과 과장된 홍보가 묵묵히 작품을 써온 문인을 가리고, 문학의 본질보다 상업성이 더 큰 목소리를 내는 순간, 문단은 신뢰를 잃기 시작한다.

문학의 첫 번째 덕목은 순수성이다.

순수성은 세상과 담을 쌓는 고결함이 아니라, 작품 앞에서 정직하려는 자세다. 독자를 속이지 않고, 문학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소비하지 않으며, 작품으로 평가받겠다는 양심이다. 이러한 순수성이 무너질 때 문학은 문화가 아니라 상품으로 전락한다.

문학사는 결국 작품을 기억한다. 일시적인 명성과 화려한 이력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지만, 진정성 있는 한 편의 시와 한 권의 책은 오래 살아남는다. 이름은 같을 수 있어도 문학정신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이제 문단도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문학상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문학단체는 무엇으로 권위를 얻는가. 문인은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는가, 아니면 직함과 수상 경력으로 소비되고 있는가.

문학이 다시 독자의 신뢰를 얻으려면 답은 분명하다. 작품이 이력을 이기고, 양심이 홍보를 이기며, 순수한 창작이 상업적 욕망을 이겨야 한다. 이름보다 작품을 먼저 읽고, 화려한 경력보다 문학적 깊이를 먼저 바라보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비로소 문학은 본래의 품격을 회복할 수 있다.

동명이인의 그림자는 언젠가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문학의 순수성을 잃는다면 그 상처는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문단 전체의 상처로 오래 남게 될 것이다. 문학은 이름으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끝내 작품으로 증명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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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섭 기자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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