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세상에는 눈으로만 다녀오는 여행이 있고, 삶을 바꾸는 여행이 있다. 시인은 길을 떠나 풍경을 만나는 사람이 아니다. 풍경을 통해 잃어버린 자신을 다시 만나는 사람이다.
한경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다나킬사막 검은 숨>(심상)은 후자에 속한다. 에티오피아 다나킬사막에서 나미비아, 오카방고 델타, 하롱베이와 타지마할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을 누빈 여정은 단순한 기행이 아니라 존재를 성찰하는 시적 순례가 된다.
여행은 목적이 아니라 사유가 되고, 사막은 배경이 아니라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 시집은 풍경을 기록한 여행시집이 아니라, 풍경 속에서 다시 자신을 발견한 한 시인의 내면 일기이며, 여행문학과 서정시가 아름답게 융합된 한 편의 문학적 순례기다.
풍경은 시가 되고, 시는 다시 길이 되었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낯선 길 위에서 잊었던 나를 다시 만났다. 풍경은 시가 되었고, 시는 다시 길이 되었다."
이 한 문장이 이번 시집의 미학을 모두 설명한다.
오늘날 여행은 흔하다. 그러나 풍경을 자신의 내면으로 끌어들여 시로 승화시키는 일은 흔하지 않다.
한경 시인의 여행은 관광이 아니다. 그에게 길은 수행이고, 풍경은 질문이며, 시는 그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이번 시집은 다나킬사막, 나미비아 사막, 바하리아 사막, 오카방고 델타, 하롱베이, 타지마할, 밴쿠버, 람팡 등 세계 곳곳을 무대로 하지만 결국 한 사람의 삶을 향해 되돌아오는 긴 순례의 기록이다.
표제작, 죽음의 땅에서 생명을 노래하다
■ 다나킬사막 검은 숨
- 한경
심장보다 뜨거운 공기
검게 굳은 용암 속
아직도 붉은 숨을 토해내며
뛰는 맥박
풀빛마저 증발한 검은 사막 위로
소금기 어린 바람과
유황 숨결이 환각처럼 스며든다
태양 아래 몸을 웅크린
날숨 같은 집들
가슴을 조여오는 열기속에
삶의 가장자리에서 버틴다
용암 가시는
발끝마다 검은 꽃을 새기고
빵 냄새를 쫓아
맨발로 달려오는 아이들
우리가 건넨 한 조각의 빵을
한 생의 전부처럼 움켜쥔다
낙타는 소금 벽돌을 등에 지고
끝없는 사막을 묵묵히 헤쳐간다
이곳은
노을마저 죽음의 온도에 매달려있다
- 표제작 '다나킬사막 검은 숨' 전문
이번 시집의 표제작 '다나킬사막 검은 숨'은 여행시의 외형을 지녔지만, 본질적으로는 생명과 존재를 탐구하는 철학시다. 시는 뜨거운 용암과 유황, 소금사막이라는 극한의 자연 속에서 시작한다.
심장보다 뜨거운 공기
검게 굳은 용암 속
아직도 붉은 숨을 토해내며
뛰는 맥박
이 네 행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이미지다. 검게 굳은 용암은 죽음처럼 보이지만 시인은 그 속에서 여전히 "붉은 숨"을 발견한다. 죽은 대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심장을 읽어내는 것이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시인은 인간에게 시선을 돌린다.
빵 냄새를 쫓아
맨발로 달려오는 아이들
우리가 건넨 한 조각의 빵을
한 생의 전부처럼 움켜쥔다
그리고 시는 이렇게 끝난다.
낙타는 소금 벽돌을 등에 지고
끝없는 사막을 묵묵히 헤쳐간다
이곳은
노을마저 죽음의 온도에 매달려 있다.
극한의 자연은 끝내 인간의 삶과 생명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죽음의 땅에서 발견한 생명의 시학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사막을 단순한 자연 풍경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인은 검게 굳은 용암을 암석으로 보지 않는다. 그 안에서 "붉은 숨"을 읽어낸다. 용암은 죽은 돌이 아니라 아직 살아 있는 심장이고, 사막은 침묵하지만 생명은 여전히 맥박친다.
죽음의 이미지 속에서 생명의 본질을 발견하는 시인의 통찰은 이번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시적 정신이다.
검은색과 붉은색이 만들어내는 시적 긴장
시에는 두 가지 색채가 반복된다. 검은색은 용암이며 침묵이고, 죽음이며 고통이다. 반면 붉은색은 심장이며 생명이고 희망이다.
이 강렬한 대비는 단순한 색채의 대비를 넘어 존재의 양면성을 상징한다. 죽음과 생명, 절망과 희망은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비추며 존재의 깊이를 만들어낸다.
빵 한 조각이 보여주는 휴머니즘
이 시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은 아이들이다.
극한의 자연보다 먼저 시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사람이다. 한 조각의 빵을 "한 생의 전부처럼" 움켜쥐는 아이들의 모습은 여행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절박함을 상징한다.
거대한 사막보다 더 큰 존재는 결국 사람이다. 이것이 한경 시인의 시가 지닌 휴머니즘이다.
낙타는 인간의 또 다른 이름
소금 벽돌을 등에 지고 묵묵히 사막을 걷는 낙타는 삶의 은유다. 무거운 짐을 지고도 묵묵히 걸어가는 존재. 그 모습은 결국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 자신의 초상이다.
다나킬 사막은 어떤 곳인가
표제작을 깊이 이해하려면 다나킬 사막의 지리와 생태를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나킬 사막(Danakil Depression)은 에티오피아 북동부와 에리트레아, 지부티 접경의 아파르(Afar) 분지에 자리한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자연환경 가운데 하나다.
일부 지역은 해수면보다 120여 미터 낮고, 연평균 기온은 35℃ 안팎, 한낮에는 50℃를 웃도는 날도 많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유인 지역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아프리카판, 아라비아판, 소말리아판이 갈라지는 지각 경계에 위치한 이곳은 활화산 에르타알레(Erta Ale)의 용암호와 유황지대, 광활한 소금평원으로 유명하다.
노란색과 초록색, 붉은색이 뒤섞인 광물지대는 마치 다른 행성에 온 듯한 초현실적 풍경을 연출한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아파르족이 전통 방식으로 소금을 캐어 낙타에 싣고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한다.
극한의 자연 속에서도 인간은 삶을 이어가고 있으며, 바로 그 삶의 현장이 한경 시인의 시 속에서 생명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난다.
또한 다나킬은 극한 환경에서도 살아가는 미생물이 발견되는 곳으로, 생명의 기원과 외계 생명체 연구의 중요한 현장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죽음의 땅으로 불리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강인한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실험실'인 셈이다.
여행은 결국 인간을 향한다
1부가 세계의 사막과 문명을 노래한다면, 2부는 자연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읽어내고, 3부에서는 인간과 관계의 본질을 탐색한다.
4부에서는 삶과 죽음이라는 철학적 질문으로 깊이를 더하고, 마지막 5부에서는 가족과 부모, 삶의 근원을 돌아보는 따뜻한 회상의 세계를 펼친다.
특히 '엄마의 젖냄새가 피어나는 저녁', '아버지를 만나다', '빈 그릇' 등은 긴 여행 끝에서 결국 인간의 원형적 기억으로 돌아가는 시인의 내면을 보여준다.
세계를 많이 본 사람이 아니라 세계를 통해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 시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읽힌다.

상실을 품고 존재를 응시하는 시인의 눈
한경 시인은 시인이자 수필가, 여행작가로 오랜 세월 세계 여러 나라를 답사하며 풍경과 인간을 기록해 온 중견 문인이다. 그러나 그의 여행은 이국적인 풍광을 수집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낯선 공간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을 자신의 삶과 겹쳐 읽어내는 데 문학적 의미를 둔다.
그의 시 세계에는 언제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이 흐른다. 광활한 사막에서도 먼저 아이들의 눈빛을 바라보고, 빙하 앞에서는 시간의 침묵을 듣고, 오래된 사찰에서는 존재의 흔적을 더듬는다.
자연은 그에게 대상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거울이며, 여행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깊은 사유의 과정이다.
초기 시집 <투루판 사막의 낙타>, <탐보마차이 잉카남자의 눈빛>에서 이미 독창적인 여행 서정을 구축했던 그는 이번 시집에서 그 세계를 더욱 성숙하게 확장한다.
시집 <투루판 사막의 낙타>, <탐보마차이 잉카남자의 눈빛>과 수필집 <숲속의 물고기>, <나미비아 사막의 성자> 등이 있으며, '제3회 현대작가 작가상', 제12회 김기림문학상' 수상 등 다수의 문학상 수상 경력과 해외 문학 교류 활동을 바탕으로 이번 세번 째 여행 시집 <다나킬사막 검은 숨>을 통해 그동안의 예술적 여정을 집대성했다.
풍경은 절제되고 언어는 한층 맑아졌으며, 여행의 감탄은 존재의 성찰로 깊어졌다. 사진과 시가 함께 어우러지는 그의 작품 세계는 독자에게 단순한 읽을거리를 넘어 '함께 떠나는 여행'을 선사한다.
김경수 문학평론가가 읽은 한경의 시
문학평론가 김경수 시인은 한경 시인의 작품세계를 '상실과 침묵의 시적 형상화'라고 정의한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잊히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결국 잊히기 위해 사라져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한경의 시는 바로 그러한 사라짐의 풍경을 붙잡고 싶은 한 사람의 간절한 마음이라고 평한다.
김 평론가에 따르면 한경의 시 속 풍경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다. 그것은 말하지 못한 마음이며, 차마 바라볼 수 없었던 얼굴이고, 늙어가는 손끝에 새겨진 삶의 무늬다.
그래서 그의 시는 화려한 수사보다 절제된 언어로 더 깊은 울림을 전한다.
이번 시집에서도 다나킬의 검은 용암은 인간 존재의 상처가 되고, 끝없는 소금길은 삶의 무게를 견디는 시간의 은유가 된다.
그는 극한의 풍경을 통해 인간의 상실과 고독을 응시하면서도 끝내 생명의 온기를 놓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한경의 여행시는 풍경을 노래하는 시가 아니라 인간을 회복시키는 시이며, 상실을 희망으로 전환시키는 서정의 힘을 보여준다.
서정과 휴머니즘의 완성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는 추천사에서 "한경 시인의 시는 새로운 세계와 마주하는 놀라움이 경치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발견으로 이어진다"고 평했다.
그의 말처럼 한경의 시는 풍경보다 사람을 먼저 바라본다. 사막과 바다, 산과 강은 결국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또 다른 언어가 된다.
<다나킬사막 검은 숨>은 사막을 노래한 시집이 아니다. 인간을 노래한 시집이다.
한경 시인은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땅을 걸으며 가장 따뜻한 인간의 체온을 발견했고, 죽음의 풍경 속에서 생명의 맥박을 길어 올렸다. 그의 시는 여행의 기록이 아니라 존재의 기록이며, 풍경의 재현이 아니라 삶의 성찰이다.
오늘날 여행은 누구나 떠날 수 있지만, 모든 여행이 시가 되지는 않는다. 한경 시인은 길 위에서 풍경을 소비하지 않고 삶의 본질을 길어 올리는 보기 드문 여행 시인이다. 그의 시 속 사막은 메마른 불모의 땅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비추는 거대한 거울이 된다.
한 권의 시집을 덮고 나면 독자는 다나킬 사막의 뜨거운 열기보다 그 사막을 건너며 끝내 사람을 바라본 시인의 따뜻한 시선을 오래 기억하게 된다. 그것이 《다나킬사막 검은 숨》이 우리 시대 독자들에게 건네는 가장 깊은 문학적 성취이며,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조용한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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