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몸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중증 심신부자유인 김성인 스테파노 시인. 그러나 그의 영혼은 몸의 경계를 넘어 하느님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간다.
볼펜에서 연필로, 샤프에서 컴퓨터로 도구를 바꾸어가며 한 글자 한 글자를 써 내려간 그의 시는 단순한 문학적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은 한 인간의 기록이며, 하느님께 올리는 기도이고, 세상을 향한 사랑의 고백이다. 시집 <못다 한 말 한마디>는 그렇게 '몸으로 쓴 영혼의 시'다.
"남들은 자식 낳아 키울 때, 나는 그보다 더 좋은 글을 썼다"
김성인 스테파노 시인의 시집 <못다 한 말 한마디>(이든북)를 펼치면 먼저 그의 삶이 보인다.
시인은 책머리에서 "남들은 장가들고 시집가서 자식 낳아 키울 때 / 나는 그보다 더 좋은 글을 썼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에게 글쓰기는 취미도, 단순한 창작 활동도 아니다. 살아가는 일이자 자신을 세상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에 가깝다.
처음에는 볼펜으로 글을 썼다. 틀린 글자를 고칠 수 없어 연필을 사용했고, 연필을 깎아 쓰는 일이 불편해 샤프를 사용했다. 샤프도 자주 고장이 나자 컴퓨터를 만났다.
그렇게 한 글자 한 글자가 모이고, 한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고, 마침내 시가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시인은 "몸 하나 내 마음대로 못 움직이고 / 하루라도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 살아가기 힘든 상황"이라고 자신의 삶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그는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쓸 수 없는 몸이기에 더 절실하게 썼고, 말로 다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기에 시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세상에 내보냈다.
그래서 <못다 한 말 한마디>는 제목 그대로 끝내 하지 못한 말들을 시로 완성해 세상에 건네는 책이다.
고통을 슬픔으로만 남겨두지 않는 사람
시집의 제1부 제목은 '슬픔의 미학'이다.
'아, 주님은 이토록 나를 사랑하셨네', '고통 중에서도', '그러려니 하고 살았습니다', '나, 죽어서 무엇을 남길까', '마음이 아프다는 것', '어머니를 추억하며', '우리 엄마 하늘나라 보내고', '홀로 있는 시간' 등의 작품이 이어진다.
제목만 보면 고통과 외로움, 죽음과 이별의 정서가 짙게 배어 있다. 하지만 시인의 슬픔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의 시에서 슬픔은 오히려 삶을 더 깊이 바라보게 하는 창이 된다.
몸이 아프다는 사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 어머니를 떠나보내야 했던 기억, 홀로 있는 시간까지도 그는 외면하지 않는다. 고통을 아름답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 고통 속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사랑을 찾아낸다.
그것이 김성인 시의 중요한 힘이다.
고통을 없애달라고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살아갈 힘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 이것이 그의 시가 보여주는 신앙의 깊이다.
한 송이 풀꽃처럼 바라본 세상
제2부 '한 송이 풀꽃처럼'에서는 시인의 시선이 한층 더 일상으로 내려온다.
'감자', '강아지', '딸기', '떡국', '마른 멸치 한 마리', '말복', '돈', '커피 한 잔에는', '풍선', '해와 달' 등 제목부터 소박하고 친근하다.
거창한 철학적 언어 대신 우리 곁에서 흔히 만나는 사물과 사람, 계절과 음식이 등장한다.
그러나 평범한 것들이 시인의 눈을 통과하면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감자 한 알, 마른 멸치 한 마리, 커피 한 잔, 계절의 변화와 바람까지도 삶을 생각하게 하는 소재가 된다.
이는 시인의 문학이 특별한 언어보다 삶 자체를 믿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는 거대한 세상을 직접 움직일 수 없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작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래서 '한 송이 풀꽃처럼'이라는 부제는 시인의 삶과 문학을 상징하는 듯하다.
크고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누구에게나 눈에 띄지 않아도 좋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피어나는 것, 그*이 시인이 생각하는 삶의 아름다움인지도 모른다.
"말로 그림을 그립니다" - 시는 영혼의 그림
이 시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나의 말(語)'이다.
뒤틀리는 손으로 글을 씁니다
말(語)로 그림을 그립니다
시인은 자신의 글쓰기를 ‘말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속 그림을 “항아리 속 된장, 간장, 고추장 맛”에 비유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익어가는 장처럼 자신의 영혼도 빛을 향해 익어간다는 것이다.
한 줄기
고운 빛을 향해
익어가는
영혼의 그림입니다
이 마지막 구절은 김성인 시인의 문학관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에게 시는 재능을 과시하기 위한 언어가 아니다. 문학적 기교를 뽐내기 위한 것도 아니다.
자신의 영혼이 빛을 향해 익어가는 과정 그 자체가 시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문장은 때로 소박하고 단순하다.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는 살아온 시간과 고통, 감사와 기도, 사람에 대한 사랑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사랑에 집착 말고 놓아주자"
표제시 '못다한 말 한마디'는 이 시집의 정서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못다 한 말 한마디가 마음을 아프게 하고, 못다 쓴 단어 하나가 가슴을 저미게 한다. 사랑한다고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나가고, 사랑의 열병을 앓듯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시인은 마침내 이렇게 깨닫는다.
사랑에 집착 말고 놓아주자
그게 진정 사랑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 대목은 단순한 이별의 시어를 넘어선다.
사랑은 붙잡는 것만이 아니라 놓아주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 상대의 자유를 인정하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날려 보내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어쩌면 이 시는 시인 자신의 삶과도 닿아 있다.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삶 속에서도 그는 세상을 원망하기보다 사랑을 선택한다. 자신의 고통에 매몰되기보다 타인의 아픔을 바라본다.
그래서 그의 사랑은 소유의 언어가 아니라 봉헌과 나눔의 언어로 확장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가 전하는 가장 큰 메시지
제3부 '매일 그대와 함께'에 이르면 시집의 중심은 보다 분명하게 신앙으로 향한다.
'2024년 사순시기에'를 비롯해 '가톨릭 신앙', '기도', '기쁜 예수님 부활을 맞이하며', '나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유', '내 친구 하느님', '마음 안에 계신 예수님', '성모님께 바치는 글', '우리 엄마 성모님', '봉헌기도',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등의 작품은 시인의 신앙 여정을 보여준다.
여기서 하느님은 멀리 계신 절대자가 아니다.
시인의 곁에서 함께 걷는 친구이고, 마음속에 계시는 존재이며, 고통을 견디게 하는 힘이다.
특히 '내 친구 하느님'이라는 표현은 김성인 스테파노의 신앙을 잘 보여준다.
하느님은 두려움의 대상이기 전에 삶의 동반자다.
그렇기에 시인은 자신의 몸을 ‘부자유’라고 말하면서도 영혼의 자유를 잃지 않는다.
추천사를 쓴 김민엽 프란치스코 신부는 김성인 스테파노 형제의 글자를 "하느님께 드리는 진실한 증언"으로 바라본다. 또한 고통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불편한 몸으로 희망을 노래하는 이 시집을 "하나의 기적"이라고 평가한다.
이는 단순한 추천의 말을 넘어 이 시집의 문학적·신앙적 성격을 정확히 짚은 평가라 할 수 있다.
빈방에서도 시인은 누군가와 함께 있다
'아무도 없는 빈방에서'는 짧지만 깊은 울림을 남기는 작품이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종이 위에 누군가의 이름을 썼다가 지우고, 다시 썼다가 지운다. 그러다가 방문객이 들어오면 흐트러진 정신을 가다듬느라 애를 먹는다.
그리고 시인은 주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늘 깨어있으라."
이 시에는 김성인 시인의 일상과 신앙, 고독과 문학이 한꺼번에 들어 있다.
빈방은 고독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창작의 공간이다.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그곳에는 시인이 있고, 시인의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을 지켜보는 하느님이 있다.
그래서 빈방은 결코 완전한 빈방이 아니다. 시를 쓰는 순간, 그는 세상과 연결되고 하느님과 대화한다.
그에게 글쓰기는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인 동시에 외로움을 사랑으로 바꾸는 방법이다.
'몸으로 쓰는 일기'에서 '하느님께 바치는 글'까지
김성인 스테파노 시인의 문학 여정은 1994년 산문집 <몸으로 쓰는 일기>로도 이어진다.
이번 시집 <못다 한 말 한마디>는 그 제목과도 묘하게 연결된다.
'몸으로 쓰는 일기'에서 '하느님께 바치는 글'로.
두 책 사이에는 긴 시간이 놓여 있지만, 그 중심에는 변하지 않는 한 사람이 있다.
몸의 한계를 문학으로 넘어서는 사람, 자신의 삶을 글로 기록하며 타인에게 희망을 건네는 사람이다.
그는 책머리에서 자신의 글이 교도소에 있는 이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힌다. 또 삶에 지치고 몸과 마음이 부자유해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김성인 문학의 방향이 선명해진다.
그의 시는 자기 고백에 머물지 않는다.
나의 고통을 통해 너의 고통을 이해하고, 나의 희망을 통해 너에게도 희망을 건네는 문학이다.
단순함 속에 깃든 아름다움
김성인 시인은 자신의 글과 생활을 두고 "하느님 보시기에 그 나름대로 아름다움이 아닐까?"라고 자문한다.
바로 이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못다 한 말 한마디>를 관통하는 미학이다.
화려한 수사가 없어도 된다. 완벽한 문장이 아니어도 된다. 중요한 것은 진실하게 살아낸 삶에서 나온 한마디다. 그 한마디가 때로는 시가 되고, 때로는 기도가 되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건네는 위로가 된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다 보면 독자는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사랑한다고 말했는가.
고맙다고 말했는가.
미안하다고 말했는가.
그리고 아직도 하지 못한 말은 무엇인가.
<못다 한 말 한마디>는 독자에게 바로 그 질문을 건넨다.
고통을 넘어 사랑으로, 슬픔을 넘어 감사로
김성인 스테파노의 시 세계에는 반복해서 등장하는 몇 개의 큰 단어가 있다.
고통, 사랑, 어머니, 친구, 하느님, 감사, 희망 그리고 삶.
그러나 이 단어들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고통은 기도가 되고, 기도는 감사가 되며, 감사는 사랑이 된다. 사랑은 다시 희망이 되어 삶을 이어가게 한다. 그의 문학은 이러한 순환 속에서 완성된다.
그렇기에 『못다 한 말 한마디』는 장애문학이라는 한 범주에만 가둘 수 없다.
물론 시인의 신체적 삶은 이 시집의 중요한 배경이다. 하지만 그가 궁극적으로 말하는 것은 장애가 아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이다.
몸이 건강한 사람도 삶의 어느 순간에는 자유롭지 못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하고, 외로움에 갇히기도 하며,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무너지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김성인 스테파노의 시는 조용히 말한다.
아직 살아 있다면, 아직 사랑할 수 있다면, 아직 감사할 수 있다면, 삶은 계속된다고.

시인의 손끝에서 피어난 '작은 기적'
1961년 대전에서 태어난 김성인 스테파노 시인은 1987년 대전 대흥동주교좌성당에서 세례를 받으며 가톨릭 신앙의 길에 들어섰다. 1994년 산문집 <몸으로 쓰는 일기>를 출간했으며 현재 천주교 대전교구 장애인 사목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삶을 비극의 서사로만 기록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을 통과하며 발견한 작은 기쁨을 기록했고, 자신을 돌보는 사람들에게 감사했으며, 스쳐 지나간 신부와 수녀, 수사들에게도 평화를 기원했다.
특히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자신을 돌보고 책의 출간을 도운 조용성 루카 형제와 조남연 자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 자신을 알게 모르게 도와준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며 감사한다. 이러한 감사의 마음은 시집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이 책은 한 시인의 시집인 동시에 한 사람이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하느님께 올리는 감사의 헌사이기도 하다.
아직 못다 한 말이 남아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못다 한 말이 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사람도 있고, 고맙다고 말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 미안하다는 말을 삼킨 채 시간이 흘러버린 경우도 있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는 깨닫는다.
말할 수 있을 때 말해야 한다는 것을.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감사할 수 있을 때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김성인 스테파노 시인의 『못다 한 말 한마디』가 특별한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마음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뒤틀리는 손으로 한 글자씩 써 내려갔고, 한 글자를 한 단어로, 한 단어를 한 편의 시로, 한 편의 시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책을 세상에 내놓으며 자신이 못다 한 말을 우리에게 건넨다.
그 말은 결국 하나의 문장으로 모인다.
"사랑하자."
고통 속에서도 사랑하고, 외로움 속에서도 감사하고, 오늘이 힘겨워도 내일을 기다리며, 마지막 순간까지 하느님을 믿고 살아가자고.
<못다 한 말 한마디>는 그렇게 한 시인의 못다 한 말을 넘어 우리 모두가 아직 하지 못한 말들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몸은 한계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영혼까지 가둘 수는 없다. 김성인 스테파노 시인은 그 사실을 자신의 삶과 시로 증명하고 있다.
뒤틀리는 손으로 쓴 한 줄의 시가 때로는 온전한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보다 더 큰 울림을 전한다.
그의 시는 오늘도 빛을 향해 익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빛은, 한 사람의 영혼에서 시작되어 독자의 마음으로 조용히 번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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