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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창일 시인, "시(詩)의 날, 언어의 종소리를 울리며"

'시의 날'에 부쳐 언어와 존재에 대한 고찰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11월 1일은 '시의 날'이다. 1987년 한국현대시인협회와 한국시인협회가 공동으로 제정한 이 날은 "시는 삶과 청정(淸正)을 가꾸는 언어의 집"이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한국현대시인협회 권일송 회장의 제안으로 한국시인협회 김춘수 회장이 뜻을 함께하면서 1987년 11월 1일 세종문화회관 광장 가설무대에서 첫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오후 4시, 언어의 성전에서 울린 첫 종소리는 한국 현대시가 사회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시의 날'을 제안한 권일송 시인(1933~1995, 전북 순창 출신)은 대한민국 지성의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목포 문태고등학교(1960년 대 말)에서 교편생활을 하며 청춘의 언어를 가르쳤고, 이후 서울로 올라와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으로 추대되며 1970년대 초부터 서울 생활을 하였다.

권일송 시인은 소년 한국일보의 김수남 사장이나 한국일보 김성우 국장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다. 시인으로는 김수영, 문덕수, 김춘수, 박재삼, 황금찬 시인 등 당대 문단의 거장들과의 교류 속에서 그는 "시가 언어의 양심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굳혔다.

오늘날 '시의 날'은 우리 사회가 언어의 종소리를 다시 울리는 상징적 선언이다. 말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정작 '진심의 언어'는 사라지고 있다.

증오를 부추기는 언어, 자극을 파는 언어, 심지어 종교의 언어마저 상업화된 현실 속에서 시는 묻는다.

"그대는 아직 언어를 믿는가?"

시는 문학의 한 장르가 아니라, 인간이 언어라는 신의 선물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창문이다. 시의 언어는 효율적이지 않다. 계산 대신 감각을, 이익 대신 생명을 품는다. 시인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이름조차 불리지 않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의 날'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큰 메시지는 분명하다.

"언어는 권력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통로다."

언어가 사람을 변화시키듯, 시의 언어는 인간의 내면을 흔든다. 시인은 단어로 상처받은 존재의 심연을 어루만지고, 그 창작의 행위는 인간의 죄와 허무를 일으켜 세운다. 그리하여 시는 늘 청정(淸正)의 방향을 향한다.

오늘날 세상은 언어조차 소비된다. 시의 언어마저 장식품처럼 소비된다. 그러나 '시의 날'은 단순히 "시를 읽자"가 아니라 "언어를 회개하자"는 날이다. 거짓말, 조롱, 혐오의 말들이 난무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다시금 "선한 자가 보기에 좋았던 말의 세계"를 기억해야 한다.

시인은 슬픔과 분노를 재해석하여 그 안에 희망의 불씨를 심는다.

오늘의 언론이 시에 배워야 할 미학은 바로 '시화무(詩花無)'다. 시화무란 '시의 꽃은 무한히 피어난다'는 뜻이다. 뉴스가 정론을 외치지만, 진실은 종종 정론의 틀 바깥에서 움튼다.

시인은 단 한 줄의 시를 위해 며칠, 몇 달의 고독한 밤을 견딘다. 그 고독 속에서 단어는 숙성되고, 의미는 빛이 된다. 시가 태어나는 순간, 그 고독은 공동체의 빛으로 바뀐다.

"시를 쓴다는 것은 자기 안의 침묵이 타인의 침묵과 만나는 일이다."

'시의 날'은 '나'를 넘어 '우리'를 기억하는 날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담을 허물고, 상처를 나누며, 함께 울고 웃는 시간이다. 시와 청정히 만나는 순간, 언어는 더는 관념이 아니라 공동체의 숨결이 된다. 시란 결국 인간의 영혼을 씻는 물이자, 세상을 새롭게 보는 창이다.

이제 우리는 '함께 말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언어를 쓰지만 서로 다른 세계를 산다. '시의 날'은 인간의 마음속 투명한 언어를 다시 불러내는 초대장이다. 정치도, 이념도 아닌, 인간 본래의 말, 그 순수한 언어를 다시 세우자는 날이다.

시인은 언어로 세상을 빚는다. 그 언어는 사람의 눈을 들어 하늘을 보게 한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언어를 다시 세우는 일이며, 언어를 믿는다는 것은 곧 바르게 걷는 일이다.

'시의 날'을 맞으며, 시인은 이렇게 기도한다.

"한 줄의 시가 사람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무너진 영혼을 일으키게 하소서. 우리의 언어가 다시 하얀 구름처럼 맑아지게 하소서."

언어는 세상을 이끈다. 언어를 잃으면 세상도 방황한다. 그래서 '시의 날'은 만상(萬想)의 언어를 다시 건축하는 날, 세상의 말이 다시 시로 정화되는 날이다.

"시는 언어의 종소리다. 그 종소리가 멈추는 순간, 인간의 영혼도 침묵한다."


-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화평론가)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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