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폭염이 대지를 달구는 한여름, 문학은 오히려 더욱 푸른 그늘을 만들어낸다. 대전문인총연합회가 발행하는 순수종합문예지 <한국문학시대> 여름호(통권 제85호)가 출간돼 독자들과 만났다.
이번 호는 82세의 늦깎이 신인 시인부터 미래 문단을 이끌 청년작가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아우르며 한국문학의 현재와 미래를 담아냈다. 또한 서포 김만중과 프란츠 카프카를 조명한 특집, 문학기행, 평론, 창작 작품 등을 폭넓게 수록해 순수문학의 깊이와 확장성을 보여주고 있다.
폭염 속 피어난 푸른 언어, 문학의 깊이를 더하다
대전문인총연합회(회장 노수승)가 펴내는 <한국문학시대>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지역 대표 종합문예지다. 이번 여름호는 문학 신인 발굴과 창작 역량 강화, 문학담론 생산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구성돼 지역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문단의 새로운 얼굴을 발굴하는 '우수작품상' 부문은 세대를 초월한 문학적 열정을 확인하는 장이 됐다.
올해 82세의 나이로 시인으로 등단한 한인자 시인은 '미루나무와 할아버지' 외 4편을 통해 삶의 연륜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아내며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늦은 나이에 문학의 길에 들어섰지만 작품에서는 오히려 오랜 세월 축적된 사유와 성찰의 깊이가 묻어난다는 평가를 받았다.
캘리그라피 작가로 활동해 온 권은미 시인 역시 '노란 개나리' 외 4편을 통해 절제된 언어와 섬세한 감성을 선보이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수필 부문에서는 박경희 작가의 '아버지의 앞모습', '채워 두기'와 유재영 작가의 '아름다운 패배자', '쉼표가 필요한 부모들을 위하여'가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이들 작품에 대해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체험과 성찰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작품들"이라고 평가했다.
청년작가마당에 참여한 권영훈 예비 시인도 사실적 관찰력과 신선한 시선이 돋보이는 '귤' 등의 작품을 통해 젊은 세대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서포 김만중에서 카프카까지… 문학의 뿌리와 세계를 잇다
이번 호의 특집은 한국문학의 전통과 세계문학의 흐름을 동시에 조망하는 점이 돋보인다.
특집Ⅰ '한글문학의 선구적 작가 서포 김만중'에서는 대전을 본향으로 둔 조선시대 문인이자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의 저자인 김만중의 문학정신을 재조명했다.
특히 한남대학교 이영환 교수의 '서포 김만중의 상소문 연구'는 문학가이자 정치가였던 김만중의 사상과 시대정신을 분석하며 그의 문학적 가치와 현대적 계승 방안을 모색했다.
특집Ⅱ '프란츠 카프카 문학을 조명하다'에서는 프란츠 카프카의 문학세계를 집중 탐구했다. 이상철 시인의 프라하 카프카 박물관 기행을 통해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 인간 존재의 본질적 질문을 다시 성찰하게 만들며 카프카 문학의 현재적 의미를 짚어냈다.
이는 지역문예지가 단순한 창작 발표의 장을 넘어 세계문학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지적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송강의 문학정신 따라 걷는 인문학 여행
화보와 문학기행 코너도 풍성하다. <한국문학시대>는 한국문학기행 22편으로 송강 정철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을 소개했다
. 방경태 수필가의 '담양에서 진천까지 송강의 강호를 거닐다'는 담양과 고양, 진천을 연결하며 조선 가사문학의 정수를 탐색하는 인문학적 기록이다.
작가는 단순한 유적 답사에 머물지 않고 송강 정철의 문학세계와 시대정신을 오늘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며 우리말 문학의 아름다움을 되살려냈다.
이 밖에도 대전테미문학관 개관, 창운 김용재 박사 시비 제막식, 한국시화창작 시화담전, AI 리터러시 교육 현장 등을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담아내며 지역문학계의 흐름을 기록했다.
창작과 비평이 공존하는 건강한 문예지
초대시 부문에는 양애경 시인을 비롯해 김지은, 주영중 시인의 작품이 수록돼 다양한 시적 실험과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평론 부문은 이번 호의 또 다른 성과로 꼽힌다.
여진수 평론가는 '고통의 얼굴을 응시하는 시적 재판관'에서 김종삼 시인의 작품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했다. 기존의 이미지론이나 죽음의식 중심 해석에서 벗어나 '공감'과 '시적 정의'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문학이 수행해야 할 윤리적 역할과 사회적 책임을 환기시켰다.
이는 <한국문학시대>가 단순히 작품을 싣는 문예지가 아니라 문학 담론을 생산하고 확장하는 비평적 공간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수승 회장은 권두에세이 '폭염 속의 푸른 언어'에서 "문학은 시대의 뜨거움 속에서 더욱 깊어진다"고 말했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언어의 깊이는 점차 얕아지는 시대, 시 한 편과 수필 한 편을 쓰는 일은 자신의 내면을 지켜내는 조용한 저항이라는 것이다.
이번 <한국문학시대> 여름호는 그 말의 실천처럼 읽힌다. 82세 신인 시인의 첫 등단작에서 청년작가의 풋풋한 상상력까지, 서포 김만중의 문학정신에서 카프카의 세계문학까지, 창작에서 비평과 기행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품고 있다.
폭염이 계속되는 계절이지만 문학은 여전히 푸른 숲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한국문학시대> 여름호는 그 숲 한가운데서 독자들에게 쉼과 성찰, 그리고 새로운 사유의 그늘을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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