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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창일 시인 "이것이 정치의 덕목이다"

지위보다 역할을, 권력보다 헌신을 선택한 정치의 품격

정치의 가치는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느냐로 평가되지 않는다. 오히려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추고 필요한 곳으로 향할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영국의 전 총리 알렉 더글러스 흄이 보여준 '아름다운 하향(下向)'의 정치철학은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최근 목포시의원으로 당선된 손혜원 전 국회의원의 행보 역시 이러한 정치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알렉 더글러스 흄(Sir Alec Douglas-Home, 1903~1995)은 영국의 총리(수상)라는 국가 최고 권력의 정점에 올랐던 독특한 인물이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국가가 그의 외교적 역량을 필요로 하자, 그는 주저 없이 사실상 한 단계 아래의 직책인 외무장관직을 수락했다. 이는 세계 정치사에서도 드문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사람이 다시 아래로 내려가 실무 책임을 맡는다는 것은 철저한 자기 절제와 국가를 향한 순수한 헌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흄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자리에 앉아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였다. 지위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역할의 실질적 가치를 우선시한 그의 태도는 영국 정치가 지닌 성숙함과 품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우리는 흄의 정치철학을 떠올리게 하는 한 장면을 목격했다. 손혜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목포시의원에 당선된 것이다.

그의 행보는 영국의 흄이 보여준 '아름다운 하향'의 궤적과 닮아 있다. 재선 국회의원으로 중앙 정치의 중심에서 문화예술 정책과 브랜드 전략을 이끌었던 인물이 이제는 기초지방자치단체 의원으로 주민들의 목소리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듣는 자리를 선택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한국 정치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권위주의적 관행에 적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그가 선택한 무대가 '목포'라는 점 또한 상징적이다. 목포는 근대 역사와 문화유산이 도시 곳곳에 살아 숨 쉬는 곳이지만, 동시에 인구 감소와 지역경제 침체라는 지방소멸의 위기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 지방도시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정치인이 중앙에서 만들어진 거대하고 추상적인 담론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그러나 진정한 민생과 국토 균형발전은 중앙의 탁상공론이 아니라 지방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완성된다.

손 의원이 국회의원 시절부터 목포의 문화적 가치와 도시재생 가능성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 왔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이번 시의원 당선은 자신이 품어온 비전을 말과 구호가 아닌 행정과 조례라는 구체적 실천으로 증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중앙 정치인이 지방의회로 내려왔을 때 발휘할 수 있는 강점도 분명하다. 국가 차원의 정책 수립과 예산 집행 과정을 경험한 정치인이 지방 행정과 조례, 예산 구조를 들여다볼 때 얻게 되는 통찰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중앙 무대에서 쌓은 경험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지역 현안을 국가적 의제로 연결하는 가교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중량감 있는 정치인의 지방의회 참여는 보다 투명하고 치열한 의정활동을 촉진하고, 지방의회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이를 체면을 구기는 일이라며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 길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의 행보에서 정치의 순수성을 발견하게 된다. 만약 그가 권력이나 개인적 영달을 추구하는 정치인이었다면 결코 선택하지 않았을 길이기 때문이다.

권위와 명예라는 무거운 외투를 벗어 던지고 오직 목포의 발전과 자신이 추구해 온 문화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시의원이라는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태도는 정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진정한 국가 발전은 중앙의 화려한 요직에 앉아 있는 소수의 엘리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역의 골목과 현장에서 지위의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고 자신이 가진 역량을 쏟아붓는 이들의 실천적 헌신이 모여 국가의 미래를 만든다.

손혜원 목포시의원 당선인의 이번 행보는 동료 정치인들에게는 '자리가 아니라 역할에 집중하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고, 국민에게는 지방 정치가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사례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의 말이나 과거의 명성이 아니라, 목포의 골목길에서 펼쳐질 구체적인 의정활동과 조례, 그리고 정책적 성과를 주목해야 한다. 지위의 고하를 넘어 지역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몸을 낮춘 그의 용기 있는 행보와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그의 지방 의정이 한국 정치의 새로운 선례로 남기를 기대한다.

정치는 권력을 향해 오르는 사다리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내려가는 길일 때 더욱 아름답다.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은 능력의 문제일 수 있지만, 스스로 낮은 자리로 향하는 것은 철학과 소명의 문제다.

오늘날 국민이 정치에 바라는 것은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책임 있는 실천이다. 알렉 더글러스 흄이 그랬듯, 그리고 손혜원 목포시의원 당선인이 보여주고자 하듯, 정치의 품격은 자리의 높이가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헌신의 깊이에서 결정된다. 그것이야말로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의 덕목이며, 민주주의를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힘이다.


-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화 평론가)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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