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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창일 시인, 이재가 쏘아 올린 한국어의 푸른 불꽃

월드컵 개막식에 울려 퍼진 한국어 한 구절, K-팝을 넘어 한국어의 세계화를 증명하다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2026년 6월, 멕시코시티 아스테카 스타디움의 밤하늘은 전 세계에서 모여든 축구 팬들의 함성과 열기로 들끓고 있었다. 지구촌 최대 축제인 북중미 월드컵 개막식 무대. 거장 안드레아 보첼리의 장엄한 목소리가 경기장을 감싼 뒤, 한 동양인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무대 중앙에 섰다.

클래식과 EDM, 힙합과 K-팝이 어우러진 공식 주제가 'DNA'의 하이라이트 순간, 경기장을 가득 채운 것은 다름 아닌 한국어였다.

"또 넘어져도 나, 또다시 일어나."

전 세계 수억 명의 시청자들에게 전달된 이 한 줄은 단순한 응원가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 노래를 부른 음악가 이재(EJAE) 자신의 삶이었고, K-팝이라는 거대한 산업의 이면에서 묵묵히 버텨온 수많은 창작자들을 향한 헌사였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BTS 정국이 'Dreamers' 세계를 매료시켰다면, 2026년의 이재는 가장 한국적인 언어와 정서를 앞세워 또 다른 역사를 써 내려갔다.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인 이재를 바라보면 화려함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그의 출발점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연습생 시절의 고독한 시간이었다.

거대 기획사의 시스템 속에서 그는 수많은 연습생 중 한 명이었다. 매주 반복되는 평가,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 언제 데뷔할지 모르는 불확실성은 젊은 예술가에게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다.

"대중성이 부족하다."
"목소리에 힘을 빼야 한다."


서로 다른 주문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함께 연습하던 동료들이 어느 날 흔적도 없이 떠나는 모습을 보며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을 것이다.

"내가 가는 길이 맞을까?"
"내 음악은 세상에 닿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연습생으로서의 의무를 다한 뒤, 모두가 돌아간 밤이면 홀로 음악을 썼다. 실패의 두려움과 외로움, 그리고 언젠가 세상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사와 멜로디에 담았다.

훗날 세계인을 울린 노랫말은 바로 그 시절의 눈물과 침묵 속에서 태어났다.

결국 기획사의 틀은 이재라는 예술가를 모두 담아내지 못했다.

그는 노래하는 사람에 머물지 않고 곡의 방향을 설계하는 탑라이너(Topliner), 전체 음악을 지휘하는 프로듀서로 성장했다.

그의 이름이 세계 음악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의 대표곡 'Golden'이었다.

이 작품에서 그는 단순한 가창자가 아닌 핵심 제작자로 참여했다. 동양적 감성과 현대 팝 사운드를 결합한 그의 음악은 글로벌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대중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의 독창성이 세계 무대에서는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되었다.

예술은 결국 자신다움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에게 길을 열어준다는 사실을 그는 몸소 증명했다.

그리고 마침내 2026년 월드컵 개막식.

이재의 무대는 단순한 공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과거 해외 진출이 영어 가사와 글로벌 표준에 맞추는 과정이었다면, 이번 무대는 한국어 자체가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설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특히 안드레아 보첼리와 함께 부른 **‘DNA’**에서 한국어 가사를 그대로 살린 선택은 상징적이다.

"또 넘어져도 나, 또다시 일어나."

이 문장은 언어를 넘어 인간의 본능적 감정에 닿았다.

한국어를 모르는 관객들조차 그 음성과 멜로디를 통해 '포기하지 않는 삶'의 의미를 읽어냈다.

언어는 번역될 수 있지만, 진정성은 번역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이재는 증명했다.

K-팝은 이제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다.

세계인들은 한국어 노래를 따라 부르고, 한국어 가사에 감동하며,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이름 없이 곡을 쓰고 음악을 만들며 버텨온 수많은 창작자들이 있다.

이재는 그들의 상징이다.

그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보다 긴 무명의 시간을 먼저 견뎌낸 예술가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 최대 스포츠 축제의 개막식에서 자신의 언어로 노래했다.

그 순간 울려 퍼진 것은 단지 한 곡의 음악이 아니었다.

한국어가 가진 생명력이었고, 한국 문화가 가진 저력이었으며, 끝내 자신을 포기하지 않은 한 예술가의 영혼이었다.

아스테카 스타디움의 밤하늘을 가르며 울려 퍼진 한국어 한 줄은 이제 단순한 가사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를 향해 던진 한국 문화의 새로운 선언문이다.

"또 넘어져도 나, 또다시 일어나."

어쩌면 이 문장은 이재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숱한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다시 일어선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역사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노래인지도 모른다.

이재가 쏘아 올린 푸른 불꽃은 월드컵 무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어가 세계인의 가슴속에서 오래도록 살아 숨 쉬게 할 또 하나의 작은 태양으로 남을 것이다.


-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화 평론가)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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