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유월은 장미가 가장 아름답게 피는 계절이지만, 우리에게는 호국보훈의 달이자 6·25전쟁의 상흔을 기억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해마다 이맘때면 붉은 장미는 변함없이 피어나지만, 어떤 시인은 그 꽃에서 사랑보다 먼저 피를, 아름다움보다 먼저 역사를 읽어낸다.
임보선 시인의 '유월, 장미가 피면'은 장미를 노래하는 서정시가 아니다. 장미를 통해 동족상잔의 비극과 분단의 아픔,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젊은 영혼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이산가족의 기다림을 함께 품어내는 기억의 시이자 평화의 시이다.
■ 유월, 장미가 피면
- 6·25를 생각하며
- 임보선 시인
해마다 6월이 오면
장미는 말없이 피고 있다
그날의 비극 장미 가시여!
우리 조국의 산하를 온통 찔러댄다
피보다 더 진한 젊음들이
비바람에 못다 핀 채 져버린
장미 꽃잎처럼 뚝뚝 떨어져
가슴에 가슴에
흥건히 젖어 누워 있다
6월을 향한 절절한 향수
장미뿐이랴
찢겨진 내 혈육
장미보다 피보다 더 붉은
이 슬픔 이 분노
죽어도 삭이지 못하는데
장미는 올해도 말없이 피고 있다.
■ 감상과 해설 / 장건섭 시인(본지 편집국장)
◇ 장미는 꽃이 아니라 기억이다
임보선 시인의 '유월, 장미가 피면'은 화려하게 피어나는 장미를 통해 그날의 상처를 오늘의 기억으로 되살려 낸다.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전쟁의 상흔이 되고, 말없이 피는 장미가 평화를 향한 기도가 되는 작품이다.
장미는 흔히 사랑과 열정의 상징으로 읽힌다. 그러나 시인은 그 익숙한 상징을 과감하게 뒤집는다.
"그날의 비극 장미 가시여!
우리 조국의 산하를 온통 찔러댄다"
시인은 꽃보다 먼저 가시를 바라본다. 그 가시는 장미를 지키는 가시가 아니라 전쟁의 총검이며, 민족의 가슴을 갈라놓은 철조망이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분단의 상처이다.
이 한 구절만으로 장미는 더 이상 계절의 꽃이 아니라 역사의 꽃이 된다.
◇ 장미꽃잎은 청춘이었다
시의 중심에는 너무도 가슴 아픈 이미지가 놓여 있다.
"피보다 더 진한 젊음들이
비바람에 못다 핀 채 져버린
장미 꽃잎처럼 뚝뚝 떨어져"
장미꽃잎은 나라를 위해 산화한 이름 없는 젊은 영혼들이다.
'못다 핀 채'라는 표현에는 스무 살도 채 넘기지 못한 청춘,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아들, 사랑을 시작조차 하지 못한 젊은이들의 생애가 응축되어 있다.
시인은 전쟁을 직접 묘사하지 않는다. 꽃잎 하나로 수많은 희생을 말하고, 낙화 하나로 한 시대의 슬픔을 증언한다. 절제된 언어가 오히려 독자의 가슴을 더욱 깊이 흔든다.
◇ 말없는 장미가 들려주는 평화의 언어
시는 처음과 마지막을 같은 문장으로 닫는다.
"장미는 올해도 말없이 피고 있다"
왜 장미는 말이 없을까. 전쟁의 참혹함은 어떤 언어로도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침묵은 망각이 아니라 기억이다. 말없이 피는 장미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잊지 말라"고 조용히 당부한다.
그 침묵 속에는 아직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의 눈물과 생사를 모른 채 평생을 기다려야 했던 이산가족의 한, 그리고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평화의 염원이 함께 스며 있다.
임보선 시는 분노를 외치는 시가 아니라 기억을 지키는 시이다. 그는 전쟁을 적개심으로 재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장미라는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상징을 통해 희생을 추모하고 평화를 기원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과거를 붙드는 시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평화를 부탁하는 시이며, 우리 모두에게 역사 앞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묵묵히 묻는 작품이다.

■ 임보선 시인의 문학세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임보선 시인은 1991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한국 현대시단에서 서정성과 시대의식을 함께 품어온 중견 시인이다.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시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회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와 사무처장, 월간문학 미래시 회장, 시문회와 사임당문학 회장 등을 역임하는 등 창작과 문학운동을 함께 이끌어 왔다.
또한 한국문인협회 70년사 편찬위원, 한국예술가곡총연합회 이사, 한국가곡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문학과 음악을 잇는 가교 역할에도 힘써 왔다.
아태문인협회, 한국신문예문학회, 인사동시인협회, 문학의 집·서울 회원으로 활발한 문단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친환경 기술 분야의 세계발명특허를 보유한 기업인으로서의 삶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
시집 <내 사랑은 350℃>, <솔개여, 나의 솔개여>, <나무가 새 나무가 되기 위해>를 비롯해 청소년을 위한 사랑시집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으며, 30여 편의 한국가곡을 작시해 문학과 음악의 아름다운 만남을 실천해 왔다.
임보선 시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을 통해 인간을 바라보고, 계절을 통해 시대를 성찰한다는 점이다. 그의 시는 화려한 수사보다 절제된 언어를 선택하고, 격렬한 외침보다 긴 여운을 남긴다.
개인의 감정을 넘어 공동체의 기억을 품고, 자연의 풍경 속에 시대의 아픔과 인간의 존엄을 담아내는 것이 그의 문학의 힘이다.
'유월, 장미가 피면' 역시 장미라는 익숙한 꽃을 통해 전쟁과 분단, 희생과 평화라는 묵직한 주제를 섬세하게 형상화한 작품으로, 그의 문학적 깊이를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은 <문학의 집·서울> 2016년 6월호(통권 제176호)에 이미 발표되었다. 발표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호국보훈의 달이 돌아올 때마다 전쟁의 아픔과 평화의 소중함을 새롭게 일깨우는 작품으로 꾸준히 읽히고 있다.
장미는 해마다 유월이면 변함없이 피어난다. 그러나 어떤 장미는 아름다움만을 말하지 않는다.
전쟁으로 스러져 간 청춘을 기억하고, 고향을 잃은 실향민의 눈물을 품고, 아직도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의 긴 기다림을 대신 말해 준다.
임보선 시인의 '유월, 장미가 피면'은 한 송이 장미를 통해 민족의 비극을 기억하게 하고, 그 기억을 평화의 다짐으로 승화시키는 깊은 울림의 작품이다.
호국보훈의 달 유월이 저물어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전쟁의 승패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이며, 분단의 현실이 아니라 다시는 같은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장미는 올해도 아무 말 없이 피었다. 그러나 그 침묵은 가장 깊은 증언이었다. 우리가 그 붉은 꽃을 바라볼 때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전쟁의 승패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이며, 분단의 현실이 아니라 평화를 향한 간절한 염원이다.
말없이 피는 장미는 오늘도 우리에게 역사를 잊지 말라고, 그리고 평화를 끝까지 지켜 달라고 조용히 말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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