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보령=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충남 보령시 미산면은 겉으로는 평범한 산골마을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쉽게 만날 수 없는 두 개의 거대한 문화 프로젝트가 30여 년 동안 묵묵히 이어져 왔다.
하나는 아미산 자락 산암사에서 약사여래의 자비를 돌에 새겨온 석굴암 불사(佛事)이고, 다른 하나는 봉성리에서 마을 전체를 문학으로 가꾸며 돌마다 시를 새겨온 봉성리문화예술창조마을이다.
한쪽은 부처를 모셨고, 다른 한쪽은 사람의 삶을 기록했다. 하나는 불심으로 이어진 원력이었고, 다른 하나는 문학으로 이어진 사랑이었다.
오늘의 미산면은 이 두 개의 30년 원력이 만나 수행과 문학, 자연과 예술이 하나 되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 아미산(峨嵋山), 천년의 영산이 품은 이름… 이름에도 깃든 신령한 산
충남 보령시 미산면은 산과 물, 역사와 문학, 불교문화가 한곳에 어우러진 보기 드문 문화권이다. 이곳에는 아미산의 천년 신앙과 산암사 석굴암, 수몰의 기억을 간직한 보령댐, 그리고 전국 최대 규모의 문학공원으로 성장하고 있는 봉성리문화예술창조마을이 서로 이어지며 새로운 문화관광축을 형성하고 있다.
보령시 미산면과 부여군 외산면 경계에 솟은 아미산(575m)은 예로부터 영산(靈山)으로 불렸다.
'아미(峨嵋)'는 중국의 명산인 아미산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봉우리가 여인의 아름다운 눈썹처럼 부드럽게 이어진 모습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불교에서는 중국 아미산을 보현보살의 성지로 여겨 왔으며, 우리나라의 여러 산도 이러한 불교문화의 영향을 받아 '아미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보령의 아미산 역시 오래전부터 산삼이 자생하는 신령한 산으로 알려졌으며, 산신 신앙과 불교문화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수행처가 되었다.
정상에서는 서해와 보령호, 성주산 능선이 한눈에 펼쳐지고, 사계절마다 변화하는 풍광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쉬게 하는 자연의 도량이 되어 왔다.
◇ 경주 석굴암에서 보령 산암사 석굴암으로… 천년을 잇는 한국 석굴문화
우리나라 석굴문화의 정점은 경북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이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 재상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석굴암은 화강암을 정교하게 쌓아 올린 세계 최고의 석조 건축물 가운데 하나이다.
본존불을 중심으로 보살과 제자, 천왕과 역사상이 원형을 이루며 우주의 질서를 표현한 구조는 건축과 조각, 수학과 천문학이 결합된 인류 문화유산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1995년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계 곳곳에도 위대한 석굴사원이 남아 있다. 인도의 아잔타 석굴과 엘로라 석굴, 중국의 둔황 막고굴, 윈강석굴, 룽먼석굴,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석불은 인류 불교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미 역사가 된 문화유산이다. 반면 보령 산암사 석굴암은 지금도 원력이 이어지고 있는 '살아 있는 석굴암'이다.
오늘도 망치 소리와 염불이 함께 울리는 현재진행형 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세계 석굴문화 속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 30년, 돌을 수행으로 다듬어 온 산암사 석굴암
아미산 자락 산암사에서는 또 하나의 30여 년.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산암사 주지 일도 스님은 "중생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약사도량을 만들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오늘까지 석굴암 불사를 이어오고 있다.
이 불사는 단순한 건축공사가 아니라 수행이며 기도였다. 전북 익산 함열의 화강석을 옮겨와 조성한 약사여래좌상은 좌대 2m, 불신 높이 5m에 이르는 국내 최대 규모의 현대 석굴도량이다.
이를 둘러싼 높이 3m의 35관음상과 사천왕상, 팔부신중상은 수십 년 동안 석공들의 땀과 불자들의 신심이 쌓여 장엄한 불국토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이 불사의 중심에는 오랜 세월 현장을 지켜온 석조각가 박흥식 씨가 있다. 그는 김유제 시인의 석공예 도반으로서 30여 년 동안 돌을 다듬으며 현대 석굴암 조성의 역사를 함께 써 내려가고 있다.

◇ 30년, 마을을 문학공원으로 만든 사람들
산암사에서 멀지 않은 봉성리에서는 또 다른 30년의 기적이 이어졌다.
석공예가이자 시인인 김유제 봉성리문화예술창조마을 이장이자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보령지부 회장은 약 30년 동안 주민들과 함께 폐광촌이었던 마을을 문화예술마을로 바꾸어 왔다.
버려진 돌은 시비가 되었고, 광산촌은 문학이 흐르는 마을이 되었다.
한국문학헌장비공원을 비롯해 시비공원, 한국·베트남 국제문학교류비, 벼루박물관, 도자기박물관, 새소리 작은 도서관 등 이 하나둘 들어서며 봉성리는 전국적인 문학마을로 성장하고 있다.
현재 확장 조성 중인 봉성리문학공원은 국내 최대 규모를 넘어 세계 최대를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5일 처음 열린 제1회 봉성천렵문학축제 전국문학공모 부문 대상 수상작과 마을문학공모 부문 대상 수상작을 비롯하여 전국 문인들의 대표 작품이 시비로 제작되고 있다.
올해 9월 열리는 제2회 축제에서는 지난 해 전국문학공모 부문 대상 수상작인 장건섭 시인의 시 '돌 위에 핀 시, 물 위에 피어난 생명' 등을 비롯하여 마을문학공모 부문 대상 수상작인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이지윤(29·베트남명 응우옌 티 디에우 히엔, Nguyễn Thị Diệu Hiền) 씨의 시 '봉성리의 봄날처럼' 시비도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봉성리문학공원 내에 설치·제막될 예정이다.
또 오는 8월 개최되는 제13회 보령해변시인학교에는 한국을 비롯해 베트남과 대만 문인들이 참여해 국제 문학교류의 장을 펼칠 계획이다.

◇ 고은 시인도 감동한 '살아 있는 문학마을'
지난 7월 3일 대한민국 문단의 원로 고은 시인(93)은 김영호 전 산업자원부 장관(전 유한대학교 총장) 등과 함께 봉성리문화예술창조마을을 찾았다.

한국문학헌장비공원과 문학공원을 둘러본 고은 시인은 김유제 시인의 힘껏 손을 잡으며 "문학은 책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숨 쉬어야 한다"라며 "봉성리는 마을 전체가 한 권의 시집"이라고 말했다.
고은 시인은 이어 "돌에 새겨진 시는 비바람을 견디며 다음 세대와 대화할 것"이라며 "이곳은 한국 문학의 공공성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라고 격려했다.
◇ 김유제 시인 "돌은 사람의 마음을 기억합니다"
김유제 시인은 지난 30년을 이렇게 회고하며 "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정성으로 새긴 흔적은 수백 년이 지나도 남는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이어 "산암사 석굴암이 부처님의 자비를 돌에 새겨 왔다면, 봉성리는 사람들의 삶과 희망을 시로 새겨 왔다"
며 "산암사 석굴암과 봉성리문화예술창조마을, 아미산과 보령댐을 하나의 문화관광벨트로 연결하는 것이 오랜 꿈"이라고 밝혔다.
김 시인은 그러면서 "문학과 불교문화, 생태와 역사가 함께 숨 쉬는 대한민국 대표 문화공간과 세계 최대의 문학공원으로 조성, 국제문학엑스포를 보령시와 이곳 봉성리 문화예술창조마을이 협업해서 개최하고 싶다"라고 큰 꿈을 펼쳐 보였다.

◇ 보령댐 애향박물관과 경관전망대… 새로운 문화관광벨트의 완성
미산면의 미래는 이미 새로운 관광 인프라와 함께 준비되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보령댐 애향박물관은 수몰 이전 고향마을의 역사와 생활문화, 공동체의 기억을 보존하는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현재 입구에 설치되고 있는 경관전망대에서는 보령댐과 아미산, 주변 산세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 전망대는 앞으로 보령댐를 대표하는 새로운 랜드마크이자 사진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 산암사 석굴암과 봉성리문화예술창조마을, 고려청자요지, 폐광문화유산, 성주산 자연휴양림, 보령댐 애향박물관, 보령 성주사지 천년역사관, 석탄박물관, 보령댐 둘레길 등이 하나의 관광축으로 연결된다면 미산면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치유와 명상, 문학기행과 생태체험을 아우르는 체류형 복합문화관광지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자연을 걷고, 석굴암에서 마음을 비우고, 문학공원에서 시를 읽는 여정은 관광을 넘어 삶을 성찰하는 순례의 길이 될 것이다.

문화유산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돌을 다듬고, 누군가는 시를 쓰며, 또 누군가는 긴 세월 그 길을 함께 걸어야 한다.
보령시 미산면에서는 지난 30여 년 동안 두 개의 원력이 나란히 자라왔다.
아미산 산암사에서는 부처의 자비를 돌에 새겼고, 봉성리에서는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시에 새겨왔다. 하나는 불사(佛事)였고, 다른 하나는 문사(文事)였다.
이제 이 두 원력은 보령댐 애향박물관과 경관전망대, 아미산의 자연경관, 봉성리문화예술창조마을을 잇는 새로운 문화관광축으로 확장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문화예술계, 불교계, 지역사회가 힘을 모아 이를 체계적으로 육성한다면 미산면은 경주의 천년 석굴암과는 또 다른 가치의 '살아있는 현대 문화유산'을 품은 대한민국 대표 문화예술·생태관광의 성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30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세월 동안 아미산에서는 돌이 부처가 되었고, 봉성리에서는 돌이 시가 되었다.
그리고 그 돌들은 오늘도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자비는 시간을 이기고, 문학은 사람을 살린다'고.
보령 미산면에서 3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두 개의 원력은 이제 한국 문화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 조용하지만 힘차게 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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