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제22회 원종린수필문학상 대상에 권남희 수필가의 수필집 <다정함의 종말 에이!>가 선정됐다.
작품상에는 백선욱 수필가의 <매직아워>와 이상수 수필가의 <라그랑주점>이, 독후감상에는 박시형의 <태양을 겨냥하는 화살>과 박윤진의 <어떤 선배를 읽고>가 각각 선정됐다.
원종린수필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원준연)는 올해 수상자들에게 대상 500만 원, 작품상 각 100만 원, 독후감상 각 50만 원의 상금과 상패를 수여한다. 시상식은 오는 9월 12일 오전 11시 대전 태원에서 열린다.
올해로 22회를 맞은 원종린수필문학상은 고(故) 원종린 수필가의 문학정신과 올곧은 삶을 기리고, 후학과 제자들이 뜻을 모아 제정한 문학상이다.
특히 학연과 지연 등 연고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작품의 예술적 성취와 문학적 경륜을 중심으로 수상자를 선정해 왔다는 점에서 수필문학계의 의미 있는 문학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상 권남희 수필가, <다정함의 종말 에이!>로 문학적 결실
제22회 원종린수필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다정함의 종말 에이!>는 권남희 수필가의 18번째 수필집이다.
전북 전주에서 출생한 권남희 수필가는 1987년 <월간문학> 수필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이후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수필 창작을 이어오며 한국 수필문학의 현장을 지켜온 중견 작가다.
특히 (사)한국수필가협회에서 13년간 편집주간을 맡아 수필문학의 현장을 이끌었으며, 부이사장을 거쳐 현재 제8대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회장을 비롯해 (사)한국문학예술인저작권협회 위원, (사)국제PEN한국본부 및 (사)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창작과 문단 발전을 함께 이끌어왔다.
교육 현장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덕성여대 평생교육원과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롯데문화센터 강남점 등에서 수필 강좌와 연구반을 운영하며 수필 창작의 즐거움과 문학적 사유를 독자와 예비 문인들에게 전하고 있다.
권남희 수필가는 이번 수상작 <다정함의 종말 에이!>를 비롯해 <미시족>, <어머니의 남자>, <시간의 방>, <그대 삶의 붉은 포도밭>, <육갑 하이테크>, <목마른 도시>, <이제 유명해지지 않기로 했다>, <민홀립 기둥을 세우다> 등 18권의 수필집을 펴냈다.
대한민국예술인문화대상, 한국수필문학상, 한국문인협회 작가상, 구름카페문학상, 올해의 에세이스트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문단 활동을 함께 인정받아 왔다.
"다정함이 끝난 자리에서 더 단단해진 문학인의 자화상"
<다정함의 종말 에이!>라는 제목부터 독특하다.
'다정함의 종말'이라는 다소 단호한 선언 뒤에 붙은 '에이'’라는 감탄사는 체념과 반발, 자조와 유머를 동시에 품는다. 그래서 제목은 다정함이 사라진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말이라기보다, 오히려 다정함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가를 되묻는 역설적 표현으로 읽힌다.
최원현 수필가·문학평론가는 이 작품집에 대한 평에서 '언어의 이중성 속 빛나는 권남희만의 수필 미학'이라는 제목으로 권남희 수필의 특징을 짚었다.
그는 이 책을 "다정함이 끝난 자리에서 오히려 더 단단해진 한 문학인의 자화상"으로 평가하면서 '파지破紙와 의지義肢', '피해자다움', '살아가면서 인생 스승을 만나다', '글씨seed와 발아의 힘' 등의 작품을 통해 권남희 수필의 문학적 개성을 조명했다.
특히 '파지破紙와 의지義肢'에서는 아버지의 무덤을 옮기는 과정에서 발견한 의족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후회와 애정을 동시에 드러내고, '의지(義志)'와 '의지(義肢)'라는 언어의 이중성을 문학적 장치로 끌어올린다.
'피해자다움'에서는 사회가 피해자에게 요구하는 특정한 모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개인적인 상처를 고백하면서도 자기연민에 머물지 않고 사회와 인간에 대한 성찰로 확장한다.
이처럼 권남희의 수필은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해 인간의 내면과 사회적 문제, 그리고 문학의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간다.
쉽게 꺼내기 어려운 가족과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내면서도 그것을 문학적 사유로 전환하는 힘이 그의 글에 있다. 기억은 글감이 되고, 상처는 사유가 되며, 개인의 이야기는 독자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나의 직업은 문학인입니다"
<다정함의 종말 에이!>의 구성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마지막 5부의 제목인 '나의 직업은 문학인입니다'다.
이는 권남희 수필가에게 문학이 단순한 취미나 여가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규정하는 하나의 존재 방식임을 보여준다.
창작과 문단 활동, 교육과 강의를 동시에 이어오면서도 꾸준히 자신의 작품집을 세상에 내놓는 그의 행보는 '문학인'이라는 정체성을 삶으로 증명해 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18번째 수필집 <다정함의 종말 에이!>는 단순한 신간 한 권을 넘어, 1987년 등단 이후 이어온 40년 가까운 문학 여정의 한 결산이자 새로운 출발점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원준연 위원장 "상의 규모보다 원종린 선생의 문학정신을 지키겠다"
원종린수필문학상 운영위원회 원준연 위원장은 이번 수상자 선정과 관련해 무엇보다 22년 동안 지켜온 선정 원칙을 강조했다.
원준연 위원장은 "제22회 원종린수필문학상 수상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며 "특히 대상에 선정된 권남희 수필가의 <다정함의 종말 에이!>는 오랜 문학적 경륜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오늘의 수필문학이 지닌 진정성과 확장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 위원장은 이어 "원종린수필문학상은 학연이나 지연, 문단의 연고에 얽매이지 않고 작품의 예술적 성취도와 문학적 경륜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 수상자를 선정해 왔다"며 "올해도 운영위원들이 작품을 꼼꼼히 살피고 충분히 토론한 끝에 수상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또한 "원종린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것이 이 상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라며 “앞으로도 상의 규모보다 상의 정신을 지키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문학적 자부심을 갖고 창작을 이어갈 수 있도록 원종린수필문학상이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고 덧붙였다.
권남희 대상 수상자 "기쁨보다 먼저 책임을 생각"
대상 수상자 권남희 수필가는 이번 수상을 기쁨과 함께 새로운 책임으로 받아들였다.
권 작가는 수상 소감을 통해 "오랜 시간 수필을 써오면서 작품집 한 권을 세상에 내놓는 일은 늘 어렵고 두렵다"며 "<다정함의 종말 에이!>도 제 삶을 돌아보고,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과 기억들을 다시 문학으로 옮겨놓는 마음으로 썼다"고 말했다.
권 작가는 이어 "22년 동안 이어져 온 원종린수필문학상의 대상을 받게 되어 기쁘면서도 큰 책임감을 느낀다"며 "특히 원종린 선생께서 보여주신 올곧은 삶과 따뜻한 문학정신을 생각하면 앞으로 더 진실하게 써야겠다는 마음이 크다"고 밝혔다.
권 작가는 또한 "문학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거창한 이야기를 쓰기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놓치기 쉬운 작은 마음들을 오래 바라보고, 그것을 따뜻하고 정직한 문장으로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원종린수필문학상의 정신적 뿌리, 고(故) 원종린 선생
원종린수필문학상의 정신적 뿌리에는 평생 교육자의 길을 걸으며 수필문학의 품격을 높이고 후학 양성에 힘쓴 고(故) 원종린 선생이 자리하고 있다.
원종린 선생은 1923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일제강점기 학도병으로 징집된 뒤 중국 충칭 임시정부로의 망명을 모의하다 발각돼 옥고를 치르는 등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었다.
광복 이후에는 대전보문중학교, 공주농업고등학교, 공주사범학교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89년 공주교육대학에서 정년퇴임한 뒤 대전에 정착했다.
문학적으로는 <하늘 높이 차올리는 구두>, <사랑과 미움>, <녹음일기>, <태양의 계절> 등을 비롯해 수필문학전집 <어느 멍청이의 인생일기> 전 6권을 남겼다.
그의 글은 일상의 소박한 이야기에서 삶의 본질을 길어 올리면서도 기지와 해학,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는 것이 특징으로 평가된다.
특히 원종린 선생은 "철학을 말하지 않고 철학이 우러나와야 한다"는 수필관을 지녔다. 어렵고 관념적인 언어로 삶의 진리를 설명하기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풍경과 인간관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글을 지향했다. 그의 수필론은 오늘날까지 원종린수필문학상이 지향하는 문학적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
원종린 선생은 자신의 문학적 성취에 머물지 않았다. 2005년 우리나라 수필문학의 발전과 후진들의 창작 의욕을 북돋우기 위해 평생 모은 재산 1억 원을 기탁해 제1회 원종린수필문학상을 제정했다. 이후 2007년에도 다시 1억 원을 희사하며 문학상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원종린수필문학상이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상은 단순히 한 문인의 이름을 기념하는 문학상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을 후배 문인들에게 돌려주고 좋은 수필문학의 맥을 이어가고자 했던 원종린 선생의 실천적 문학정신을 계승하는 상이다.
지난 22년 동안 이 상이 작품의 문학적 성취와 작가의 경륜을 중시하며 전국의 수필가를 대상으로 수상자를 선정해 온 것도 이러한 정신의 연장선이다.
2005년 제정 이후 원종린 선생의 '순정한 문학정신'을 기리고 수필 창작에 대한 애정을 승화해 수필문학 발전에 기여한다는 취지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웠던 사람
원종린 선생의 삶과 문학을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엄격함과 온유함의 공존이다.
자신에게는 엄격했지만 타인에게는 한없이 부드럽고 자상했던 인품은 그의 문학에도 그대로 배어 있다.
작지만 강단 있는 체구, 온유하면서도 깊은 심지를 지녔던 그의 모습은 제자와 후학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았다.
그에게 문학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장식이 아니었다. 사람을 이해하고 삶을 성찰하며, 더 나은 인간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그의 수필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큰 사건보다 작은 일상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하고, 거창한 철학보다 한 사람의 마음을 통해 인간의 본질에 다가간다.
후학과 제자들이 그의 이름으로 문학상을 만든 이유도 바로 이 같은 '사람의 문학'에 대한 존경과 기억에서 비롯됐다.
22년, '누가 아는 사람인가'보다 ‘무엇을 썼는가’를 선택하다
원종린수필문학상은 2023년 원종린 선생 탄생 100주년을 지나 올해 제22회를 맞았다.
22년 동안 이 상이 지켜온 가장 중요한 원칙은 분명하다. '누가 아는 사람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썼는가'를 보는 것.
학연과 지연 등 연고를 넘어 작품의 예술적 성취와 문학적 경륜을 기준으로 수상자를 선정한다는 운영위원회의 원칙은 각종 문학상이 범람하는 시대에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특정 언론사나 대형 문예기관이 주관하는 상은 아니지만, 후학과 제자들이 스승의 문학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상이 22년 동안 지속돼 왔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문학적 기록이다.
특히 자신의 이름을 내건 문학상을 만드는 사례가 적지 않은 현실에서, 스승의 이름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후학들이 만든 상이 연고주의를 배제하고 작품 중심의 원칙을 지켜왔다는 점은 원종린수필문학상의 존재 이유를 더욱 선명하게 한다.
문학상은 단순한 상패와 상금이 아니다. 어떤 문학을 기억할 것인가, 어떤 정신을 다음 세대에 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하나의 문화적 약속이다.
원종린수필문학상은 지난 22년 동안 바로 그 약속을 이어왔다.

다정함은 종말하지 않았다
<다정함의 종말 에이!>라는 제목은 역설적으로 이번 원종린수필문학상의 의미와 맞닿아 있다.
'다정함의 종말'을 말하면서도 권남희의 문장은 결국 사람을 향한다. 자신의 상처와 기억을 꺼내 보여주면서 그 안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삶을 다시 바라보며, 독자에게 따뜻한 손을 내민다.
원종린수필문학상 역시 그러하다. 한 수필가는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기록하며 독자에게 마음을 건네고, 한 문학상은 22년 동안 스승의 이름과 문학정신을 지키며 좋은 작품과 작가를 찾아왔다.
그리고 권남희 수필가는 <다정함의 종말 에이!>로 그 문학적 여정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다정함은 끝난 것이 아니다. 다정함이 사라졌다고 느끼는 시대일수록 문학은 더 오래 사람을 바라봐야 한다.
기억은 문장이 되고, 문장은 다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것이 수필이 가진 힘이며, 원종린 선생이 남긴 문학정신이 오늘에도 이어져야 할 이유다.
제22회 원종린수필문학상 대상 수상자 권남희 수필가의 <다정함의 종말 에이!>가 던지는 메시지도 결국 여기에 닿는다. 다정함의 종말을 말하는 시대에, 문학은 오히려 더 다정해야 한다.
오는 9월 12일 대전에서 열리는 시상식이 권남희 수필가에게는 새로운 문학적 출발점이 되고, 원종린 선생의 올곧은 문학정신이 또 한 번 후학들에게 이어지는 뜻깊은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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