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미래일보) 오나연 기자 = "큰 병에 걸리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공식부터 바꿔야 한다."
박용갑 더불어민주당 의원(대전 중구)이 대전·충청권을 비롯한 중부권에 '꿈의 암 치료'로 불리는 중입자 치료센터 또는 양성자 치료센터를 구축해야 한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박 의원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활동과 함께 충남대학교병원 암병원 건립을 중부권 의료체계 강화의 핵심 과제로 제시해 왔다. 특히 충남대병원 암병원 건립과 연계해 첨단 입자치료 인프라를 구축한다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중증 암 환자를 지역에서 치료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번 제안은 단순히 대형 의료시설 하나를 추가하자는 차원을 넘어선다. 수도권에 집중된 고난도 암 치료 인프라를 지역으로 분산해 ‘어디에*사느냐에 따라 치료 기회가 달라지는 의료 격차’를 줄이고, 권역 내에서 진단부터 치료·회복까지 이어지는 지역완결적 의료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중입자·양성자 치료, 정상 조직 손상 줄이는 첨단 방사선치료
중입자 및 양성자 치료는 방사선 치료의 한 분야다.
중입자치료는 탄소이온과 같은 무거운 입자를 가속해 암 조직에 조사하는 방식으로, 일반적인 방사선치료와 비교해 종양 부위에 높은 선량을 집중시키면서 주변 정상 조직에 전달되는 방사선량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연세암병원은 중입자치료를 탄소입자를 이용하는 방사선치료로 설명하고 있다.
양성자치료 역시 입자선 치료의 하나로, 암 조직에 방사선을 정밀하게 전달해 정상 조직에 대한 불필요한 피폭을 줄이는 데 목적이 있다.
다만 모든 암 환자가 중입자 또는 양성자 치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며 암의 종류와 위치, 병기, 환자의 상태 등에 따라 치료법을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첨단 치료기 도입과 함께 전문 의료진과 다학제 진료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는 입자치료 인프라 확대…한국은 수도권 집중
세계 주요 국가들은 양성자와 중입자 치료시설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박 의원이 분석한 국가별 양성자·중입자 치료기 도입 현황에 따르면 미국이 45개로 가장 많고 일본 26개, 중국 14개, 독일 5개, 대만과 이탈리아가 각각 4개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은 여러 주에 걸쳐 양성자 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과 중국 역시 주요 지역에 입자치료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환자의 접근성을 높여가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첨단 입자치료시설이 여전히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현재 연세암병원은 중입자치료를 시행하고 있으며, 삼성서울병원은 양성자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국립암센터 역시 양성자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권 대형병원들이 중입자·양성자 치료시설 확대에 나서면서 국내 입자치료 인프라 자체는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고도화된 입자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반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 박 의원의 지적이다.
"암 환자 절반 이상이 비수도권"…의료 접근성 문제
박 의원 측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국 암 환자는 317만413명이며, 이 가운데 비수도권 거주자는 159만7,610명으로 전체의 50.4%에 달한다.
암 환자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 밖에 거주하고 있지만 첨단 입자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설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환자가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이동해야 할 경우 문제는 단순한 이동거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치료를 받는 환자 본인의 교통비와 숙박비는 물론 보호자의 동행, 간병, 휴업 또는 휴가에 따른 소득 손실 등 사회·경제적 비용까지 발생한다.
특히 장기간 반복적인 치료가 필요한 암 환자에게 수도권 원정 진료는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박 의원이 최근 충남대병원 암병원 건립을 강조하면서 "큰 병이면 서울에 있는 병원부터 알아보는 공식을 깨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산 기장 중입자센터, 비수도권 첫 첨단 입자치료 거점
정부가 비수도권 입자치료 인프라 확충에 나선 대표적인 사례가 부산 기장군 중입자치료센터다.
서울대학교병원이 주관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부산시, 기장군 등이 참여하는 기장 중입자치료센터 구축 사업은 총사업비 2,925억 원 규모로 추진되고 있다. 이 가운데 국비 1,394억 원이 투입된다. 서울대병원은 2027년 환자 치료를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기장 중입자치료센터는 비수도권에서 첨단 중입자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새로운 거점을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부산에 이어 충청권과 호남권 등 다른 권역에도 관련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것이 박 의원의 주장이다.
"부산에 이어 충남대병원에도 2차 사업 추진해야"
박 의원은 특히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5극 3특 국가균형성장'과 의료 분야의 균형발전을 연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균형발전이 산업과 교통, 행정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서비스에서도 구현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 핵심 가운데 하나가 '지역완결적 암 치료다.
충남대병원은 이미 대전지역암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권역책임의료기관으로서 최종치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해당 사업에는 중환자실 인프라 확충, 하이브리드 수술실 구축, CAR-T 치료실 신설, 로봇 항암 조제실 구축 등이 포함돼 있다.
여기에 암병원 건립과 양성자 또는 중입자 치료센터가 결합한다면 대전·충청권의 암 진료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 박 의원의 구상이다.
실제로 충남대병원 암병원 건립은 이미 대통령 공약에 반영된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최근 정부 차원의 지원 필요성도 논의되고 있다.
박 의원은 “이재명 정부가 의료 분야에서도 '5극 3특 국가균형성장'을 실현하려면 권역별로 지역완결적 암 치료가 가능하도록 중입자 치료센터를 확충해야 한다"며 "큰 병에 걸리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서글픈 현실을 바꾸기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부산 기장 중입자 치료센터에 이어 충남대병원에 대한 2차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충청권 의료의 새로운 전환점 될까
대전·충청권은 인구 규모와 산업·연구 인프라를 갖춘 중부권 핵심 지역이지만, 고난도 중증질환 치료 분야에서는 수도권 의존도가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최근 공개된 자료에서도 대전·충청권 일부 지역의 암 환자 유출률이 높게 나타나는 등 중증질환의 지역 내 치료 역량 강화가 중요한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대전 자체에서도 암 환자의 타지역 유출 문제가 나타나고 있어 지역 거점병원의 최종치료 역량 강화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따라서 충남대병원 암병원 건립은 단순한 병상 확충 사업이 아니라 대전·충청권 의료체계의 구조를 바꾸는 사업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암을 조기에 발견하고 진단하는 것에서부터 수술, 방사선치료, 항암치료, 세포치료, 재활과 호스피스·완화의료까지 하나의 권역 안에서 연계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지역완결적 의료체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입자 또는 양성자 치료센터 역시 독립적인 시설로 접근하기보다는 이 같은 암 진료 생태계 속에 포함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서울로 가는 의료'에서 '지역에서 완결되는 의료'로
첨단 의료시설의 지역 확충은 단순히 장비를 들여놓는 문제가 아니다.
막대한 건립비와 유지비가 필요한 치료시설인 만큼 충분한 환자 수요와 의료진 확보, 방사선 안전관리, 장비 운영 경험, 연구개발 기능, 전문인력 양성 등 종합적인 검토가 뒤따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첨단 의료기술의 혜택을 어느 지역에 사는가에 관계없이 국민이 공정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박용갑 의원의 이번 제안은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다.
부산 기장 중입자치료센터가 비수도권 첨단 암 치료 인프라의 첫 거점을 만든다면, 대전·충청권에도 이에 상응하는 새로운 의료 거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충남대병원 암병원 건립과 연계한 중입자 또는 양성자 치료센터가 현실화된다면 대전은 충청권을 넘어 중부권의 첨단 암 치료 거점으로 도약할 가능성이 있다.
"큰 병 걸리면 서울로"…그 오래된 공식을 바꿔야
암이라는 질병 앞에서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어떤 치료를 받을 수 있느냐’여야 한다.
서울에 가지 않아도 가까운 지역에서 최고의 의료진과 첨단 장비를 통해 진단받고 치료받을 수 있다면 환자와 가족의 삶은 크게 달라진다.
충남대병원 암병원 건립과 대전·중부권 입자치료센터 구축 논의가 단순한 지역 현안이나 정치적 공약을 넘어 대한민국 의료의 공간적 불균형을 바로잡는 국가적 과제로 논의돼야 하는 이유다.
박 의원이 제기한 ‘충남대병원 2차 중입자·양성자 치료 사업’이 실제 정책과 예산 논의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치료의 거리가 곧 삶의 거리여서는 안 된다
암 환자에게 병원까지의 거리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 거리는 환자가 감당해야 할 교통과 숙박의 부담이고, 보호자가 감내해야 할 간병의 시간이며, 가족이 함께 견뎌야 할 불안과 기다림의 거리다.
그래서 의료의 지역화는 시설 하나를 더 짓는 문제가 아니라 환자와 가족의 삶을 지키는 일이다.
부산에서 시작된 비수도권 중입자치료 인프라가 대전·충청권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전국 권역별 첨단 암 치료체계로 확장된다면 ‘큰 병에 걸리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오래된 공식도 조금씩 바뀔 수 있다.
의료의 균형은 곧 생명의 균형이다. 치료받을 권리는 사는 곳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
대전·중부권 중입자 치료센터 구축을 둘러싼 논의가 이제 지역 공약을 넘어, 국민 누구나 가까운 곳에서 최첨단 암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지역완결적 의료 대한민국'을 향한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tonayeo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