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본지 편집국장) = 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던 날, 히말라야의 산은 갑자기 무너졌고 얼음과 돌과 흙은 한꺼번에 계곡으로 쏟아졌다. 강물은 순식간에 길을 잃었고,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과 다리와 마을은 거대한 자연의 흐름 앞에서 속절없이 잠겼다.
나는 이 소식을 접하면서 기자이기 전에 한 사람의 시인으로 오래 산을 바라보았다. 시를 쓰는 사람에게 자연은 배경이 아니다. 산은 산 이상의 것이고, 강은 강 이상의 것이며, 한 방울의 빗물에도 지구의 시간이 스며 있다.
우리는 자연을 바라보며 시를 쓰지만, 정작 자연은 인간의 삶 전체를 품고 있는 거대한 시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간은 그 시의 문장을 너무 많이 고쳐 쓰고 말았다.
산을 깎아 길을 냈고, 강을 막아 물길을 바꾸었으며, 숲을 베어 도시를 세웠다. 석탄과 석유를 태우며 하늘의 온도를 바꾸었고, 불과 산업화 100여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수천만 년의 지질학적 시간이 만들어 놓은 지구의 질서를 흔들어 놓았다.
물론 이번 네팔 참사를 기후변화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산악지형의 특성, 빙하와 암석의 상태, 기상과 지질 조건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기후의 변화가 이제 자연의 가장 깊은 곳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참사를 바라보며 나는 재난의 원인만 묻고 싶지 않다.
우리는 자연을 어디까지 바꾸어도 되는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묻고 싶다. 우리는 정말 자연을 떠나 살아갈 수 있는가. 시인은 자연을 정복하지 않는다. 다만 바라보고, 듣고, 기다리고, 그 앞에서 자신의 작음을 배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그런 마음인지 모른다. 더 높은 산을 오르는 기술보다 산이 무너지기 전에 산의 신호를 듣는 지혜, 더 많은 강물을 이용하는 기술보다 강이 스스로 흐를 수 있도록 놓아주는 겸손, 더 빠른 개발보다 자연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를 헤아리는 절제가 필요하다.
'원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문명을 포기하자는 뜻이 아니다.자연을 인간의 소유물로 생각했던 문명에서 벗어나, 인간 역시 자연의 한 문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하자는 뜻이다.
네팔의 히말라야에서 무너진 것은 한순간의 얼음과 돌만이 아닐 것이다. 그 산은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가 너무 많이 가지려 했던 것은 아닌지, 너무 빨리 달려온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이제라도 지구의 오래된 시를 다시 읽을 마음이 있는지를.
나는 그 질문 앞에서 한 편의 시를 쓰듯 이 칼럼을 시작한다.
산을 다시 산으로, 강을 다시 강으로, 숲을 다시 숲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보다 먼저, 인간의 마음을 다시 자연 쪽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가.
비가 거의 오지 않았다. 그런데 강이 넘쳤고, 산이 무너졌으며, 거대한 물과 얼음과 돌과 흙의 벽이 계곡을 휩쓸었다.
사람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비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네팔 히말라야의 참사는 하늘에서 떨어진 빗물보다 산 위에서 무너져 내린 얼음과 암석이 먼저였다.
8월 26일 네팔과 중국 티베트 접경의 고산지대에서 빙하와 암석이 대규모로 붕괴하면서 엄청난 양의 얼음과 토사가 계곡으로 쏟아졌다. 그것은 순식간에 토석류와 돌발홍수로 변해 마을과 도로, 교량과 수력발전시설을 덮쳤다.
사고 당시 감지된 진동이 처음에는 지진으로 오인됐지만, 거대한 얼음과 암석 덩어리가 붕괴하면서 발생한 진동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더 두려운 것은 이것이 단순히 한 번의 산사태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빙하가 녹고, 얼어붙어 있어야 할 산의 내부가 불안정해지고, 암석과 얼음이 서로를 붙들고 있던 힘이 약해지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 거대한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
히말라야의 온난화와 빙하 변화가 이러한 위험을 키우고 있다는 경고는 이미 여러 차례 제기돼 왔다. 이번 참사를 두고 기후변화를 하나의 원인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자연재해에는 지질 구조와 지형, 적설과 빙하 상태, 강수, 지진 가능성, 인간의 개발 등 수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번 빙하 붕괴의 직접적인 촉발 원인 역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기후변화가 자연의 안전판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연은 갑자기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연재해를 흔히 '자연의 분노'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어쩌면 자연은 분노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우리가 바꾸어 놓은 조건에 자연이 물리학적으로 반응하고 있을 뿐이다.
산 위의 얼음은 온도가 오르면 녹는다. 영구동토가 약해지면 암석과 토양을 붙들던 힘이 약해진다. 빙하가 후퇴하면 산악지형의 균형도 달라진다. 여기에 도로를 내고, 계곡을 개발하고, 수력발전소를 건설하고, 관광시설을 확장하면 인간이 자연재해에 노출되는 방식 또한 달라진다.
자연은 인간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연의 변화는 인간이 만든 국경선도 모른다.
네팔에서 시작된 물과 돌은 국경을 넘어 흘렀고, 피해는 네팔과 중국 양쪽으로 번졌다. 이번 재난은 기후위기가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도 보여준다.
불과 한 세기 남짓, 인간은 지구의 시간을 바꾸었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놀라운 속도로 지구를 변화시켰다. 석탄과 석유와 천연가스를 태워 에너지를 얻었고, 공장을 세우고 도시를 만들었다. 자동차와 비행기를 만들었으며, 강을 막고 산을 깎고 바다를 메웠다. 그 결과 인간의 문명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러나 그 편리함의 이면에서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는 높아졌고, 지구의 평균기온은 상승했으며, 빙권은 변하기 시작했다. 인간에게는 백 년이 한두 세대의 시간일 뿐이지만, 산에게 백 년은 무엇일까.
수천 년, 수만 년 동안 천천히 움직여온 빙하에게 인간의 산업화 100여 년은 너무나 짧고 거친 시간일 것이다. 우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지구의 대기와 바다와 산과 숲의 조건을 바꾸었다. 그리고 이제 그 변화의 결과를 다시 우리 앞에서 보고 있다.
히말라야의 빙하가 녹는 것은 네팔만의 일이 아니다. 그 물은 강으로 흘러 사람들의 삶을 만들고, 강의 변화는 농업과 식량과 에너지에 영향을 미친다. 빙하의 변화는 해수면 상승과도 연결된다. 결국 히말라야에서 무너진 얼음 한 덩어리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너희는 지구를 어디까지 바꾸려 하는가."
인간은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착각
근대 문명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데서 출발했다. 강은 막아야 했고, 산은 뚫어야 했으며, 숲은 개발해야 했다. 자연은 인간의 생활을 위해 제공되는 자원으로 취급됐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조금 다른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강을 막으면 강의 흐름이 바뀌고, 산을 깎으면 산의 균형이 달라진다. 숲을 없애면 물을 저장하는 능력이 줄어들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대기의 성질이 달라진다.
자연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시스템 안에서 인간 자신의 생존 조건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이번 네팔 참사는 우리에게 단순히 ‘재난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만을 묻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원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그렇다면 처음의 자연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자동차도 없고, 공장도 없고, 고속도로도 없고, 발전소도 없는 원시의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인류가 수십억 명에 이른 지금, 문명을 모두 거꾸로 돌릴 수도 없다. 그러나 '원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문명을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문명의 방향을 바꾸자는 것이다.
자연을 지배하는 문명에서 자연과 공존하는 문명으로.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하는 문명에서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책임 있게 소비하는 문명으로.
산을 깎아 길을 내는 것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산이 무너지지 않을 길을 먼저 생각하는 문명으로. 강을 개발할 때 발전량만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강의 생태적 가치와 재난 위험까지 함께 계산하는 문명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개발 가능한 곳’과 ‘개발해서는 안 되는 곳’을 구별하는 지혜를 갖는 문명으로.
자연을 원래대로 돌릴 수 없다면, 우리의 욕망이라도 줄여야 한다 이미 녹아버린 빙하를 다시 과거의 모습으로 돌려놓기는 어렵다. 무너진 산을 다시 세울 수도 없다. 사라진 숲을 하루아침에 되살릴 수도 없다. 그러나 아직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는 것이다. 탄소배출을 줄이고, 산림을 복원하고, 습지를 보존하고, 빙하와 영구동토의 변화를 관측하고, 위험지역에 조기경보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히말라야와 같은 고산지역에서는 개발사업 하나하나가 자연재해의 위험과 함께 검토돼야 한다. 이번 참사처럼 상류에서 발생한 붕괴가 하류의 발전소와 마을과 도로를 순식간에 덮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시대의 안전은 단순히 튼튼한 콘크리트를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위험한 곳에 콘크리트를 세우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산은 우리에게 마지막 경고를 보내고 있다
네팔에서 연락이 두절된 우리 국민 9명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이 글을 쓰는 손끝도 무거워진다.
우리 정부는 현지에 신속대응팀을 추가 파견하고 헬기를 투입해 수색에 나서고 있다. 부디 실종자들이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구조가 끝난 뒤에도 우리는 이 질문 앞에 서야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그리고 다음에는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이번 네팔 참사는 우리에게 자연을 두려워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을 존중하라고 말하고 있다. 산은 인간보다 오래 살았고, 강은 인간보다 오래 흘렀으며, 빙하는 인간이 문명을 만들기 훨씬 전부터 지구의 시간을 기록해 왔다.
그런 산과 강과 빙하를 불과 한 세기 남짓한 산업화의 경험만으로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만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연을 떠날 수 없다. 인간이 자연의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자연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갈 터전을 허무는 일이다.
그래서 '원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어쩌면 문명을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하자는 말이다.
산을 산으로 바라보고, 강을 강으로 흐르게 하고, 숲을 숲으로 남겨두며, 지구를 인간만의 소유물이 아닌 다음 세대와 함께 빌려 쓰는 터전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자연으로의 귀환’인지 모른다. 이번에 무너진 것은 히말라야의 한 산자락만이 아니다. 어쩌면 무너진 것은 자연을 끝없이 이용해도 인간에게 아무런 대가가 없을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인지도 모른다.
산이 다시 한번 묻고 있다.
"너희는 이 지구에서 얼마나 더 많이 가지려 하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해야 할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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