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미래일보) 박인숙 기자 = "너의 머리로 생각하라."
100년 전 제국주의의 억압에 맞서 자신의 생각과 존엄을 지키려 했던 한 여성의 목소리가 세종에서 다시 울려 퍼졌다.
지난 8월 29일 세종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영화 <가네코 후미코, 나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가 상영됐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초청으로 서울에 이어 세종에서 상영된 이번 작품은 세종여성플라자가 주최하고 광복회 세종특별자치시지부를 비롯해 가네코 후미코를 기억하고 연구해 온 시민과 연구자, 가네코 후미코 선양사업회, 지역 향토연구자, 세종 민주화운동 계승사업회, 세종 여성회 등이 함께했다.
특히 이번 상영은 가네코 후미코가 어린 시절을 보낸 세종에서 그의 서거 100주기를 맞아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홍만희 세종여성플라자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가네코 후미코가 어린 시절을 보낸 세종에서 그의 서거 100주기를 맞아 독립운동가이자 혁명가의 주체로 살다 간 그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 영광"이라며 "성평등 문화 확산의 일환으로 시민단체 등 여러 분들과 함께 그의 삶을 나누게 되어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박열의 연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
가네코 후미코는 우리에게 영화 <박열>을 통해 비교적 익숙한 인물이다. 그러나 하마노 사치 감독과 야마자키 쿠니노리 각본가는 박열과 함께 제국주의에 저항했던 그녀를 단지 ‘박열의 연인’이나 ‘동지’로 기억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영화가 주목한 것은 바로 아무도 보지 않았던 가네코 후미코의 시간이다.
특히 사형선고 이후 도치기 여자형무소에 수감돼 홀로 보내야 했던 121일의 시간에 카메라를 집중시켰다.
감독은 기록이 풍부하게 남아 있는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역사적 기록에서 사라져버린 한 여성의 시간을 상상하고 바라보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녀가 시대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영화의 출발점은 바로 이 질문이었다.
형무소 안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조차 통제받았던 가네코 후미코. 영화는 국가 권력이 한 인간의 행동뿐 아니라 생각하고 표현할 권리까지 어떻게 억압하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죽음을 앞둔 한 인간이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켜내는 과정도 담담하게 따라간다.
세종에서 시작된 어린 시절의 기억
1903년 태어난 가네코 후미코의 어린 시절은 순탄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사실상 ‘무적자’로 살아야 했고, 제대로 된 교육도 받기 어려웠다. 어린 시절 일본 식민지였던 조선, 현재의 세종시 부강면에서 생활하면서 겪은 경험은 이후 그의 세계관 형성에 깊은 흔적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아홉 살 무렵 조선에서 목격한 3·1 만세운동은 어린 후미코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조선에서조차 그녀는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했다. 노예와 다름없는 학대를 경험한 그는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생각까지 품었다.
영화는 강가에 선 어린 후미코를 통해 그 기억을 시각화한다.
강물에 다시 떠오르지 않도록 주머니에 돌을 채우며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태어났지만 너는 없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떠올리는 후미코.
그러나 그는 마지막 순간 생각을 바꾼다.
'여기서 죽으면 그들의 뜻대로 되는 것이다.'
죽음을 선택하는 대신 살아남아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에게 저항하겠다는 결심이다. 그 순간부터 영화는 한 여성의 삶이 어떻게 ‘저항’이라는 언어를 갖게 되었는지를 따라간다.

121일, 죽음을 앞둔 인간의 사유
영화는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라는 독백과 함께 본격적인 옥중생활로 들어간다.
사형선고를 받은 뒤 감형돼 도치기 여자형무소에 수감된 가네코 후미코는 죽음을 기다리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사상과 존엄을 포기하지 않는다. 국가는 끊임없이 전향을 요구한다. 살아남기 위해 생각을 바꾸라고 강요한다. 그러나 후미코는 끝까지 저항한다.
"나의 직업은 현실에 존재하는 것들을 때려 부수는 것이다."
그의 말은 단순한 과격한 구호가 아니라 자신을 억압하는 권력과 기존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 읽힌다.
죽음을 앞둔 후미코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마셔온 쓴잔도 이제 끝인가.', '내 영혼이여, 불멸하기를 바라는가.'
이러한 독백은 육체의 죽음과 정신의 소멸이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라는 인간의 마지막 성찰로 이어진다.
그는 "내 동지는 조선 유학생과 노동자들"이라고 외치며 제국주의 일본의 권력계급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고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영화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보다 감옥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한 인간의 내면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세밀하게 바라본다.
그 안에는 여성 수감자와 간수들 사이에서 오가는 작은 인간적 시선도 있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 여성들의 미세한 연대와 한계 역시 영화가 포착하는 지점이다.
폭탄과 만년필, 저항과 기록
영화에서 인상적인 상징 가운데 하나는 폭탄과 만년필이다.
감독은 "후미코는 오늘 던져야 할 폭탄에 가깝다"는 취지의 말을 전했다.
100년 전 권력에 저항했던 후미코의 정신을 오늘의 시대에 다시 던지고 싶었다는 것이다.
"소리 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마음속에 후미코라는 폭탄을 품고 살아가길 바란다."
폭탄이 권력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을 상징한다면 만년필은 생각과 기록,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상징한다.
가네코 후미코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무엇인가를 파괴하는 행동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 역시 저항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만년필은 어쩌면 폭탄보다 더 오래가는 무기일지도 모른다. 폭탄은 한순간에 터지지만 한 사람이 남긴 문장은 수십 년, 수백 년이 지나서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100년이 지난 오늘 우리가 다시 가네코 후미코를 이야기하는 것도 결국 그가 남긴 생각의 기록 때문이다.
"너의 머리로 생각하라"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가장 직접적인 메시지는 ‘너의 머리로 생각하라’는 말이다. 사회가 정해놓은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권력이 말한다고 해서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지 않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이 대신 생각해준 삶을 살아가지 않는 것. 결국 자신의 삶을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가네코 후미코의 삶은 이 단순하지만 어려운 질문을 오늘의 우리에게 다시 던진다.
나는 누구의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나의 존엄을 지키고 있는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이어진 질문
상영 후에는 여성플라자 이진선 교육사업팀장의 사회로 감독과 관객의 대화가 이어졌다.
이번 대화는 하마노 사치 감독이 한국에서 가네코 후미코를 기억하고 연구해 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다는 요청에 따라 마련됐다.
감독은 관객들에게 가네코 후미코의 삶과 사상이 미래 세대에게 어떤 의미로 전해지기를 바라는지 물었다.
한 시민은 "한 여성이 그 시대를 얼마나 힘들게 살아냈는지, 그리고 자유와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를 보며 안타까웠다"며 "그 시대에 내가 살았다면 과연 가네코 후미코처럼 행동할 수 있었을지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객은 “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에 크게 공감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감독은 "자신답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만년필에 관한 질문도 나왔다.
한 관객이 "당시 형무소에 그렇게 좋은 만년필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느냐"고 묻자 감독은 허가를 받으면 가능했다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만년필은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여성 간수들의 모습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한 관객은 "영화 속 두 명의 여성 간수는 가네코 후미코를 구해주지도, 그의 저항에 동참하지도 않는다"며 "그 장면이 여성 간의 연대를 생각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에 영화가 보여준 작은 인간적 이해의 의미가 다시 떠올랐다.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것. 다른 사람이 함부로 규정한 이름 대신 그 사람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
어쩌면 그러한 작은 이해가 연대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가네코 후미코는 한국인인가, 일본인인가"라는 질문도 나왔다.
이에 하마노 사치 감독은 "후미코는 한국 사람이다. 한국인과 같은 마음을 가진 일본인이다"라는 의미의 답변을 했다.
관객들의 질문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가네코 후미코의 삶은 관객들의 마음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다시 가네코 후미코를 바라보는 이유
가네코 후미코를 오늘 다시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한 독립운동가를 기념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와 오늘의 시대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을 말할 권리,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 그리고 권력 앞에서도 자신의 존엄을 지킬 권리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중요한 가치다.
가네코 후미코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래서 한 사람의 역사를 기억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일이다.
그녀는 누군가의 연인이나 동지가 되기 이전에 한 사람이었다.
무엇을 생각했고, 무엇을 꿈꾸었으며, 무엇을 두려워하지 않았는지를 스스로 선택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질문은 100년의 시간을 건너 오늘 우리 앞에 다시 놓였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세종에서 다시 만난 가네코 후미코. 그녀의 121일은 끝났지만, 그녀가 던진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역사는 기록하는 사람에 의해 남고, 기억하는 사람에 의해 다시 살아난다. 8월의 마지막 여름날, 세종의 스크린에서 되살아난 가네코 후미코의 삶은 그렇게 현재의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단단한 질문 하나를 남겼다.
"너의 머리로 생각하라."
그 말은 어쩌면 100년 전 한 여성의 유언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오래된 미래의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ebbnyacma@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