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AI가 소설을 쓰고, 시를 만들고, 그림과 음악까지 창작하는 시대다. 그렇다면 인간의 문학은 무엇으로 존재해야 하는가.한국계 미국인 소설가이자 톨스토이문학상 수상자인 김주혜 작가가 16일 서울 세종대학교 대양AI센터에서 열린 '제12회 세계한글작가대회' 기조강연에서 "AI 시대에도 문학의 본질은 인간과 인간다움을 탐구하는 데 있다"며 한글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AI시대, 한글문학이 나아갈 길'을 주제로 한 이날 강연에서 김 작가는 문학을 비롯한 예술의 본질을 '인간'에 대한 탐구로 규정하고, 좋은 예술이 갖춰야 할 요소로 보편성, 초월성, 개인의 영혼, 내용과 형식의 결합을 꼽았다.
그는 문학이 시대와 국경을 넘어 독자에게 이해와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보편성을 가져야 하지만, 단순한 대중성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상상력과 독창성, 높은 완성도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월성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창작자의 고유한 경험과 정신이 작품에 투영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김 작가는 문학과 유행을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출판시장이나 독자의 수요에 맞춰 작품을 생산하는 데 지나치게 몰두할 경우 문학이 지녀야 할 창작자의 개성과 영혼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장르와 소재의 유행뿐 아니라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의 유행 앞에서도 작가가 문학의 본질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과 기술의 관계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2010년대 뉴욕의 출판계에서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시간이 흐른 현재에도 종이책은 여전히 출판시장의 중요한 기반으로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은 책을 읽고 쓰는 방식과 창작 환경을 변화시키지만, 문학의 본질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김 작가는 생성형 AI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봤다. AI가 소설·시·그림·영상·음악 등 다양한 창작 영역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고 있지만, 문학의 핵심인 인간의 경험과 영혼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그는 "예술이 개인의 영혼을 담는 것이라면 영혼이 없는 인공지능이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AI 시대일수록 작가의 창작물과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법적 장치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신이 집필 중인 새로운 장편소설의 작업을 소개하며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내면에서 비롯된 창작의 고유성을 설명했다.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서로 다른 시공간을 연결하는 작품 구상 자체가 자신의 삶과 내면에서 나온 것이기에 다른 누군가가 대신 만들어낼 수 없는 창작이라는 의미다.
김 작가는 기후위기와 전쟁, 기아와 난민 문제 등 세계가 격변하는 상황에서 문학의 역할은 오히려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문학은 더욱 견고하게 인간다움을 제시하고 지켜야 한다"는 취지로 문학의 책무를 강조하며, 한글문학 역시 세계문학의 한 축으로서 인간의 존엄과 삶의 의미를 탐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한글문학이 나아갈 방향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외부의 유행과 압력보다 자신의 영혼에 충실할 것, 둘째는 한국문화와 한국문학이 지닌 고유한 특질을 살릴 것이다.
김 작가는 이 두 방향이 결국 "자신에게 가장 참된 예술을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고 설명했다. 한국문학의 정체성과 작가 개인의 고유성이 만날 때 세계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작품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다.
김주혜 작가의 이날 기조강연은 AI가 창작의 새로운 도구로 자리 잡아가는 시대에 문학의 경쟁력을 기술의 속도나 시장의 유행에서 찾기보다 인간에 대한 깊은 탐구와 작가의 고유한 영혼, 그리고 한글문학의 문화적 특질에서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한편 '2026 제12회 세계한글작가대회'는 9월 15일부터 18일까지 세종대학교에서 열리고 있으며, 세계 각국의 한글·한국문학 관련 작가와 학자들이 참여해 AI 시대 한글문학의 세계화와 미래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16일 오전에는 김홍신 소설가, 김주혜 소설가, 조지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교수의 기조강연에 이어 '미래 세대 한글교육의 방향성'을 주제로 한 주제발표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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