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인간의 삶과 죽음, 기억과 사랑을 하나의 거대한 기록으로 읽어낸 박세희 시인의 시집 <별들의 보고서>가 제22회 김삿갓문학상 본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영월문화관광재단은 올해 김삿갓문학상 본상에 박세희 시인의 <별들의 보고서>, 우수상에 유호근 시인의 <고향의 강>을 각각 선정했다고 밝혔다.
올해 본상에는 모두 228편이 접수됐다. 재단은 지난 9월 18일 예심을 거쳐 본심 대상 작품을 가렸으며, 21일 본심에서 예심을 통과한 7편을 대상으로 최종 심사를 진행해 수상작을 확정했다. 우수상에는 4편이 접수됐다.
심사위원들은 <별들의 보고서>에 대해 "대상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성찰하고 삶을 진지하게 탐색한 작품"이라며 "시류에 쉽게 휩쓸리지 않으면서 시의 본연의 가치를 지키고, 현대인의 삶을 잔잔한 서정으로 풀어낸 점"을 선정 이유로 들었다.
지난해보다 많은 작품이 접수되면서 김삿갓문학상에 대한 문단의 관심도 다시 확인됐다. 영월문화관광재단 관계자는 "앞으로도 김병연 선생의 문학 정신을 이어가고 역량 있는 문인들을 발굴하는 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오는 10월 16일 난고김삿갓문학관 야외광장에서 열린다.

김삿갓, 시대의 경계를 넘어 떠돌며 시를 남기다
김삿갓문학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상의 이름이 된 난고 김병연, 곧 김삿갓의 문학정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김병연은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이다. '김삿갓'이라는 이름은 그가 삿갓을 쓰고 전국을 떠돌며 시를 짓고 세상을 풍자했던 삶에서 비롯됐다. 그의 시에는 당시 사회의 모순과 인간 군상의 모습, 양반사회의 허위와 위선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담겼다.
그러나 김삿갓의 문학을 단순히 해학과 풍자의 문학으로만 읽기는 어렵다. 그의 시에는 정착하지 못한 인간의 외로움과 시대의 질곡, 민중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함께 들어 있다.
그는 한곳에 머물러 세상을 바라본 시인이 아니었다.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고, 사람들의 삶 속에서 시대를 읽었다. 정형화된 권위와 관습에서 한 걸음 비켜서서 세상을 바라보았기에 그의 언어에는 당대의 문인들이 쉽게 드러내지 못했던 날것의 현실과 해학이 살아 있었다.
김삿갓문학상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대가 달라지고 문학의 형식이 변해도 시인은 끊임없이 자신의 시대를 바라보고 질문해야 한다. 김삿갓이 당대의 현실을 자신의 방식으로 읽고 시로 남겼다면, 오늘의 시인은 오늘의 인간과 사회,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제22회 본상 수상작 <별들의 보고서> 역시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소백산 아래에서 서울로…시인의 길을 걸어온 박세희
박세희 시인의 문학적 출발은 소백산 아래 초가집에서 시작된다.
어린 시절 헤르만 헤세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웠던 소녀는 그 꿈을 품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1993년 <문학과 의식>을 통해 문단에 등단했다.
이후 박세희 시인은 한결같이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는 시적 여정을 이어왔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비롯한 여러 시집을 통해 존재와 시간, 사랑과 기억, 삶과 죽음의 문제를 탐문해온 그는 현재 계간 <문학에스프리> 발행인으로 활동하며 창작과 문단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별들의 보고서>는 그러한 문학적 여정 위에서 도달한 한 지점이다.
시인은 책의 첫머리에서 "끝나도 돌아오는 것들이 있다 / 그것이 계절이고 사랑이었다"라고 말한다.
끝났지만 다시 돌아오는 계절과 사랑. 그 문장은 이번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문학적 열쇠처럼 읽힌다.
사라지는 것은 정말 사라지는가. 죽음은 존재의 완전한 소멸인가. 지나간 사랑과 기억은 어디에 남는가.
박세희의 시는 이러한 질문을 붙들고 인간의 내면에서 우주로 시선을 확장한다.
'별들의 보고서'…밤하늘을 거대한 기록으로 읽다
표제작 '별들의 보고서'에서 시인은 밤을 '장부'로 바라본다.
별은 빛나는 천체인 동시에 하나의 문장이 되고, 별자리는 인간이 살아온 흔적을 기록한 거대한 문서가 된다.
지상에서 사라진 이름들이 하늘의 여백에 기록되고, 별빛의 선으로 연결된다. 살아 있는 자와 떠난 자가 하나의 문서 안에서 같은 행에 놓인다.
이러한 상상력은 죽음을 단절이 아니라 기록의 방식으로 바라본다.
인간은 사라져도 삶의 흔적은 누군가의 기억에 남고, 기억은 다시 다른 기억과 연결된다. 시인은 그것을 밤하늘의 별자리로 형상화한다.
<별들의 보고서>에서 우주는 거대한 도서관이자 기록물이다. 그 안에는 이름을 잃은 사람들의 목소리도 있고, 끝내 전하지 못한 유언도 있으며, 지나간 사랑과 기억의 흔적도 있다.
그래서 시집의 마지막 질문은 독자를 향한다.
우리는 지금, 어떤 문장으로 기록되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시집의 주제를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던지는 존재론적 질문이 된다.
자연에서 출발해 인간에게 돌아오는 네 개의 장
시집은 모두 네 개의 부로 구성됐다.
제1부에서는 '한계령을 넘으며', '봄의 특강', '이팝나무 아래', '별들의 보고서' 등이 자연과 존재의 경계를 오간다. 일상의 풍경이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제2부에서는 '마두금이 울리는 저녁', '고비사막', '서울에는 한강이 있다', '검룡소' 등이 공간과 이동의 이미지를 통해 기억과 시간의 층위를 넓힌다.
제3부에서는 '모든 사랑은 오해다', '능소화', '안녕이란 말은 지구처럼 둥글다' 등을 통해 사랑과 관계, 인간 존재의 복합적인 내면을 들여다본다.
제4부에 이르면 '모란이 지고 작약이 피듯', '침묵의 언어', '살아봐야겠다', '동강할미꽃' 등을 통해 사라짐과 이어짐, 그리고 다시 살아가려는 의지가 나타난다.
결국 시집은 자연에서 출발해 세계를 통과하고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간 뒤 다시 삶으로 돌아오는 순환의 구조를 갖는다.
그 때문에 <별들의 보고서>는 개별 시편들의 모음이라기보다 하나의 긴 사유의 여정으로 읽힌다.
별빛만 있는 시집은 아니다…'폭설 2'가 보여주는 또 다른 박세희
<별들의 보고서>의 세계를 별빛과 고요함만으로 이해한다면 시인의 시세계를 절반만 읽는 셈이다.
'폭설 2'에서는 오히려 날카롭고 뜨거운 저항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여기서 '흰 눈'은 순수와 정결의 상징인 동시에 존재의 흔적을 덮어버리는 힘으로 변한다.
시인은 지워지는 것을 거부한다. 죄와 욕망, 피와 상처까지도 살아 있음의 증거로 받아들인다.
이는 <별들의 보고서>에서 보이는 우주적 사유와 다른 듯하면서도 깊은 곳에서는 맞닿아 있다.
한쪽에서는 사라진 존재가 별빛으로 기록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지워지려는 존재가 자신의 흔적을 끝까지 붙든다.
결국 두 시 모두 '존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향한다.
박세희 시인의 시에서 삶은 깨끗하게 정리되는 완성품이 아니다. 상처와 사랑, 기억과 망각, 죄와 용서가 뒤섞인 채 계속 이어지는 과정이다.
이숭원·유성호 평론가가 바라본 박세희의 시세계
이숭원 문학평론가는 박세희 시인의 시세계를 "존재론적 사유에 상상력의 뿌리를 둔 시 세계"로 바라본다.
그에 따르면 박세희 시인은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시 쓰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며 삶의 방향을 조율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박세희의 시는 단순한 감정의 표출을 넘어선다. 사랑과 절망이라는 정념 역시 사유의 기반 위에서 움직이고, 시 쓰기는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삶을 다시 바라보는 수행의 과정이 된다.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박세희 시의 중요한 특징을 '사랑과 견인의 정신'에서 찾는다.
사물과 자신의 마음을 서로 비추면서 삶을 오랜 시간 동안 반추하고, 그 과정에서 그리움과 따뜻함을 바탕으로 한 위안의 언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두 평론가의 해석은 서로 다른 듯하지만 하나의 지점에서 만난다.
박세희의 시는 결국 삶을 오래 바라보는 시라는 점이다.
빠르게 소비되고 빠르게 잊히는 시대에 그는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한 사물과 한 기억을 오래 바라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되묻는다.
김삿갓의 '길'과 박세희의 '우주'
김삿갓은 길 위에서 세상을 바라봤다.
박세희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인간의 삶을 기록한다.
한 사람은 조선의 길을 떠돌며 사람과 세상의 모습을 시에 담았고, 다른 한 사람은 별과 자연, 사랑과 기억을 통해 오늘의 인간을 탐색한다.
시대도 공간도 다르지만 두 시인을 연결하는 것은 정해진 답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언어로 기록하려는 태도다.
김삿갓의 시가 당대의 권위와 위선을 비틀며 새로운 시선의 길을 열었다면, 박세희의 시는 현대인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 존재와 기억의 의미를 묻는다.
그런 점에서 제22회 김삿갓문학상 본상에 <별들의 보고서>가 선정된 것은 김삿갓의 문학정신을 오늘의 언어로 이어가는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시는 결국 '기록'이다
별은 빛나지만 말하지 않는다. I'm 그러나 박세희의 시에서 별은 기록한다. 누군가의 탄생을, 누군가의 죽음을, 한 사람의 사랑을, 한 생의 상처를 기록한다.
김삿갓 역시 길 위에서 만난 세상을 자신의 방식으로 기록했다. 그 기록은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 오늘까지 남았다. 문학이란 결국 사라지는 것을 붙잡아 두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시간을 언어로 남기고, 지나간 사람의 목소리를 다음 세대에 건네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별들의 보고서>는 별에 관한 시집이면서 인간에 관한 시집이다.
그리고 김삿갓문학상은 과거의 한 시인을 기념하는 상에 머물지 않고, 오늘의 시인들이 자신의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언어로 기록하는지를 다시 묻는 문학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는 10월 16일 영월 난고김삿갓문학관 야외광장. 한 시대를 풍자하며 길 위를 떠돌았던 김삿갓의 이름 앞에서, 한 시인은 별들의 기록을 들고 문학의 길 위에 선다.
김삿갓이 남긴 길과 박세희가 바라본 별. 그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된 질문이 놓여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억하며, 어떤 문장으로 자신의 시간을 남길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도 한 편의 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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