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17세기 영국 형이상학파 시인들의 독특한 시적 상상력과 '통합된 감수성'을 통해 오늘의 시가 지향해야 할 사유와 감각의 관계를 살펴보는 문학 강연이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사단법인 한국현대시인협회(이사장 이승복)와 한국시문학아카데미(학장 이승복)는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한글회관 3층 한국현대시인협회 사무실에서 금요포럼을 열고, 이종우 전 홍익대학교 영어영문과 교수를 초청해 '17세기 형이상학파 시의 미학과 통합된 감수성'을 주제로 특강을 진행했다.
이날 포럼에는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을 비롯해 한국시문학아카데미 관계자와 시인, 문학인들이 참석해 형이상학파 시의 미학과 시론, T. S. 엘리엇이 제시한 '감수성의 분열'과 '통합된 감수성'의 의미를 함께 살펴봤다.
이승복 학장 "시를 깊게 읽는 일은 인간과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일"
이승복 한국시문학아카데미 학장은 인사말을 통해 금요포럼의 의미를 강조하며, 시인들이 창작에만 머물지 않고 문학의 뿌리와 시의 본질을 함께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말을 전했다.
이 학장은 특히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옮기는 일만이 아니라,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발견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며 "오늘 강연을 통해 형이상학파 시인들이 보여준 깊은 사유와 독특한 상상력을 살펴보면서 우리 시가 지닌 가능성도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좋은 시는 생각과 감정, 지성과 감각이 서로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며 "시인들이 서로의 작품을 읽고 질문하고 토론하는 이러한 자리가 한국 현대시의 깊이를 더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종우 교수 "형이상학파 시의 핵심은 서로 먼 것을 연결하는 시적 사고"
이날 강연에 나선 이종우 교수는 17세기 영국 형이상학파 시인들의 시적 특징을 문학사적 배경과 주요 작품을 통해 설명하면서, 특히 '형이상학적 기상(metaphysical conceit)'과 '통합된 감수성(unified sensibility)'에 주목했다.
형이상학파 시인이라는 명칭은 존 단(John Donne)을 비롯한 17세기 영국 시인들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존 드라이든(John Dryden)과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의 비평을 거치면서 하나의 문학적 범주로 자리 잡았다.
이 교수는 형이상학파 시의 특징을 단순히 '어려운 시'나 철학적인 시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이들의 시는 서로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물과 관념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를 발견하는 시적 사고에 핵심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형이상학적 기상은 사랑과 죽음, 종교와 육체, 일상과 철학처럼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개념을 하나의 시적 구조 안에 결합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존슨이 설명한 '위트(wit)'이며, 서로 다른 이미지와 관념을 결합해 그 안에 숨어 있는 유사성을 발견하는 '조화로운 부조화(discordia concors)'의 미학으로 이어진다.
이 교수는 "형이상학파 시인들에게 시적 사유는 추상적인 관념에 머물지 않는다"며 "생각이 곧 감각이 되고, 감각이 다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과정 자체가 시가 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T. S. 엘리엇의 '감수성의 분열'과 '통합된 감수성'
강연에서는 T. S. 엘리엇(T. S. Eliot)의 1921년 평론 '형이상학파 시인들(The Metaphysical Poets)'에 등장하는 '감수성의 분열(dissociation of sensibility)'과 '통합된 감수성(unified sensibility)'도 주요하게 다뤄졌다.
엘리엇은 형이상학파 시인들이 사상과 감정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경험으로 받아들였다고 보았다.
즉 어떤 관념을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동시에 감각하고 느끼는 것이다. 사유와 감정, 지성과 감각이 하나의 시적 경험 안에서 작동하는 셈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관점에서 "형이상학파 시를 읽는 것은 단순히 17세기 영국문학의 한 유파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시에서 생각과 느낌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엘리엇이 이후 영국 시에서 ‘감수성의 분열’이 일어났다고 본 배경을 설명하면서, 현대의 시인들에게도 '우리는 생각하면서 동시에 느끼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한 마리의 벼룩에서 사랑과 결혼을 읽어내다
강연의 백미는 존 단의 대표작 '벼룩(The Flea)'을 통해 형이상학적 기상의 실제 작동 방식을 살펴본 대목이었다.
존 단은 사랑하는 여성과 자신의 관계를 '벼룩'이라는 작고 하찮은 존재에 빗댄다.
벼룩이 먼저 남자의 피를 빨고 이어 여자의 피를 빨았다는 사실에서 두 사람의 피가 한 몸 안에 섞였다고 말하고, 다시 그 벼룩을 두 사람의 '결혼 침실'이자 '성전'으로 확장한다.
일상의 하찮은 곤충이 사랑과 육체적 결합, 결혼과 종교적 성스러움의 상징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여인이 결국 벼룩을 죽이자 시인은 다시 논리를 뒤집는다. 벼룩을 죽였지만 자신과 여인의 생명이나 명예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점을 들어, 여인이 두려워했던 사랑 역시 실제로는 그만큼 두려운 것이 아니라고 설득한다.
이 교수는 이 작품을 통해 형이상학파 시의 특징이 단순히 기발한 비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물에서 출발해 전혀 다른 차원의 관념으로 이동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치밀한 사유의 과정에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벼룩'이라는 작은 사물 하나가 사랑과 피, 육체와 결혼, 죄와 명예, 죽음과 생명이라는 거대한 관념들을 하나의 시적 공간 안에 불러들인다.

참석 시인들 "시를 다시 생각하게 한 시간"
이날 강연에 참석한 시인들은 형이상학파 시의 독특한 발상과 ‘통합된 감수성’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한 참석 시인은 "평소 시를 쓰면서 감정과 생각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늘 강연을 들으며 좋은 시는 결국 생각과 감정이 하나의 언어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라는 점을 새롭게 생각하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 다른 시인은 "존 단의 '벼룩'처럼 아주 사소한 사물 하나를 통해 사랑과 인간의 본질까지 끌어올리는 시적 상상력이 인상적이었다"며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관계를 발견하느냐가 시인의 중요한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 원로 시인은 "시를 오래 써왔지만 오늘 강연을 통해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뿐 아니라 '나는 무엇을 생각하면서 느끼고 있는가'를 되묻게 됐다"며 "시인에게 필요한 감수성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먼 것'을 연결하는 시, 오늘의 시를 다시 묻다
이번 금요포럼은 17세기 영국 형이상학파 시를 문학사적 지식으로만 이해하는 데서 벗어나, 오늘의 시 창작과 감상에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시적 방법론으로 되짚었다는 데 의미를 더했다.
형이상학파 시가 보여주는 것은 결국 '먼 것'을 연결하는 시의 힘이다.
사랑과 벼룩, 피와 결혼, 육체와 종교처럼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을 하나의 언어 안에 놓고 그 사이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것.
그리고 생각과 감정을 서로 떼어놓지 않고 하나의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는 오늘날의 시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시는 생각하는 것인가, 느끼는 것인가.
형이상학파 시가 던지는 답은 어쩌면 그 둘을 나누지 않는 데 있다. 생각하는 순간 느끼고, 느끼는 순간 다시 생각하는 것. 그 통합된 감수성 속에서 시는 하나의 경험이 되고, 한 편의 시는 단순한 언어를 넘어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이 된다.
이날 금요포럼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란 무엇이며, 시인은 무엇을 발견해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자리로 마무리됐다.
사단법인 한국현대시인협회와 한국시문학아카데미는 앞으로도 국내외 시문학의 주요 흐름과 시론을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는 금요포럼을 통해 시인과 문학인들의 문학적 교류를 넓혀나갈 계획이다.
한편 이종우 전 홍익대학교 영어영문과 교수 초청 '금요포럼'은 오는 11월 6일(금) 오후 2시 한국현대시인협회 사무실에서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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