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전통 문양 속에 잠든 신화를 깨우고, 여성의 몸과 우주의 경계를 허물며 생명과 환희의 장면을 직조한 시.
임솔내 시인의 '십장생 금침'은 관능과 신비, 탄생과 환생이 교차하는 매혹의 시적 공간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덮는 이불 한 채 속에서도 우주의 시원이 열릴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편집자 주]
십장생 금침(衾枕)
- 임솔내 시인
십장생 수 이불을 한 채 들여온
그때부터 일 것이다
밤마다 내 배 위에 하늘이 내려오는 일
그 지체 높은 십장생이, 실밥으로 박혀 있던 열 개의 몸짓이
황금 폭포처럼 내 안으로 들기 시작했다
열락이다
기골찬 대 숲 바람소리 들린다
목이 긴 흰 새와 찔레순 닮은 관을 달고
오방색 구름톱 넘나드는 무구한 것들 온데간 데 없이
달이 부풀어 오르는
밤마다 내 배 위엔 새로운 땅이 솟는다
또 열락이다
밤새 대숲 바람소리 세차다
아슴한 그곳 봉과 황의 몸이 닿는 순간
구름보다 더 높은 곳으로 내가 치솟는다
빈 곡신에 시퍼런 썰물이 들이치면
백 년 적송이 온몸으로 운다
열 개의 몸짓이 황금폭포로 내안에 쏟아지는 일
밤마다 내게로 하늘 내려오는 일
신비한 우주 속으로 걸어 들어가 절로 십장생이 되는 일
두 눈 질끈 감은채
밤마다 열리는 마법의, 그 영화로움에 빠져
나는 끊임없이 수 만 번씩 바람 이는 대숲에 들고
나는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고 또 다시 태어난다
십장생 수 이불을 한 채 들여온
그때부터 일 것이다
나의 이 천 개의 열락은
■ 감상과 해석 / 장건섭 시인(본지 편집국장)
임솔내 시인의 '십장생 금침(衾枕)'은 전통적 상징인 '십장생'을 모티프로 삼아, 잠과 꿈, 생명과 쾌락, 그리고 우주적 탄생의 신비를 엮어낸 관능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작품이다.
이 시는 단순한 '이불'에서 시작해, 그 이불에 수놓인 '십장생'이 신화적 존재로 생동하며 시인의 몸과 감각 속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1. 십장생의 재해석 – 고정된 상징에서 살아 있는 생명으로
'십장생'은 전통적으로 장수를 상징하는 열 가지 존재다. 보통은 박물관 유물이나 전통 수공예품 속에서 정물처럼 박제되어 있지만, 시인은 이 상징을 "실밥으로 박혀 있던 열 개의 몸짓"이라 표현하며 생동감 넘치는 존재로 되살린다.
이 '몸짓'들은 "황금폭포처럼 내 안으로" 밀려드는 감각적 체험으로 확장되며, 단순한 문양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신화로 변모한다. 시인의 내면으로 유입되는 이 열 개의 형상은 삶의 에너지이자 쾌락의 물결로 파도친다.
2. 이불과 신비의 공간 – 밤마다 펼쳐지는 우주적 탄생
시의 중심 무대는 시인의 '배 위' — 잠든 자의 복부이다. 이곳은 출산과 탄생의 이미지가 교차하는 신비로운 장소로, "하늘이 내려오고", "새로운 땅이 솟"는 우주의 시원이 된다.
시인은 밤마다 이불 속에서 "절로 십장생이 되는 일"을 경험하며, 이는 곧 환생의 의례이자 우주와 교감하는 정신적 전이이다.
시 속의 '열락(悅樂)'은 단순한 육체적 쾌락이 아니라, 존재의 심연에서 솟구치는 감각의 총체로 읽힌다. 이는 신화와 감각, 영혼과 육체가 하나로 섞이는 초월의 순간이다.
3. 문체와 감각 – 몽환적이면서도 육체적인 시적 체험
시의 문체는 유려하면서도 압도적인 감각을 동반한다. "또 열락이다", "밤마다 내 배 위엔 새로운 땅이 솟는다", "두 눈 질끈 감은 채 / 밤마다 열리는 마법의, 그 영화로움에 빠져" 등의 반복 구절을 통해 시인은 독자를 의식의 심연으로 이끈다.
감각적인 언어 — "기골찬 대숲 바람소리", "찔레순 닮은 관", "오방색 구름톱", "시퍼런 썰물" 등은 시각·청각·촉각이 겹쳐지는 복합적 체험을 일으킨다. 독자는 시 속의 내러티브에 단순히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들고 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4. 여성적 신체성과 신화적 탄생의 결합
이 시에서 특히 인상적인 지점은 강렬한 여성적 이미지와 생명 탄생의 몸짓이다. "내 배 위에 하늘이 내려오는 일"은 감각적 은유를 넘어서, 여성의 몸이 우주와 교차하는 신성한 통로로 기능함을 시사한다.
마지막 행 "나의 이 천 개의 열락은"은 육체와 감정, 정신이 하나 되어 우주의 일부로 융화되는 황홀경을 표현하며 시의 전체 주제를 응축해낸다. 열락의 반복은 존재의 심화이며, 시인이 이불 속에서 체험한 것은 하나의 꿈이나 환상이 아닌 '우주적 실감'이다.
맺음말
임솔내 시인의 '십장생 금침'은 전통 문양을 단순한 장식적 소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신화로 되살려낸다. 시인은 이 전통적 도상을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감각과 교차시켜, 존재론적 체험의 시학으로 확장시킨다.
이 시는 우리가 무심코 덮는 이불 한 채에도 수천 년의 이야기와 신비가 깃들어 있음을, 그리고 그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의 몸을 통해 되살아날 수 있음을 강하게 시사하는 아름답고도 강렬한 작품이다.

■ 임솔내 시인
임솔내 시인은 1999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시와 낭송, 음악, 무대예술을 융합하는 독창적인 예술 활동을 통해 한국 현대시의 경계를 확장해온 대표적인 융합 시인이다.
<나뭇잎의 QR코드>, <아마존 그 환승역>, <홍녀> 등 총 여섯 권의 시집을 펴냈으며, 그녀의 시는 관념과 육체, 신화와 일상, 정서와 이미지가 공존하는 생동의 언어로 주목받고 있다.
행정안전부 주최 국가행사 및 문화재청 공식 무대에서 자작시 낭송과 기획 연출을 도맡으며, 시의 공공성과 예술성을 조화롭게 펼쳐왔다.
2011년에는 차마고도 종주를 통해 얻은 시적 영감을 바탕으로 음악과 결합한 '차마고도 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영랑문학상, 시인들이 뽑은 시인상, 서정시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문학과 예술, 삶을 가로지르는 통합적 실천으로 한국 시단에 뚜렷한 궤적을 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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