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정서윤 시인의 시 '회전목마'… 반복 속에서 발견한 고요의 정원

  • 등록 2025.08.20 08:3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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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윤 시인의 시세계, 도시적 순환과 내면의 투명성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아침의 독서는 마음을 맑게 여는 창과 같다. 오늘의 시 '회전목마'는 정서윤 시인이 도시의 반복되는 풍경 속에서 길어 올린 내면의 성찰을 담고 있다. 흔들리는 기억과 회전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인은 불현듯 ‘정지된 정원’을 발견한다. 그곳은 바람도 멈추고, 그림자조차 투명해지는 내면의 안식처이다.

끝없이 돌고 도는 일상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멈춤의 순간, 그 고요한 공간을 시인의 언어는 가만히 불러낸다. 오늘 아침, 이 시를 따라 잠시 회전목마에서 내려와 내 마음의 정원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편집자 주]

회전목마

- 정서윤 시인

    거리의 조명은 종종 깜빡였고, 식탁 위 컵들은 항상 조금씩 흔들렸다 바닥이 미묘하게 들릴 때마다 기억들이 액자 속에서 기울었고. 그때마다 불빛이 프레임 밖으로 미끄러졌다

    어떤 날은 거리의 간판이 고요해서 새벽 도시에 고인 색채 같고, 어떤 날은 한낮의 거리가 무표정해서 누군가의 뒷모습 같고,

    또 어떤 날은 아무 장면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어제의 거리가 오늘과 다르고, 어제의 마음이 발밑을 지나가고 있었으므로

    다시. 또다시 같은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너무 오래 한 방향으로만 회전을 할 때 늘 같은 감정 안에서 길을 잃는 일이기도 했다

   정지된 정원은 푸르고 투명했다 나는 처음으로 내 그림자를 보았다 그것은 바닥에 눕지 않고, 공기 속에 매달려있었다 마치 아주 얇은 유리 같아서 반사된 빛이 손끝에 닿을 때마다 등뼈를 타고 올라 조금씩 더 푸르게 자랐다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길을 가고 있었지만 정원은 아무도 걷지 않았고, 바람은 더 이상 나를 밀지 않았다

    같은 자리에서 시작되는 처음의 속도,

    멈추지 않아도, 돌아가지 않아도. 잃어버린 말들로 채워지던 거리는 이제 비워져도 괜찮다

    무너진 반대편에 정지된 정원이 있다

해설과 감상(장건섭 시인/본지 편집국장)

정서윤 시인의 '회전목마'는 도시적 삶과 내면적 성찰이 교차하는 시적 풍경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시인은 흔들리는 거리의 조명, 식탁 위 컵의 미묘한 떨림, 바닥을 따라 미끄러지는 기억 등 일상 속 작은 불안과 흔들림을 탁월하게 포착한다. 이러한 디테일은 독자로 하여금, 마치 자신도 시인의 도시를 걷고 있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회전목마'는 반복과 순환을 상징한다. 하지만 시 속 회전은 단순한 유년적 놀이의 이미지가 아니라, 같은 감정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현대인의 내면을 반영한다. "너무 오래 한 방향으로만 회전할 때 늘 같은 감정 안에서 길을 잃는 일이기도 했다"라는 구절에서 시인은 도시적 삶의 반복과 그로 인한 정서적 피로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단순한 회전에서 끝나지 않는다. 시인의 눈에 비친 '정지된 정원'은 회전의 반대편에 놓인 고요와 내면의 안식처이다. 바닥에 눕지 않고 공기 속에 매달린 그림자를 발견하는 순간, 시인은 내면의 투명성과 자기 인식을 경험한다. 그림자가 손끝에 닿을 때마다 등뼈를 타고 올라 푸르게 자란다는 묘사는, 정서적 성장이 내면적 통찰과 연결되어 있음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시에서 반복되는 도시와 정지된 정원의 대비는 독자에게 일상 속 멈춤과 관조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삶 속에서도 고요한 순간을 포착함으로써, 시인은 마음의 중심을 되찾고 감정을 정화하는 경험을 전한다. 또한 "잃어버린 말들로 채워지던 거리는 이제 비워져도 괜찮다"는 구절은, 언어적·정서적 해방을 통해 내면의 자유를 얻는 과정으로 읽힌다.

정서윤 시의 미학적 특징은 도시적 감각과 투명한 내면의 시선을 동시에 포착하는 데 있다. 그는 외부 세계의 미세한 흔들림과 내부 감정의 섬세한 파동을 함께 직조함으로써, 독자에게 반복과 정지, 혼돈과 성찰이 공존하는 시적 경험을 선사한다.

'회전목마'는 반복과 정지, 소란과 고요가 교차하는 도시적 삶의 풍경 속에서, 결국 자기 내면의 정원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평온을 찾는 과정을 아름답게 담아낸 시다. 시를 따라 걷다 보면, 독자는 자신만의 정지된 정원에서 숨을 고르고, 회전 속에서도 고요를 발견할 수 있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정서윤 시인은 삶과 언어의 미묘한 흔들림을 투명하게 길어 올리는 시인이다.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어교육 석사 학위를 받고, 중앙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을 수료하며 언어와 글쓰기의 뿌리를 단단히 다졌다.

2019년 <월간시>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시와 산문을 넘나들며 감각과 사유의 결을 섬세하게 직조해왔다. 시집 <유리병 속의 팔레트>에서는 유리처럼 맑고 깨지기 쉬운 내면의 풍경을 색채로 담아냈고, <우리, 그 길에서 만나요>, <인생은 눈부신 선물> 등의 공저에서는 문학적 교류와 소통의 확장을 보여주었다.

그의 시는 도시의 차가운 조명과 내면의 투명한 그림자를 동시에 포착한다. 독자는 시를 통해 바쁜 도시의 회전목마에서 내려, 정지된 정원 속 평온과 성찰을 경험하게 된다.

현재 그는 <현대시학> 부회장, <여행인문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시적 감각과 문학적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정서윤의 시는 오늘도 도시와 인간의 내면을 가만히 매만지며, 투명하게 빛나는 정원의 한 자락을 독자 앞에 내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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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섭 기자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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