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김민정 시인의 해외문학 순례기①… '남미, 거대한 자연과 다양한 인간 삶의 무늬'

  • 등록 2025.08.25 23: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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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리우데자네루에서 시작된 문학적 순례
글 / 김민정 시인(수필가·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문학은 언제나 '길 위의 사유' 속에서 깊어진다. 발길 닿는 곳마다 새로운 풍경과 역사,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켜켜이 쌓여 있다. 낯선 땅을 걸으면 그곳의 바람과 하늘, 언어와 노래가 곧 하나의 시가 되고 수필이 되며, 이야기가 된다.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의 제30회 해외 한국문학심포지엄을 맞아 떠난 남미 여정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문명과 자연, 그리고 인간 삶의 무늬를 직접 마주하는 문학적 순례이다.

브라질의 거대한 예수상(구세주 그리스도상)에서 느낀 경건함, 안데스 산맥의 품속에 숨겨진 마추픽추의 신비, 하늘과 맞닿은 듯 끝없이 펼쳐진 우유니 소금사막의 장엄함까지, 모든 순간이 '글로 기록해야 할 운명 같은 장면'으로 다가왔다.

이 연재는 그 기록이다.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이자 시인·수필가로 활발히 활동 중인 김민정 시인이 해외 한국문학심포지엄 참가와 함께 남미 문학기행에 나섰다.

이번 연재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시작해 페루의 마추픽추,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까지 이어진다. 낯선 대륙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 확인하게 되는 삶과 문학의 의미를 풀어내고자 한다. 한 편 한 편의 글이 독자들에게 새로운 세계와 사유의 지평을 열어주기를 바란다.[편집자 주]

다음은 김민정 시인의 첫 번째 긴 여정의 시작이다.


■ 출발, 긴 여정의 시작

오래전부터 가슴에 품어온 남미. 드디어 제30회 해외 한국문학심포지엄이 열리는 이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번 심포지엄은 서른 번째라는 의미와 함께 평소 쉽게 닿을 수 없는 남미에서 개최된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우유니 소금사막까지 이어지는 13박 14일의 대장정. 비용도 만만치 않았고, 최근 국내의 어수선한 분위기 탓에 함께한 이들은 스무 명 남짓이었지만, 그만큼 단단한 동행이 될 것 같았다.

우리의 여정은 지난 4월 27일 밤 10시에 모여, 28일 새벽 1시 20분 비행기를 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출발 전, 열흘 넘게 비워질 자리를 채워두느라 바삐 움직였다. 남미의 기온은 0도에서 28도까지 넓게 분포한다고 하여 봄·여름·가을·겨울의 옷을 모두 챙겨야 했다. 짐은 무거워졌지만 설렘이 짐보다 더 커서 발걸음이 가벼웠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밤, 나는 공항 한구석에서 노트북을 켰다. 이집트 기행문 연재 원고를 마감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행 전, 잠시 게을렀던 대가였다. 그러나 도하에서 환승하기 전 초고를 마무리하고 교정까지 끝내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여행과 글쓰기가 교차하는 순간, 나는 다시 작가로서의 길 위에 있음을 새삼 확인했다.

이번 남미 여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곳은 잉카문명의 마추픽추였다. 지난 3월 이집트 문명을 경험했는데, 올해는 두 대륙의 고대 문명을 모두 만나는 셈이니 더욱 벅찼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가보고 싶던 곳이었기에 생전에 실제로 갈 수 있을지 늘 궁금했는데, 드디어 그 바람이 현실이 된 것이다. 더불어 뜻밖에 우유니 소금사막까지 가게 되었으니 이번 여정은 더욱 귀하고 특별하다.

인천공항에서 카타르 도하 국제공항까지 약 10시간 10분이 걸렸다. 한국 시각으로는 오전 11시 30분경 도착했으며, 약 7시간의 시차가 있었다. 다시 도하에서 14시간 15분을 날아 브라질 상파울루에 도착했고,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1시간 5분을 더 가서 리오데자네이루에 이르렀다. 늦은 밤 숙소인 Grand Mercure Rio de Janeiro Copacabana Hotel에 도착하여 도시락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 언덕 위의 예수상, 경건한 기도의 순간

다음 날, 호텔 조식을 마친 후 우리는 거대한 예수상을 보러 나섰다. 전용버스를 타고 트램역에 도착해 기차를 갈아타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일찍 가야 기차를 탈 수 있다고 했다. 기차로 20분가량 오르니 드디어 코르코바도 언덕 위에 선 예수상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 예수상 앞에 섰을 때, 나는 두 손을 모아 경건히 기도했다. 나의 앞날이 무탈하기를, 가족 모두가 건강하기를, 내 곁의 이웃들까지 행복하기를. 여행을 하다 보면 모든 종교가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종교가 달라도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남에게 도움을 주며 착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거대한 자연 앞에 선 인간은 너무도 나약하여 무언가 의지할 대상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내 신앙만 옳다 우기기보다 타인의 신앙 또한 존중해야 함을 다시금 느낀다.



높은 산 하늘 아래
두 팔을 벌리셨다

힘들고 지친 자들
다 품어 주신다고

경건함 깃든 눈빛에
우러러 부는 바람

- 김민정 시인의 시조 '언덕 위의 예수 - 코르코바도' 전문



■ 리우의 상징, 그 빛과 그림자

예수상 앞에 서니 그저 관광지가 아니라, 인간과 신의 경계가 맞닿은 경외의 공간이었다.

이 예수상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징이다. 정식 명칭은 구세주 그리스도상으로, 높이 30m, 대좌 8m, 양팔 길이 28m, 무게 1,145톤에 이른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에 표면을 동석(soapstone)으로 마감한 이 석상은 자유의 여신상(뉴욕), 에펠탑(파리)과 더불어 세계적 랜드마크로 꼽힌다.

1921년 리오 대교구가 건립을 추진해 1922년부터 1931년까지 9년 동안 공사를 진행했고, 1931년 10월 12일 ‘성모 마리아의 날’에 제막되었다. 당시 공사비는 25만 달러로 대부분 헌금으로 충당되었다. 2006년 75주년을 맞아 내부에는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성당이 세워졌다.

해발 710m 코르코바도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리오의 풍경은 장관이었다. 이파네마 해변과 팡지아수카르 산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예수상의 앞쪽은 부촌, 뒤쪽은 빈민촌 파벨라가 자리해 ‘예수상은 등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사회 양극화의 상징이 되었다.



■ 슈가로프산에서 바라본 리우

예수상을 내려온 우리는 곧바로 케이블카를 타고 슈가로프산으로 향했다. 정상 부근에서 다시 바라본 리우 시내는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웠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바다와 해변 도시들은 그림 같았고, 멀리 언덕 위 예수상도 뚜렷이 보였다.

우리가 기념사진을 찍는 순간, 갑작스레 구름이 몰려와 예수상의 형체를 삼켜버렸다. 불과 몇 분 전까지 두 팔을 벌리고 있던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다. 모두가 숨을 고르듯 놀랐다. "우리는 운이 좋은 사람들이군요." 가이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틈에 예수상 앞에서 사진을 남긴 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 흐린 하늘, 그러나 더 깊은 풍경

이후 케이블카를 타고 슈가로프산에 올랐다. 흐린 날씨 속에서도 이파네마 해변은 그림처럼 눈 아래 펼쳐졌다. 멀리 코르코바도 언덕 위, 구름에 잠긴 예수상이 실루엣으로만 보였다. 푸른 하늘은 없었지만, 오히려 그 자욱한 안개가 신비와 장엄을 더했다.

정상에서 우리는 원숭이들을 만나고, 기념품 가게를 기웃거리며, 다시 한 번 리우 시내의 풍경을 마음에 새겼다. 예수상과 슈가로프산,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바다와 해변. 그 모든 풍경은 문학으로 다시 길어 올려야 할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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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섭 기자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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