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최창일 시인, '밤이 열리는 도시, 목포 오거리 샹송'

  • 등록 2025.07.01 20: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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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송 시인의 '오거리 샹송', "단순한 회상의 시가 아니라 잊혀가는 정서를 붙들어 두려는 문학의 항해"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1960∼1970년대 항구도시 전남 목포의 중심지였던 목포 오거리에 문학 시비(詩碑)가 건립됐다. 이 시비는 목포 오거리의 문화 역사를 되살리기 위해 출향 인사와 시민들의 성금으로 세워진 첫 민간 문학비다.

"창에 불이 꺼지면 / 가로수 밑에 밤이 열리네."

시(詩) 한 줄이 도시를 걷는다. 그 문장 하나가 돌이 되어 땅에 박히는 순간, 도시의 기억은 한층 깊어진다. 지난 6월 10일, 전남 목포의 중심, 오거리에는 권일송 시인의 시 '오거리 샹송'을 새긴 시비가 세워졌다. 검은 오석에 새겨진 그 시비는 한 편의 노래처럼, 사계절을 지나온 도시의 감성을 품고 다시금 부른다.

목포, 그리고 오거리! 이름만으로도 수많은 사연과 풍경이 동반되는 곳이다. 1960~70년대, 목포 오거리는 활력과 낭만, 그리고 시와 노래가 교차하던 거리였다.

다방에서는 배동신 수채화가, 서희환 서예가 등의 시화전이 끓이지 않았다. 목포의 눈물 이난영이 걷는 이국적 항구의 리듬과 바닷바람, 이방인을 감싸던 포구의 따스함이 교차하던 그곳에, 이제는 하나의 시가 새겨져 그 시절의 정서를 되살리고 있다.

권일송 시인의 '오거리 샹송'은 단순한 회상의 시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을 부르는 주문이며, 그리움을 끌어올리는 가락이고, 잊혀가는 정서를 붙들어 두려는 문학의 항해이다.

"덧문을 내리고 / 시린 손등을 문지르면" 우리는 이미 그 시절, 오거리의 낙엽 진 벤치에 앉아 있다. '흐르는 별들도 잠 못 이루는' 도시의 밤, 외로운 어깨를 스쳐 가는 바람 속에 그 시의 음성이 녹아 있다.

시비는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그것은 시가 서 있는 자리이며, 시간이 멈춘 점이자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문턱이다. 시비가 서 있는 장소는 목포 무안동 청소년문화센터 앞마당. 번화가의 오거리 한복판이다. 높이 3m, 너비 1.5m의 까만 빛 동 오석에 새겨진 시는, 행인의 시선을 붙잡고, 그들에게 고요히 고개를 들게 한다.


시비 건립은 단순히 한 시인의 기념비가 아니다. 그것은 문학이 도시와 만나는 지점이며, 사람과 도시를 이어주는 감성의 매듭이다. 고향을 떠난 재경 인사 55명과 목포 시민 30여 명이 뜻을 모아 세운 시비는, 그 자체로 목포에 대한 사랑의 상징이며, 문학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다.

배종덕 '오거리 샹송 시비 건립 위원회' 위원장은 "잊혀가는 오거리의 문화적 활력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배종덕 위원장의 애향심과 열정이 시비라는 형태로 구체화한 것이다.

목포시는 이번 시비 건립을 위해 공공조형물 경관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쳤고,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이는 단지 문화예술의 차원이 아닌, 도시 경관의 일부로서 문학작품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시선이 있기에 가능했다.

홍미희 목포시 문화지원팀장은 "예향의 항구 도시에 예술의 문화 숨결이 살아 넘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그 말처럼, 이 시비는 목포의 예술성과 항구 목포문화가 다시 한번 뿌리 내리는 기점이 될 것이다.

권일송 시인은 목포에서 문태고와 정명여고 교단생활을 하였다. 삶과 시의 궤적이 목포와 긴밀히 얽혀 있다.

권일송의 시는 흔히 '사계의 감성'이라 불린다. 계절의 흐름을 따라 사랑과 이별, 외로움과 기억이 녹아드는 시에는 천부적 감각이 숨어 있다.

"이 세월이 흐르면 / 흰 눈의 메리 크리스마스 / 사랑이여"라는 대목에 이르면, 시인은 계절 너머의 사랑까지 포용하고 있다. 시인의 고교강단 시절 제자 김준환 시인은 "이번 시비를 통해 목포의 언어·문학이 다시 한번 생동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제자의 말처럼, 문학은 도시의 호흡과 맞물려 다시금 피어오르고 있다.

오거리는 단지 거리의 이름이 아니라, 목포 사람들의 삶이 교차하는 자리다. 이 시가 노래하는 밤, 그곳에는 '이미 떠난 여름'과 '잊힌 먼 사랑의 그림자'가 서성이고 있다. 시인은 그 속을 걷고, 노래하고, 바라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의 언어를 빌려, 잊고 있던 어떤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어듀 / 창에 불이 꺼지면 / 가로수 밑에 밤이 열리네."

시인은 작별을 고하면서도, 여운을 남긴다. 마치 샹송의 마지막 음이 공중에 머물 듯, 그의 시 또한 오거리에 머문다. 시비는 그래서 고요한 음악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눈이 내릴 때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 앞에 멈출 때마다. 그 음악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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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섭 기자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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