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이상문학상의 시간이 돌아왔다. 제49회 이상문학상은 소설가 위수정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눈과 돌멩이'다. 우수상은 김혜진의 '관종들', 성혜령의 '대부호', 이민진의 '겨울의 윤리', 정이현의 '실패담 크루', 함윤이의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에 돌아갔다.
이상문학상은 한국문학에서 가장 오래되고, 동시에 가장 많이 논쟁된 문학상이다.
'이상(1910~1937, 李箱)'이라는 이름이 지닌 급진성과 불안, 실험의 기억은 이 상을 단순한 연례 시상 이상의 것으로 만들어왔다.
이상문학상은 매년 "당대 최고의 단편소설’을 뽑는다는 명분 아래, 한국소설의 현재를 규정하고 평가하는 하나의 제도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상은 늘 질문의 대상이 되어왔다. 과연 이상문학상은 무엇을 선택해왔고, 무엇을 배제해왔는가.
이상문학상은 1977년 제정되었다. 산업화가 가속화되고 문학이 제도적 관리와 현실적 제약 속에 놓여 있던 시기, 이 상은 단편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문학의 밀도와 실험성을 보존하겠다는 선언처럼 등장했다.
장편이 점차 시장과 결합해가는 동안, 이상문학상은 단편을 ‘문학적 성취의 최전선’에 놓아왔다. 이 선택은 분명 한국소설의 중요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수상작의 면면을 보면, 이상문학상이 단순히 안전한 정답만을 반복해온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이 상은 사회적 사실주의와 개인의 내면 서사를 오가며 한국소설의 스펙트럼을 확장해왔다.
1996년 은희경의 수상작이 보여준 냉소와 아이러니는 이전 세대의 도덕적 서사와 결별하며 90년대적 감각을 선명하게 드러낸 사례였다. 이는 "문학은 무엇을 진지하게 다루어야 하는가"라는 질문 자체를 흔든 선택이었다.
2010년대 중반 이후의 수상작들은 거대한 사회 서사보다 일상의 미세한 균열과 감정의 파편에 집중한다. 김애란, 김금희로 대표되는 이 흐름은 소설이 세계를 직접 고발하기보다,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감각을 정밀하게 포착하는 방향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이상문학상은 이 변화를 비교적 빠르게 수용한 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들이 언제나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이상문학상은 오랫동안 '문단 중심적', '기성 권위의 재생산'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심사위원 구성과 기준의 불투명성, 특정 경향의 반복적 수상은 상의 권위를 강화하는 동시에 그 권위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상문학상은 문학적 성취를 평가하는 상인 동시에, 문단 권력의 작동 방식을 노출하는 장이기도 했다.
이 긴장은 2019년 저작권 논란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표면화됐다. 수상작 사용을 둘러싼 계약 조건은 작가의 권리와 문학상 관행이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이었다. ‘이상’이라는 이름으로 상징되던 자유와 실험의 정신이 현실의 계약서 앞에서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낸 순간이었다.
이후 이상문학상은 제도 개선을 약속했지만, 그것은 신뢰 회복이라기보다 더 이상 과거의 권위에만 기댈 수 없다는 자각에 가까웠다. 문학상은 이제 작품을 평가하는 자리를 넘어, 스스로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설명해야 하는 제도가 되었다.
최근의 수상작들은 대체로 조용하고 절제된 어조로 개인의 감각과 윤리적 곤경을 그려낸다. 이는 한국사회가 더 이상 하나의 언어로 설명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음을 반영한다. 소설은 해답을 제시하지 않고 질문을 남긴다.
이상문학상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그것은 제도이며, 제도는 언제나 현실의 힘과 타협한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서 이 상은 한국문학의 변화와 갈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왔다. 이상이 생전에 온전히 이해받지 못한 채 질문으로 남았듯, 이상문학상 역시 완성된 답이 아니라 지속되는 논쟁으로 존재한다.
이상문학상이 앞으로도 의미를 지닐 수 있다면, 그것은 권위 때문이 아니라 질문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이 상이 무엇을 선택하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어떤 논쟁을 불러오는가이다. 논쟁이 계속되는 한, 이상문학상은 한국 단편소설의 현재를 기록하는 하나의 살아 있는 문학사로 남을 것이다.

-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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