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베트남 마지막 황후 남프엉(Nam Phương)의 삶과 사랑, 그리고 왕조의 몰락을 조명한 역사서 <남프엉 황후와 바오다이 황제의 발자취를 따라>가 베트남여성출판사(Nhà xuất bản Phụ Nữ Việt Nam)에서 최근 출간됐다.
베트남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Bảo Đại)와 함께했던 황후의 삶을 중심으로, 왕조의 마지막 순간과 근대 베트남의 격동기를 인간적인 이야기로 풀어낸 책이다.
번역에는 한·베 양국 학자들이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배양수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가 번역을 맡았으며, 베트남에서는 응우옌 티 투 번(Nguyễn Thị Thu Vân)과 레 투이 중(Lê Thúy Trung)이 공동 번역자로 참여했다.
후에 황궁에 남아 있는 왕조의 그림자
베트남 중부의 고도 후에(Huế)는 한때 베트남 왕조의 중심지였다. 향강(香江, Hương Giang)이 유유히 흐르는 이 도시는 수 세기 동안 왕조의 정치와 문화가 꽃피었던 곳이다.
오늘날 여행자들이 후에 황성을 찾으면 오래된 성벽과 궁전 사이에서 사라진 왕조의 흔적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종종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바로 베트남 마지막 황후 남프엉이다.
그녀는 단순히 왕비라는 지위를 넘어 한 시대의 품격과 비극을 함께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식민지 시대에 태어난 근대적 황후
남프엉 황후의 본명은 Nguyễn Hữu Thị Lan(응우옌 흐우 티 란)이다. 그녀는 1914년 남부 베트남의 부유한 가톨릭 가문에서 태어났다. 당시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지 지배 아래 있었으며 사회 전반이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어린 시절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은 그녀는 서양식 교양과 국제 감각을 갖춘 여성으로 성장했다. 프랑스어에 능통했고 유럽 문화에도 깊이 익숙했다.
그러나 동시에 베트남 전통과 문화적 정체성을 잊지 않는 인물이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은 훗날 그녀가 왕궁에 들어가 황후가 되었을 때 특별한 상징성을 갖게 한다.
마지막 황제와의 결혼
1934년 그녀는 베트남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Nguyễn Dynasty)의 황제 바오다이와 결혼한다. 당시 바오다이 황제는 프랑스 유학을 마친 젊은 군주였으며 근대화된 국가를 꿈꾸고 있었다.
두 사람의 결혼은 단순한 왕실 혼인을 넘어 전통 왕조와 근대 세계가 만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그녀는 결혼과 함께 '남프엉(Nam Phương)'이라는 황후의 칭호를 받는다. 이는 "남쪽의 향기"라는 뜻으로, 그녀의 품위와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다.
궁정의 품격과 지성
후에 황궁에서 남프엉 황후는 단순한 왕비 이상의 존재였다. 그녀는 여성 교육과 사회복지 활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자선 사업을 펼쳤다. 궁정에서도 절제된 태도와 지적 품위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프랑스 교육을 받은 현대적 여성임에도 베트남 전통 의복 아오자이를 입고 궁정 의례를 지키는 모습은 당시 베트남 사회가 경험하고 있던 전통과 근대의 공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이러한 삶의 단면을 통해 한 여성의 전기를 넘어 식민지 시대 베트남 사회의 문화적 풍경을 함께 그려낸다.
왕조의 몰락과 격동의 시대
20세기 중반 베트남은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일본이 패망하고, 베트남에서는 독립을 요구하는 혁명운동이 거세게 일어난다.
결국 바오다이 황제는 퇴위를 선언하게 되고,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응우옌 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왕관이 내려지는 순간 베트남의 왕조 시대도 막을 내렸다. 남프엉 황후의 삶 역시 이때부터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왕궁에서 프랑스의 작은 마을로
왕조가 붕괴된 이후 남프엉 황후는 프랑스로 건너가 조용한 삶을 살게 된다. 후에 황궁의 화려한 궁정에서 살던 여인이 유럽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생을 마쳤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녀는 1963년 세상을 떠났지만 베트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우아하고 품위 있는 황후로 남아 있다.
베트남 마지막 왕조가 남긴 역사적 의미
응우옌 왕조의 몰락은 단순히 한 왕실의 종말이 아니라 베트남 근대사의 전환점이었다. 왕조 시대가 끝나고 베트남은 식민지 시대, 독립운동, 전쟁과 분단이라는 격동의 역사를 거치게 된다.
이 책은 남프엉 황후의 삶을 통해 이러한 역사적 변화를 인간적인 이야기로 풀어낸다. 한 여성의 삶 속에서 왕조의 영광과 몰락, 그리고 근대 베트남의 탄생이 함께 교차하는 것이다.
기억 속에 남은 마지막 장미
오늘날 후에 황성을 찾는 여행자들은 오래된 궁궐의 돌계단을 걸으며 사라진 왕조의 흔적을 느낀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종종 바오다이 황제와 함께 남프엉 황후의 이름을 떠올린다.
권력은 사라지고 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품격과 아름다움은 오래 남는다. 어쩌면 남프엉 황후는 베트남 왕조의 마지막 장미였는지도 모른다.
전쟁과 혁명의 격랑 속에서도 조용히 피어 있었던 한 송이 장미.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은은한 향기를 남기는 장미 말이다. 후에의 강가에 바람이 스칠 때면, 오래된 궁정의 향기가 다시 살아나는 듯하다.
그 향기 속에는 아직 한 여인의 이름이 남아 있다. 남프엉. 남쪽에서 피어난 마지막 왕조의 장미다.
베트남의 고도 후에(Huế)를 찾은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오래된 궁궐의 돌계단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화려했던 왕조의 흔적은 이제 관광지의 풍경이 되었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한 시대의 기억이 조용히 숨 쉬고 있다.
베트남 마지막 황후 남프엉(Nam Phương)의 삶은 바로 그 기억의 중심에 서 있는 이야기다. 그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Bảo Đại)와 함께 막을 내린 응우옌 왕조(Nguyễn Dynasty)의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왕조의 몰락은 정치적 사건으로 기록되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인간의 삶과 감정이 함께 존재한다. <남프엉 황후와 바오다이 황제의 발자취를 따라>는 바로 그 인간적인 서사를 통해 베트남 근대사의 한 장면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다.
특히 한국의 베트남학자 배양수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를 비롯한 한·베 양국 번역자들이 함께 참여했다는 점은 이 책이 단순한 역사 교양서를 넘어 문화 교류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왕관은 사라졌지만 한 시대의 품격은 기억 속에 남는다. 후에의 향강 바람 속에서 여전히 은은한 향기를 남기고 있는 이름, 남프엉.
그녀는 어쩌면 베트남 왕조가 남긴 마지막 장미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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