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하고서 서울 종로구 조계사로 은신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은신 25일 만인 10일 오전 조계사에서 퇴거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한 위원장은 이날 오전 10시 20분쯤 조계종 화쟁위원회 도법스님, 이세용 종무실장과 함께 관음전 2층 구름다리를 지나 대웅전으로 향했다.
지난달 30일부터 단식을 해온 한 위원장은 이날 다소 수척한 얼굴로 나타났다. 검은티와 검은색 등산바지, 갈색 등산점퍼 위에 민주노총 조끼를 입은 차림이었다. 대웅전으로 걸어가던 도중 일부 민주노총 조합원이 손을 내밀자 악수를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등 여유로운 표정도 보였다.
대웅전에 들어간 한 위원장은 삼배를 올린 후 오른쪽과 왼쪽에 위치한 신도들에게도 번갈아가며 합장을 했다.
이후 들어온 정문 입구로 다시 나가 자승 총무원장과의 면담을 위해 불교역사문화기념관으로 향했다.
면담이 시작된 10시 30분, 생명평화법당 앞에 모인 민주노총 조합원 20여명은 각자 '쉬운 해고반대' '노동개악반대' 플랜카드를 들고 "한상균은 무죄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위원장의 기자회견을 기다렸다.
한 위원장은 오전 10시 45분 자승 충무원장과의 면담을 마치고 도법스님과 함께 나와 대웅전 옆 생명평화법당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종단의 경고에도 경내에 공권력이 난입한 걸 용납할 수 없다"며 "저는 살인범도 파렴치범도 강도범죄 폭동을 일으킨 사람도 아닌 해고 노동자"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법은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비정규직들의 소박한 꿈을 없애고, 나이 50이 넘으면 당연히 파견노동을 해야하는 법안"이라며 "민주노총이 왜 총궐기 총파업을 하는지 물어보기라도 해야한다"고 피력했다. 11월 14일 집회에 대해서는 "왜 백남기 농민에 대해서는 아무도 사과를 하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한 위원장은 "정권이 짜놓은 각본에 따라 구속은 피할 수 없지만 불의한 정권의 민낯을 까발리겠다"며 "노동재앙, 국민대재앙을 불러올 노동개악을 막기 위해 2천만 노동자의 생존을 걸고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총파업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야당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진두지휘하며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는 지금 언제까지 협상 테이블에 앉아 저울질할 것인가"라며 "이번 임시국회에서 노동개악 법안 처리 중단을 선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한 위원장은 "고통과 불편을 감내해 주신 조계종과 조계사 스님, 신도님들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며 "어제는 종단의 우려와 경고에도 청정도량이자 성소인 경내에까지 경찰 공권력이 난입했는데,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 위원장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는 "구속된다 하더라도 노동개악이 저지될 때까지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며 "16일 총파업 총궐기 투쟁을 위력적으로 해내자"고 말했다. 이어 "감옥 안에서라도 노동개악 저지 총파업 투쟁 승리 소식만은 듣고 싶다"고 덧붙였다.
회견을 마친 한 위원장은 도법 스님과 함께 일주문을 거쳐 조계사 밖으로 나가 경찰 호송차에 올라탔다. 경찰은 바로 한 위원장에 대해 체포영장을 집행했으며, 남대문경찰서로 이송한 뒤 이르면 11일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한 위원장은 작년 5월 24일 세월호 희생자 추모집회에서 도로를 점거하고 청와대 방면 행진을 시도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재판에 계속 출석하지 않자 법원은 지난달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는 지난 5월1일 노동절 집회에서 폭력시위를 주도한 혐의로도 체포영장이 발부됐지만 경찰을 피해 왔다. 그러다 1차 총궐기 집회가 열린 지난달 14일 오후 집회에 참가했고, 경찰 포위망이 강화되자 이틀 뒤인 16일 밤 조계사로 은신했다.
한 위원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일반교통방해, 해산명령 불응, 특수공무집행방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특수공용물건손상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한 위원장이 지난달 14일 집회 당시 폭력시위도 주도했다고 보고 형법상 소요죄 적용까지 검토하고 있다. 소요죄는 ‘다중이 집합해 폭행, 협박 또는 손괴의 행위를 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으로, 시위에 소요죄가 적용된 전례는 드물다.
다음은 한상균 위원장의 기자회견문 낭독에 앞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밝힌 내용 전문이다.
조합원동지 여러분! 현장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 박근혜 정권의 공안탄압에 얼마나 또 분노가 끓어오르십니까? 2015년 12월, 노동의 미래가 결정되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제가 이 곳 조계사에 들어온 지 25일째입니다. 백남기 어르신의 쾌유와 노동개악 저지, 민주주의 후퇴를 막고자 11일째 단식을 하고 있습니다.
동지들의 결단으로 2015년 12월에는 노동개악을 막아내는 총파업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누가 대신 결정하고 결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조합원 스스로 결정합시다. 간부동지들도 힘 있게 끌고 갈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국의 단위사업장 대표 동지들도 함께 결단합시다. 단결한다면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결정합시다. 모든 책임은 위원장인 제가 지고 가겠습니다. 저는 감옥에 가서도 노동개악 중단의 열망으로 곡기를 끊고 단식을 이어갈 것입니다.
동지들! 이 위기를 넘기면 내년 총선과 대선을 통해, 다시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을 우리 힘으로 민중의 힘으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정권도 알기에 연내 처리를 목표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이미 개혁은 개악임이, 개악은 전 민중의 재앙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럼에도 재벌의 곳간을 여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허리띠를 조여오고 있습니다. 이 불의한 정권에 맞서지 않는다면 노동자의 무권리 상태는 계속될 것입니다. 민주노조를 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던졌습니까? 엄혹한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살아 왔습니다.
저는 다시 봄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그 희망으로 이 엄혹함을 잘 견뎌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야당은 아직 당론으로 노동개악 저지를 발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당은 청와대의 거수기이자 나팔수가 돼 혈안입니다. 이제 믿을 것은 우리 민중의 힘입니다. 1차, 2차 민중총궐기로 그 기세를 확인했습니다. 이대로는 못 살겠다는 세상의 민심이 이렇게도 많음을 우리 함께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동지들! 우리가 나서서 노동이 존중받고 서민들이 웃을 수 있는 세상을, 미조직노동자들이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권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비정규직 차별이 없어진 세상,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합니다. 자본이, 정치가, 정권이 절대 해주지 않습니다.
동지들, 12월 16일 아래로부터 일어나고 또 위에서 끌어주는 총파업 만들어 냅시다. 정권의 도발에 맞서 21일부터 강력한 총파업 전선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 길에 함께합시다.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공안탄압에 맞선 조합원 동지들은 죄가 없습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온전히 안고 갈 것입니다. 동지들, 조계사와 전국에 있는 사찰에 감사의 전화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신도들은 어마어마한 불편을 감내해왔습니다.
스님들은 정권의 탄압에 맞서고 있습니다. 이런 조계종 조계사 스님들과 신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조합원 동지들도 전국의 사찰에 감사의 마음을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동지들! 새벽은 오고 있습니다. 그 새벽의 기운은 우리 가슴에서부터 자라고 있습니다.
함께 싸워서 승리합시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