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헌법재판소가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에 대해 재판관 5(합헌)대 4(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이에 따라 김영란법은 시행령 확정 등 후속 작업을 거쳐 오는 9월 28일부터 전면 시행된다.
헌재는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기자협회 등이 “언론인과 사립학교 관계자를 적용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언론·사학 자유를 침해하고, 배우자의 금품 수수에 대한 신고를 의무화한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에 대해 “언론인과 사립학교 관계자를 법 적용대상으로 포함한 것은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의 언론과 사학의 자유 침해하지 않는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합헌 소식에 ‘김영란법’의 족쇄에서 자유로운 국회의원과 시민단체는 일제히 환영 의사를 표명했지만 직·간접적 피해를 피할 수 없는 유통·금융·재계 등에선 유감과 난색을 표하고 있다.
특히 기자협회는 “권력이 김영란법을 빌미로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릴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하며 “철저히 감시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각종 불합리한 관행들에 대한 대수술이 이뤄지는 등 사회 개조가 이제 시작되는 셈이다.
◇ 권익위·법제처, “헌재 결정 존중…9월28일 시행에 만전 기할 것”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날 헌재의 결정을 듣고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 9월28일 법시행을 위해 만전을 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곽형석 권익위 부패방지국장은 브리핑을 통해 “청탁방지법 시행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가 근절되고 나아가 국가의 청렴도가 획기적으로 제고될 수 있길 기대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권익위는 헌재 결정이 내려진 만큼 빠른 시일 내에 법제처에 법률 심사를 접수할 예정이다. 법제처 법률 심사는 상위법이나 관련법과 충돌하는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는 단계로, 통상 20~30일 정도 소요된다.
헌재의 합헌 결정으로 법제처 법률 심사가 다른 방향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은 줄었지만,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등 관계부처에서 반발하고 있어 심사 일정 등이 다소 길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법제처 관계자는 “권익위에서 접수를 하는 대로 법률 심사 단계가 진행될 것”이라며 “일부 부처에서 정부입법정책협의회 개최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정식 요청이 오면 이에 대해서도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법제처에서의 법률 심사가 끝나면 차관회의, 국무회의 의결 등을 거친 후 9월28일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시행일을 고려하면 법제처 법률 심사는 다음 달 안으로 종료될 것으로 보인다.
곽 국장은 “권익위는 9월28일 법이 안정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남은 기간 동안 시행령 제정, 직종별 매뉴얼 마련, 적용대상자 및 국민을 상대로 한 교육 등 후속조치에 만전을 기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권익위는 김영란법 적용 대상 기관들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과 강연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언론 등을 통한 대(對)국민 홍보 활동도 본격화하고, 내달 중으로 구체적인 적용 사례가 담긴 Q&A 자료를 추가로 게시한다는 방침이다.
◇ 유통·재계·카드업계, “불경기 상황에서 김영란법 합헌은 재앙”
김영란법 직격탄을 맞을 유통업계는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에 일제히 강한 실망감을 보였다.
김영란법 내용 중 유통업계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내용은 공무원, 교원 등에게 할 수 있는 선물 가격을 5만원으로 제한한 시행령 부분. 특히 고가 선물 수요가 많은 백화점 업계에 가장 많은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백화점 업계 한 관계자는 “4만 9999원짜리 김영란 선물세트를 내놓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5만 원 이하 선물세트 비중이 작아 매출 감소는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 또한 소비 위축 우려감을 표하고 있다. 백화점보다는 5만 원 이상 선물세트 비중이 작지만 정육·수산·과일 같은 신선식품 선물세트는 5만 원 이상 제품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번 헌재 결정과 상관없이 추후 국회에서의 법 개정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관계자들은 기존의 홍보나 대관 관행을 재점검하고 법 시행에 따른 매뉴얼 개발에 나섰다. 기존의 언론대응 방식으로는 김영란법에 저촉받을 가능성이 높아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이 절실하다는 것.
특히 국내 주요그룹 임원들은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9월28일 이후로는 골프약속을 모두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골프의 경우 1인당 사용되는 비용이 10만원을 넘는 경우가 많아 원천 차단되기 때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김영란법에 맞는 새로운 홍보 및 대관 매뉴얼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다”며 “아직 법에 대한 자세한 파악이 되지 않아 ‘일단 조심하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9월 28일 이후의 저녁약속 등을 잡지 말자는 의견이 많다”며 “법 시행 초기에 적발될 경우에는 ‘본보기’가 될 수 있어 식사자리 등을 가급적 피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맹점 수수료 인하와 비자카드 수수료 인상 등으로 이미 골머리를 앓고 있는 카드업계에서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법인카드 사용이 줄면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카드사들은 김영란법 중 3만원(식사비용)·5만원(선물비용)·10만원(경조사비용) 등으로 정해진 접대비용에 대한 한도 규정 부문을 우려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식사·선물 같은 비용을 제한하면 법인카드를 통한 결제액이 줄어드는 게 불보듯 뻔하다”며 “일각에서는 1인당 3만 원 이상 결제가 안 되는 ‘김영란 법인카드’가 발행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 여야 “헌재 판결 존중·김영란법 환영”
김영란법 합헌 소식에 환영 의사를 표명한 정치권은 “헌재의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예상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다만 새누리당은 "법 시행 이전이라도 농수축산물 제외 등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해 후속 입법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일단 법 시행이후 나타나는 문제점들에 대한 제도개선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은 헌재의 이날 합헌 결정을 존중하면서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데 당력을 모으기로 했다. 조만간 의원총회를 소집해 농수축산물을 법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 등 후속 입법 추진 여부에 대해 논의하겠다는 것.
김현아 대변인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발표한 공식 논평에서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가 보다 깨끗해지길 바라는 간절한 염원으로 만들어진 ‘청렴사회법’으로 헌재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 “새누리당은 부정·부패 없는 청렴한 사회를 향한 법 제정의 목적과 취지를 살리며, 예상되는 부작용 최소화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 깨끗하고 투명한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데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이재경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제 남은 것은 김영란법의 시행을 통해 공직사회 뿐 아니라 대한민국이 부패를 근절하고 청렴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라며 “더불어민주당은 앞으로도 청렴하고 투명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앞장설 것임을 다짐한다”고 선언했다.
손금주 국민의당 대변인은 “국민의당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고 이러한 결정에 이른 재판관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며 “다만, 정치권과 정부는 이 법 시행으로 인해 우리 농어민과 중소상공인 등의 생계에 미칠 피해규모와 영향을 면밀히 평가하고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도 김영란법 합헌 결정과 관련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정당한 입법활동 이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국회의원 등도 이 법의 적용대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 전 대표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나라는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에서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라며 “오는 9월 김영란법 시행을 계기로 우리는 ‘부패 후진국’이라 오명을 씻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당은 "헌재가 부정부패 해소와 청렴사회를 향한 국민의 여망을 받아 안는 결정을 내린데 대해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는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영란법은 만연한 부패를 방치하고서는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은 불가능하다는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또 "국민적 공분을 불러온 진경준 등 고위공직자의 부패스캔들은 김영란법과 같은 특단의 대책이 왜 절실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김영란법의 시행은 긴 여정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라며 "현재 김영란법을 최소법으로 규정했던 것처럼 여러 면에서 미흡하고 불완전하다. 따라서 정의당은 시행하면서 보완할 것을 주장해왔다"고 강조했다.
심 대표는 "김영란법의 부정청탁 금지대상에 국회의원을 포함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국민들의 고충과 민원을 전달하는 의정활동이 부정적인 방식으로만 가능하다는 전제는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영란법 제정 과정에서 빠진 이해충돌방지 제도는 서둘러 도입 돼야 한다"며 "이해충돌방지 제도는 공직사회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는데 없어서는 안 될 반쪽이다. 이와 관련해 이미 준비해둔 개정안을 곧 발의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가뜩이나 어려운 농·축·어업의 피해에 대해서 걱정이 많다"며 "청렴사회로의 대도약과 농·축·어업의 발전은 얼마든지 양립 가능한 목표가 될 수 있다. 부패해야 농어민을 살릴 수 있다는 말은 정부의 도덕적, 정책적 무능을 고백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영란법 시행으로 혼란과 불편이 있을 수 있고 개인적으로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투명하고 정의로운 사회로의 길을 힘들다고 포기 할 수는 없다"라고 주장했다.
◇ 시민단체 ‘활짝’ 기자협회 ‘유감’
시민단체들은 김영란법 합헌에 일제히 환영 입장을 밝혔다. 반면 기자협회는 ‘유감’을 표명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헌재의 합헌 결정 이후 논평을 내고 “김영란법에 대한 헌재의 합헌 결정은 부정부패 근절의 계기가 될 것”이라며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입법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됐고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로 가는 중요한 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시민연합 관계자 역시 “김영란법 시행을 계기로 공직자부터 앞장서서 부정부패를 근절해야 한다”며 “국민권익위원회는 법이 제대로 연착하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기자협회는 “대단히 유감스럽다”며 “김영란법이 비판언론 재갈물리기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기자협회는 이날 성명에서 “헌법 수호의 최후 보루인 헌법재판소가 잘못을 바로잡아줄 것으로 기대하고 헌법소원을 냈으나 헌재는 오히려 헌법상 가치를 부정하는 판결을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이 최종 포함됨으로써 앞으로 취재 현장은 물론 언론계 전반의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해졌다”며 “앞으로 기자들은 취재원을 만나 정상적인 취재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취재 활동의 제약은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자협회는 “무엇보다도 권력이 김영란법을 빌미로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릴 가능성을 경계한다”며 “사정당국이 자의적인 법 적용으로 정상적인 취재·보도활동을 제한하고 언론 길들이기 수단으로 김영란법을 악용하지 않는지 똑똑히 감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김영란법’ 무엇이 문제일까?
‘김영란법’은 2013년 8월 국민권익의원회가 수정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한지 약 3년여 만에 헌재의 합헌 결정을 받아냈다.
정무위에 상정된 후 방치돼 왔던 김영란법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 발생 후 박근혜 대통령이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을 화두로 내세우며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김영란법의 정식 명칭은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안’으로 공직자나 공직자의 가족이 1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았을 때 대가성이나 직무연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국회의원들은 핵심 내용이라 할 수 있는 ‘이해충돌 방지’, 즉 공직자가 직무를 이용해 사적인 이익을 얻을 수 없도록 한 부분을 통째로 뺀 ‘반쪽짜리’ 법안을 상정했다.
뿐만 아니라 부정청탁의 주요 루트인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등에는 법망을 피할 우회로를 열어주고 공직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 대학병원 종사자 등을 적용 대상에 슬쩍 끼워 넣었다.
김영란법을 제안한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반부패법은 보통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김영란법은 부패를 막아서 청렴한 공직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라고 밝힌바 있다. 하지만 이제 그 법안의 취지는 퇴색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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