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광복절 하루 전날이기도 한 이날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한국과 일본 시민 5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제4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맞이 나비문화제'를 열었다.
이날로 4회째를 맞은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8월 14일 일본정부의 책임회피와 역사부정에 맞서 최초로 공개증언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범죄를 고발한 것을 계기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기억하자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2012년 12월 ‘제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 회의’는 이날을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로 지정하고 2013년 8월 15일부터 세계 곳곳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억하는 행사를 개최해왔다.
배우 권해효 씨의 사회로 2시간 가량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청년, 학생 등 시민 1천500여 명(경찰추산 800명)이 자리했다.
이날 문화제에는 ‘열여섯’이라는 시를 낭송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도종환 의원을 비롯해 당대표 경선에 나선 추미애 의원과 유은혜·박홍근·홍익표·박주민·남인순·손혜원·심재권·정춘숙 의원 등이 참석했다.
문화제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도종환 의원의 시낭송과 재일조선인 가수 이정미 씨의 공연 등 다양한 문화공연이 이어졌다.
또 이날 행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길원옥 할머니가 참석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이어 “공주같이 자랐으니 우리 같은 사람들의 사정을 알겠느냐”면서 “평생 대통령에 있을 것도 아니고 퇴임 후에 국민들 얼굴 보려면 조용히 있다가 물러나는 것이 몸에 좋을 것”이라며 “박근혜 제발 정신 좀 차리게”라고 일침을 가했다.
정부의 화해·치유재단 설립 강행에 대해서는 “자기네들이 재단을 만든다고 하는데 뭘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국민과 여성단체들의 후원으로 지금도 편안하게 살고있는 데 그 돈을 받아서 재단을 만드는 게 옳은 일이냐”고 반문한 뒤 “개가 들어도 웃을 일”이라고 비난했다.
아울러 “억울하게 어린 나이에 끌려가 그렇게 고생하고 돌아왔는데 위로금 몇 푼 준다고 해서 용서가 되겠느냐”면서 “지금 아베가 정권을 쥐고 있으니까 아베가 일본군 개입 사실을 시인하고 용서해달라고 사죄해야 하며 위안부라는 꼬리표를 떼고 법적으로 배상하면 오늘이라도 용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 씨는 이어 “정부가 피해자들의 어떠한 의견도 반영되지 않는 배상금을 통해 우리의 정의로움에 대한 염원을 깔아뭉개려 하고 있다”며 “위안부 피해 해결은 이렇게 매듭짓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평화를 구현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은 이날 나비문화제를 통해 한일합의 무효와 공식 사과 등을 한일 양 정부에 촉구했다.
청소년 겨레하나의 공연 뒤에 무대에 오른 김 할머니는 "이제까지 정부가 해결을 못 지어도 할머니들을 괴롭히지는 않았다"며 "우리에게는 이렇다 할 말 한마디 없이 속닥속닥 하더니만 해결지었다고 형편없이 만들고는 위로금을 주겠다고 했다"고 한일합의를 비난했다.
이어 "할머니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법적으로 사죄하고 배상하면 우리는 오늘이라도 용서해줄 수 있다"며 "정부가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는 우리대로 싸우겠다. 힘내서 같이 싸워달라"는 발언에 참가자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이어 "합의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종결짓는 것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 될 수는 없다"며 "피해자들에게 잘못된 합의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하고 회유하는 것이 화해와 치유가 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선언을 통해 "한일 정부의 졸속적, 굴욕적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무효화되고 기만적인 화해치유재단 강행이 중단될 때까지 소리 높여 투쟁하겠다"며 "시민의 힘으로 만드는 정의기억재단을 통해 한일 정부의 부당한 종결 시도에 맞서며 올바른 문제 해결을 이룰 때까지 손잡고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또 "할머니들이 겪은 역사, 할머니들이 가르쳐 준 평화의 메시지를 널리 전파하고 실천하겠다"며 "전쟁과 무력 갈등, 여성폭력이 사라지는 인권과 평화 세상을 향해 참여하고 행동하겠다"고 다짐했다.

박주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희망나비 대표는 “오늘로서 소녀상을 지킨 지 229일째가 된다”면서 “피해자 할머니와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대와 폐기 외침을 외면하고 있는 정부는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이냐”며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와 소녀상 철거를 막기 위해 청년들의 행동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샘 평화나비네트워크 대표는 “정부가 배상금도 아닌 10억 엔으로 ‘화해·평화재단’을 만든다면서 피해자들을 우롱하고 있다”며 “하지만 시민단체와 할머니들이 함께 만든 정의·기억재단이 발족한 만큼 대학생들도 할머니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함께 하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방송인 김미화 씨는 이날 영상메시지와 함께 1천 85만 7543원을 정의기억재단에 기부했다. 이 돈은 2010년 블랙리스트 발언으로 KBS에 고소당하자 미국 교포들이 소송비용에 보태라고 모금한 후원금이며, 그동안 여성단체연합이 ‘김미화기금’으로 보관해오다 김미화 씨의 요청에 따라 재단에 후원하게 됐다.

재일조선인 가수 이정미 씨는 관동대지진으로 사망한 조선인들을 추모하는 ‘게이세이센’, ‘일본의 밥딜런’으로 불리는 재일동포 가수 박보의 ‘빗속에 피는 꽃’, 영화 ‘귀향’의 OST 중 ‘가시리’, 가수 김민기의 ‘가뭄’, 월북시인 박세형의 가사에 곡을 붙인 ‘임진강’을 공연했다.
또 이화여고 학생들과 ‘도라지꽃’를 함께 불렀다. 한편 지난 12일 외교부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작년 12월 한일 합의에 따라, 국내 절차가 완료 되는 대로 일본 정부 예산 10억 엔(한화 약 109억 원)을 출연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10억 엔 출연이 끝나면 위안부 피해자 관련 법적 문제는 사실상 종결된다.
NHK,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관련해 "일본 정부의 출연금 지급이 완료되면 한일 협정에 따른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은 완수된 것"이라고 말했다.
NHK는 또 "일본에서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의 조속한 철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출연금의 성격이 배상금이 아니라 '치유금'에 맞춰진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교도통신은 "과거 한국 정부의 청구권이 완전히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고려해 위안부 출연금이 배상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양국 정부가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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