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향기] 가장 뜨거운 말, 전민 시인의 시 '엄마'

  • 등록 2025.06.18 20: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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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깊고 뜨거운 이름, 엄마…모성의 본능, 침묵의 사랑을 노래하다"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모성의 본능을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담아낸 전민 시인의 시 '엄마'가 독자들의 깊은 울림을 자아내고 있다.

화마 속에서도 병아리를 품고 끝내 자리를 떠나지 않은 어미 닭의 숭고함은 곧 '엄마'라는 존재의 상징이자, 인간을 포함한 생명의 본능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사랑의 원형'으로 자리매김한다.

시인은 짧은 시 한 편을 통해 '엄마'라는 단어만으로도 깊은 감정의 파동을 불러일으키며, 이 말의 무게와 울림을 새삼 되새기게 한다. [편집자 주]

엄마

- 전민 시인

화재에 휩싸인 닭장에서
수탉들은 다 빠져나갔는데
병아리를 품속에 꼭 껴안은 채
어미 닭만 까맣게 모두 타 죽었다

사람이나 동물나라에서도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는 말
나직이 말하며 듣기만 해도
가슴이 물컹해지는 엄마, 어머니!


- 서울지하철역 스크린 안전 도어 게시 시에서

Mother

- Jeon Min / Kim In-young

Out of the henhouse caught in fire
All the roosters escaped,
But hens remained, holding baby chicks
In their bosom—until they were all burnt to death.

For both humans and animals alike,
The word that burns the hottest—
Even softly spoken,
It chokes the heart: Mother!


■ 감상과 해설 / 장건섭 시인(미래일보 편집국장)

"불길 속에서 피어난 사랑의 시"

한 편의 시가 이토록 짧고 단순한 문장으로 인간의 심연을 건드릴 수 있을까. 전민 시인의 시 '엄마'는 단 네 줄씩 두 연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여운은 오랫동안 가슴 깊은 곳에 머문다.

시의 첫 장면은 참혹한 화재 현장이다.

"화재에 휩싸인 닭장에서
수탉들은 다 빠져나갔는데
병아리를 품속에 꼭 껴안은 채
어미 닭만 까맣게 모두 타 죽었다"

생존 본능에 충실한 수탉들은 모두 도망친 닭장. 그러나 유일하게 빠져나오지 않은 어미 닭은 병아리들을 품에 안은 채, 끝내 불길 속에서 까맣게 타 죽는다.

이 장면은 시각적으로도 강렬하지만, 그보다 더 무게 있게 다가오는 것은 그 안에 깃든 '모성'의 절대적 희생이다. 말하지 않아도, 눈물 흘리지 않아도, 어미 닭은 오로지 자신의 몸으로 새끼를 품는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침묵의 사랑은 인간의 언어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본능적이고 원형적인 사랑이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생명의 본질이 '사랑'이며, 그 사랑의 본질은 '나눔'과 '희생'임을 강렬하게 증언한다.

둘째 연에서 시인은 그 모정을 '언어'로 다시 불러낸다.

"사람이나 동물나라에서도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는 말
나직이 말하며 듣기만 해도
가슴이 물컹해지는 엄마, 어머니!"


이 연은 논리보다는 감각과 정서의 흐름에 따라 전개된다.

인간과 동물을 넘어 모든 생명에게 ‘엄마’는 가장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이름이다. 시인은 '엄마'라는 말을 "나직이 말하며 듣기만 해도 가슴이 물컹해지는" 감정으로 표현함으로써, 이 단어가 지닌 정서적 울림과 무게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특히 "가슴이 물컹해지는"이라는 표현은 이 시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아프다', '울컥한다', '저리다'와 같은 감정의 언어를 넘어, 신체적 감각으로 직결되는 이 표현은 누구나 기억 속에 간직한 사랑의 순간을 되살린다.

전민 시인은 이 시를 통해 단순히 '엄마'라는 존재를 찬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 시를 통해 모성이라는 생명의 본질적 사랑, 존재의 원형으로서의 어머니, 그리고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올 수 있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이는 단순한 모성애에 대한 헌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기원과 사랑의 본질에 대한 시적 성찰이다.

■ 맺으며

전민 시인의 '엄마'는 많은 말을 하지 않고도 우리를 울리는 시다. 짧은 구절마다 우리가 살아오며 놓치거나 외면했던 사랑의 장면들이 스며 있다. 어떤 시는 길고 복잡한 서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시처럼 단 하나의 이름 ― '엄마'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인간이 된다.  그리고 다시금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그 이름을 다시 불러본다. "엄마…"


■ 전민 시인

전민(Jeon Min, 본명 전병기) 시인은 1985년 <시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생명과 모성, 고향과 자연을 주제로 깊이 있는 서정시를 써오며 한국 현대시의 한 축을 지켜왔다.

국제계관시인연합 한국본부 이사장이자, 사단법인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호서문학회 명예회장을 역임했고, 사단법인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그의 대표 시집으로는 <소원의 종> 외 다수가 있으며, 국내외 다수의 문학 포럼과 시낭송 행사에서 작품을 발표하며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민 시인의 시 세계는 단순한 감정의 표출을 넘어, 생명의 본질과 인간 존재의 뿌리를 탐구하는 깊은 성찰의 서정으로 특징지어진다.

특히 모성과 희생, 그리고 자연을 바라보는 눈길은 독자에게 진한 감동을 전하며, 우리가 잊고 살았던 사랑과 인간성에 대한 회복을 제안한다.

i24@daum.net
장건섭 기자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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