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 장건섭 기자 = 삶의 길 위에서 불현듯 발이 멈추는 순간이 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고통의 순간, 그러나 그 시간을 어떻게 건너는가에 따라 삶은 또 다른 빛을 가진다. 시인 김인덕에게 그 빛은 '시(詩)'였다.
"삶이 나를 멈추게 했지만, 시가 다시 나를 걷게 했다." 김인덕 시인의 첫 시집 <느낌표와 쉼표 사이>(가온출판사)가 독자들에게 따뜻한 울림을 전한다.
김인덕 시인은 1995년 <창조문학>을 통해 등단하며 시단에 이름을 올렸다. 감각과 언어의 섬세한 결을 빚어내던 그의 문학적 여정은 2003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깊은 단절을 맞이했다. 중환자실과 병상을 오가며 사선을 헤매야 했고, 이후 삶의 한복판에서 ‘장애’라는 이름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의 몸은 멈췄지만, 마음은 멈추지 않았다. 고통의 자리에서도 그는 언어를 붙들었고, 언어는 그를 다시 일어서게 한 힘이 되었다. <느낌표와 쉼표 사이>는 그 멈춤의 시간과 다시 걷기 시작한 발걸음 사이에서 길어 올린 생의 기록이다.
이번 시집은 총 78편의 시로 엮였다. 일상의 단순한 풍경에서부터 상처의 기억, 자연의 섬세한 감각까지 담겨 있으며, 화려한 장식보다는 절제된 언어 속에서 울림을 만들어낸다.
문학평론가 이오장은 해설에서 "이 시집은 제목처럼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 쉼표와 다시 시작하는 느낌표 사이에 서 있는 시인의 고백"이라며, "특히 '장독대', '잔등', '억새꽃', '기억의 먼지', '바닥은 항상' 등의 작품은 상처 위를 조용히 스쳐 지나가며 그 자체로 치유의 숨결을 전한다"고 평가했다.
김인덕의 시는 거창한 서사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의 작은 조각들을 붙잡아 삶의 의미를 되묻는다. 억새꽃이 바람 앞에 흔들리되 꺾이지 않듯, 장독대가 세월의 풍상을 버텨내듯, 그의 시는 상처의 무게를 견디며 다시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의지를 보여준다.
김인덕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멈춤이 때로는 무너짐이 말보다 더 많은 말을 전해온다"며 "느낌표와 쉼표 사이에서 오래 머물렀다. 멈추고 싶은 순간엔 이유가 있어 말 대신 시가 필요했다"고 고백했다.
이 고백은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열쇠이자, 독자들에게 전하는 진실한 위로다. 그의 시는 단순한 자기 고백을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멈춤’ 앞에 놓이는 안부이자 격려의 손길이다.
김인덕 시인은 오랜 문학적 열정과 꾸준한 창작을 이어온 시인이다. 한국문인협회와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한국문학신문 문학상 시 부문 최우수상, 전국장애인문학상 대상, 제10회 K-AB특별초대전 디카시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삶의 큰 고비였던 교통사고와 그로 인한 장애는 그에게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시의 본질에 다가서게 한 계기였다. 언어는 그의 치유였고, 시는 그의 두 번째 삶이었다. <느낌표와 쉼표 사이>는 그 세월의 궤적을 집약한 문학적 결실이자, 앞으로 이어질 창작 여정의 시작점이다.

멈춤과 시작 사이, 우리 모두의 이야기
김인덕의 시집은 단지 한 개인의 회복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멈춤’과 ‘다시 시작’의 이야기다. 독자는 그의 시편 속에서 자신의 상처를 발견하고, 또 그 상처를 견디는 힘을 얻는다.
삶이 무너져 내릴 때, 쉼표를 찍고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 다시 느낌표를 찍으며 일어설 수 있다는 것. <느낌표와 쉼표 사이>는 그 단순하면서도 깊은 진리를 담담하게 전한다.
교통사고라는 멈춤의 시간 속에서도 시를 놓지 않았던 시인 김인덕. 그의 첫 시집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담담하지만 분명한 빛으로 다가와 삶의 방향을 재확인하게 한다. 그것은 단순한 시집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믿음과 언어의 힘에 대한 증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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