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에 깔려도 사라지지 않는 빛, 故 창운 김용재 박사 시비 제막… 학문과 시로 한국문학의 지평을 넓히다

  • 등록 2026.02.25 23:3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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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월 31일 오후 2시, 대전테미문학관 실내·외 공간에서 거행 예정
문학과 민주정신을 기리는 기념비적 시비… "바퀴는 돌아가지만, 햇살도 어둠도 사라지지 않는다"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영문학자이자 시인이며 제36대 사단법인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을 지낸 故 창운 김용재 박사(1944~2024)의 시비 제막식이 오는 3월 31일 오후 2시, 대전테미문학관 실내·외 공간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이번 행사는 고인의 문학적·학문적 업적을 기리고, 그의 시 정신을 지역과 세계 문학사 속에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뜻깊은 자리로 그가 남긴 언어가 이제 돌에 새겨져 시간 속에 선다.

이날 행사는 사전 발표와 추모 공연, 기념식, 제막 및 헌화, 새김시 낭독 순으로 약 90분간 진행되며, 식후에는 문인과 유가족, 지역 인사들이 함께하는 만찬이 마련된다. 공직선거법 관련 규정에 따라 행사는 자체 진행된다.

이번 제막식은 한 문인의 업적을 기리는 의례를 넘어, 한국문학의 국제적 확장과 지역 문학사의 맥을 함께 조명하는 자리로 의미를 더한다.

등단 이후 50년, 시와 학문의 두 날개

김용재 박사는 1974년 월간 <시문학> 추천으로 등단한 이후 첫 시집 <겨울산책>, <큰 꿈은 일어나 날개를 달고> 등 다수의 시집을 펴냈다. 시선집 12권, 영역·영문시집 5권, 산문집 등 4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 활동을 통해 한국 현대시의 지평을 넓혔다.

그의 시는 간결한 언어 속에 존재론적 성찰을 담는다. 자연과 인간, 시간과 역사, 빛과 어둠을 교차시키며 삶의 본질을 묻는다. 절제된 표현과 균형 잡힌 사유는 그의 문학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힘이었다.

대전 출생으로 충남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고인은 대전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교수협의회 회장, 문과대학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학문적 성취와 교육 행정의 책임을 동시에 수행하며 후학 양성과 학문 공동체 발전에 기여했다.

문단 활동 또한 활발했다. 고(故) 창운 김용재 박사는 대전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교무처장, 문과대학장,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사단법인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대전문인협회 회장, 호서문학회장, 대전문인총연합회 회장, 한국시문학문인회 회장, 국제계관시인연합한국본부 이사장,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회장 등 다양한 문학단체에서 활동하며 후학 양성과 지역 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2021년 3월부터는 사단법인 국제PEN한국본부 제36대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세계한글작가대회 등을 성공적으로 개최,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실천했다.

특히 2018년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재임 당시에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베트남작가협회(회장 Hữu Thỉnh)와 국내 문학단체 최초로 문학교류 MOU를 체결하였고, 양국 시인의 시집을 출간하고 시낭송회와 세미나를 함께 열며 한-베트남 국제문학교류의 물꼬를 텄다.

2019년에는 베트남 주요 시인 13명을 초청해 부산에서 문학 심포지엄을 열었고,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에 재임 당시에도 2022년과 2023년 국제PEN한국본부 주최 '세계한글작가대회'에서는 베트남을 주빈국으로 초청하는 등 국제문학 협력에 앞장섰다.

한국현대시인상(2003년 제26회)을 비롯해 국제계관시인상 등 국내외 다수의 상은 그의 작품성과 공로를 증명한다.

시비에 새겨진 '순환 형식', 그의 시학을 압축하다

이번 시비에 새겨질 작품은 '순환 형식'이다.

바퀴에 깔려도 햇살은 죽지 않는다
어둠이 다가서면 밀려갈 뿐이다
바퀴에 깔려도 어둠은 죽지 않는다
햇살이 다가오면 밀려갈 뿐이다


– 창운 김용재 시인, '순환 형식' 전문

이 네 행은 김용재 시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햇살과 어둠이라는 상반된 이미지가 교차하지만, 시인은 어느 한쪽의 승리를 선언하지 않는다.

존재는 소멸이 아니라 이동이며, 역사는 파괴가 아니라 순환이라는 인식이 이 짧은 시 속에 응축돼 있다.

'바퀴'는 시간과 문명, 혹은 억압과 시련의 은유로 읽힌다. 그러나 그 어떤 힘도 빛과 어둠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 이는 허무가 아니라 균형의 철학이며, 절망 속에서도 존재의 지속을 믿는 태도다.

형식 또한 순환적이다. 1·3행, 2·4행이 대응하며 구조 자체가 순환을 구현한다. 내용과 형식의 일치, 간결한 문장 속의 깊은 사유는 김용재 시의 미학적 특질을 선명히 드러낸다.

문학은 국경을 넘고, 돌은 시간을 견딘다

김용재 시인은 한국어로 시를 쓰면서도 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 두었다. 영문학자로서의 배경은 그의 작품에 보편적 감각을 더했고, 번역과 국제 교류 활동은 한국 시의 지평을 넓혔다.

그가 몸담았던 사단법인 국제PEN한국본부 활동은 문학의 자유와 국제 연대를 강조하는 실천의 장이었다. 그는 '행동하는 시인'이자 '현장형 문학인'으로 평가받는다.

이제 그의 시는 대전테미문학관 야외에 세워진 시비를 통해 새로운 독자를 만난다. 돌에 새겨진 한 편의 시는 바람과 햇살을 견디며 또 다른 세대와 조우할 것이다.

주요 인사 대회사 및 축사 예정

시비 제막 추진위원장을 맡은 국제계관시인연합 한국본부 이사장 전민 시인은 대회사에서 "김용재 박사는 학문과 시를 통해 한국문학의 국제적 위상을 높인 분"이라며 "이번 시비 건립은 그의 문학 정신을 후대에 전하는 상징적 작업이 될 것"이라고 밝힐 예정이다.

유가족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고인의 삶과 문학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할 계획이다.

또한 사단법인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 심상옥 시인과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김호운 소설가도 축사를 통해 고인의 국제적 활동과 문학적 업적을 기릴 예정이다.

문학은 읽히는 한 살아 있다. 바퀴는 계속 돌아가겠지만, 햇살도 어둠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듯, 김용재라는 이름 또한 한국문학의 순환 속에서 오래도록 밀려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시비 제막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약속이다. 문학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마지막 언어임을, 그리고 그 언어가 시간을 넘어 지속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로 한국문학의 지속성과 국제적 확장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바퀴는 돌아가지만, 햇살도 어둠도 사라지지 않는다. 김용재 박사의 언어 역시 시간의 순환 속에서 오래도록 밀려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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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섭 기자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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