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피천득문학상 발표… 세 갈래 문학의 깊이를 증명하다

  • 등록 2026.04.30 23:2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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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번역… 각기 다른 언어, 하나의 품격으로 수렴
노유섭·손광성·이소영, 장르별 문학 성취 조명
5월 29일 금아 피천득 기념관서 시상식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제1회 피천득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금아피천득선생기념사업회(회장 정정호 중앙대 명예교수)는 시 부문에 노유섭, 수필 부문에 손광성, 번역 부문에 이소영을 각각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문학상은 한국 수필문학의 정수를 보여준 故 금아 피천득(皮千得, 1910년 5월 29일~2007년 5월 25일) 선생의 문학 정신을 기리고, 다양한 장르에서 문학적 성취를 이룬 작가들을 격려하기 위해 제정됐다.

심사위원장은 전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지낸 유자효 시인이 맡았으며, 부문별로 시 부문에 유자효·구명숙, 수필 부문에 박양근·민명자, 번역 부문에 이형진·조성은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심사위원회는 "각 부문 수상자들은 작품성과 문학적 완성도, 그리고 해당 장르에서의 기여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선정했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오는 5월 29일(금) 오후 3시, 서울 잠실 금아 피천득 기념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편 제1회 피천득문학상 수상자들이 발표되면서, 각 부문 수상자들의 작품 세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시, 수필, 번역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에서 활동해 온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언어의 깊이를 탐구해 왔다는 점에서 공통된 평가를 받고 있다.


◇ 시 부문 노유섭 - 존재의 결을 파고드는 서정

시 부문 수상자인 노유섭의 작품 세계는 절제된 언어 속에서 존재의 본질을 응시하는 데 특징이 있다.

그의 시는 격렬한 감정의 분출보다는, 일상의 미세한 흔들림과 내면의 결을 포착하는 데 집중한다. 사소한 장면에서 출발한 시적 사유는 점차 확장되며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특히 이미지 중심의 간결한 표현과 여백의 활용은 독자로 하여금 시를 '읽는 것'을 넘어 '머무르게 하는 힘'을 지닌다. 이는 과장 없이 깊이를 확보하는 한국 서정시의 한 흐름을 계승하고 있다는 평가다.


◇ 수필 부문 손광성 - 삶을 견디는 문장의 온기

수필 부문 수상자인 손광성은 일상 속에서 길어 올린 체험을 통해 인간과 삶에 대한 성찰을 풀어내는 작가다.

그의 글은 화려한 수사보다 진솔한 체험에 기반을 두며, 독자에게 공감과 위로를 동시에 건넨다. 특히 삶의 고단함과 인간 관계의 복잡성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방식은 수필 문학의 본령을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의 문장은 '버텨낸 시간'에서 비롯된 신뢰를 지닌다. 이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삶을 해석하는 언어로 확장되는 지점이다.


◇ 번역 부문 이소영 - 언어와 문화 사이의 다리

번역 부문 수상자인 이소영은 원작의 정서를 충실히 전달하면서도 한국어의 미감을 살리는 번역으로 주목받아 왔다.

번역은 단순한 언어 전환이 아니라 문화와 감각을 옮기는 작업이다. 이소영의 번역은 원문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는 동시에, 한국어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리듬과 호흡을 구현한다.

특히 원작의 뉘앙스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한국어의 문학적 완성도를 확보하는 균형 감각은 번역 문학의 중요한 성취로 평가된다.

◇ 서로 다른 길, 하나의 방향

세 수상자의 작품 세계는 장르적으로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절제된 언어'와 '깊은 사유'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만난다. 이는 피천득 문학이 지향했던 단정한 문장과 품격 있는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이번 수상은 단순한 개인의 성취를 넘어, 한국 문학이 여전히 ‘깊이의 언어’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읽힌다.

문학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작업이다. 노유섭의 시가 존재를 묻고, 손광성의 수필이 삶을 견디며, 이소영의 번역이 언어를 건너는 순간, 그 모든 길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좋은 문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1회 피천득문학상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응답으로 남는다.

◇ 피천득 문학이 우리에게 남긴 것 … 맑고 단정한 언어, 한국 수필문학의 기준이 되다

문학이 거창한 사유나 치열한 시대의식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한 줄의 단정한 문장, 한 사람의 품격 있는 시선이 오히려 더 오래 남는다. 피천득의 문학이 바로 그렇다.

그의 글은 크지 않다. 그러나 깊다.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오래 맑다. 우리가 그의 수필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어떤 ‘문장의 힘’ 이전에 ‘사람의 결’이다. 그래서 그의 문학은 단순한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삶의 태도로 읽힌다.

◇ 절제의 미학, 단정한 언어의 윤리

피천득 문학의 핵심은 절제다. 그는 감정을 과장하지 않았고, 생각을 과시하지 않았다. 대신 가장 적절한 단어, 가장 필요한 문장만을 남겼다.

그의 대표작 <인연>은 이러한 미학을 가장 잘 보여준다. 짧은 글 속에서 인간 관계의 본질을 건드리면서도, 어떤 단정한 거리와 여백을 유지한다.

이 절제는 단순한 문체의 특징이 아니라 윤리의 문제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말하지 않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태도. 그것이 그의 문학을 고전의 자리로 올려놓았다.

◇ 일상의 발견, 사소함의 숭고

피천득의 글은 거대한 사건을 다루지 않는다. 대신 일상 속의 작고 사소한 순간들을 길어 올린다. 차 한 잔, 계절의 변화, 우연한 만남 같은 장면들이 그의 문장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얻는다.

이는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는 사물을 소비하지 않고, 오래 바라본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의미를 건져 올린다.

이 점에서 그의 문학은 현대 독자에게 더욱 절실하다. 속도가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느리게 보고 깊이 생각하는 능력은 점점 희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 품격의 문학, 삶의 태도로서의 글쓰기

피천득의 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품격’이다. 그것은 화려함이나 권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낮추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의 문장은 타인을 배려하고, 세계를 존중한다. 감정을 드러내되 넘치지 않고, 사유를 펼치되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글은 읽는 이를 설득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 문학이 잃어버리기 쉬운 덕목이기도 하다. 강한 주장과 빠른 반응이 요구되는 시대 속에서, 그의 문학은 ‘천천히 생각하는 힘’을 일깨운다.

◇ 지금, 왜 피천득인가

제1회 피천득문학상의 제정은 단순한 기념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문학이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질문이기도 하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더 자극적으로 흐르는 문학의 흐름 속에서 피천득의 문학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좋은 문장은 결국 좋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피천득의 문학은 크지 않지만 깊고,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그의 글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어떤 문장을 쓰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있는가.

문학이란 결국 언어로 완성되는 인격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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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섭 기자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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