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최창일 시인 '올빼미의 눈, 권력의 어둠을 깨우는 힘'

  • 등록 2025.04.20 20:4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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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말하는 사람보다, 진실을 가리는 사람이 더 많은 이 구조는 올빼미의 궁궐과 다른 바 없다"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영화 '올빼미'는 조선 시대 궁중에서 벌어진 미스터리 사건을 펼쳐지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단순한 사실 사극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진실을 본 자와 외면한 자, 그리고 진실을 침묵하게 만드는 권력의 역학을 통해, 오늘날 정치와 사회의 거울로 다가온다. 특히 '말할 수 없는 진실'을 둘러싼 불안과 침묵, 시각장애인의 눈을 통해 드러나는 ‘역설적인 시선’은 현 정치 현실과도 절묘하게 겹쳐진다.

영화 속 주인공 경수는 앞을 보지 못하는 침술사다. 육체의 눈은 감겨 있으나 정신의 눈, 영혼의 눈은 열려 있다. 그는 왕세자의 죽음을 목격했지만, 말할 수 없다. 신분의 벽, 권력의 공포,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시각장애인이라는 한계가 그의 입을 막는다.

진실을 둘러싼 싸움, 특히 권력형 부패 사건이나 선거결과를 부정으로 내모는 엉뚱 시선도 은유한다. 사건의 진실 공방에서 영화는 ‘경수’의 시선을 빌린다. 내부고발자, 양심선언자, 그리고 국민 개개인이 그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쉽게 침묵 당하거나 조롱받는다. 혹은 자발적 침묵으로 자신을 지운다. 침묵은 생존의 전략이자, 시대의 비극이다. 침묵이 부르는 역사의 참상을 올빼미는 흥미진진하게 고발한다.

영화는 결론을 좋아한다. 경수는 결국 자신이 본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결단을 내린다. 그의 몸은 떨리고, 말은 더듬지만, 그 고백은 영화 전체의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진실을 입으로 뱉는 순간, 그는 더는 시각장애인이 아니다. 권력보다 위대한 ‘양심’이라는 시력을 회복한다.

이는 곧 대한민국 정치의 양심 고백 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사법 농단을 폭로한 법원 내부자, 검찰개혁을 외치며 불이익을 감수한 검사들, 또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가 사회적 낙인을 감수한 민간인들. 이들은 진실을 말함으로써 사회적 맹목을 깨우려 했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진실을 본 자의 운명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그 고통은 단지 외부의 탄압이 아니라, 대중의 무관심과 조롱, 그리고 제도권의 왜곡된 프레임 속에서 더 깊어진다.

올빼미의 가장 무서운 적은 왕도 아니고 의녀도 아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궁 전체를 감싼 침묵의 기류'다. 진실을 알고 있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침묵은 체제의 유지이자, 생존의 기술이다.

이런 분위기는 현실 정치와 언론의 구조적 침묵과 닮아있다. 검찰과 정치권, 언론이 '기득권의 삼각 동맹'처럼 진실을 통제하고, 언론은 이미 공론장의 기능을 상실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보다, 진실을 가리는 사람이 더 많은 이 구조는 올빼미의 궁궐과 다른 바 없다.

권력자는 말한다.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았구나."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거대한 진실을 말하면, 곧 묻는다. "그걸 왜 보았느냐? 왜 말했느냐?"

진실은 금기이며, 금기를 넘은 자는 탄압받는다. 올빼미는 결말에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진실은 밝혀졌는가? 경수는 자신의 말을 믿게 했는가? 혹은 그의 외침은 또 하나의 침묵으로 흡수됐는가? 가장 무서운 적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이다.

‘무관심’ 하려는 태도다. 진실을 지키려는 한, 희망은 엄동설한에서도 숨 쉰다. 하지만 대중이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진실을 말한 자’를 미워한다면? 그 사회는 눈을 떴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거대한 시각장애인’이 되어버린다.

그것은 '본 사람'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믿으려는 사람', '알아보려는 사람', 그리고 '행동하려는 사람' 안에만 진실은 살아남는다.

나는 누구인가. 경수인가, 권력자인가, 침묵하는 내관인가, 혹은 스스로 맹목을 택한 백성인가. 올빼미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역사에 던지는 날카로운 은유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자, 혹은 진실을 들어도 외면하는 자. 그들 모두가 진실의 공범이 될 수 있다.

눈먼 자의 도시에도 희망은 걷거나 앉아있다. 시각장애인 경수도 결국은 외쳤다. 누군가는 그 외침을 들었다. 우리도 누군가의 침묵 너머 외침을 듣고 지켜야 할 때다. 그 외침이야말로, 깨어남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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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섭 기자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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