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이 그렇다. 역사적으로 민족이든 개인이든 시련을 겪고 난 후에 크게 성장했다. 저절로 주어진 행운이 아니라 화(禍)를 복(福)으로 바꾼 복이 진짜 복인 것이다. 조개가 여린 살을 괴롭히는 모래알을 체액으로 감싸 진주를 만들듯 살아있는 것의 가치는 불행에서 교훈을 얻고 그 교훈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데 있다.
그런 점에서 연평도 사건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우선 더 큰 전쟁으로 확대되지 않아 다행이다. 바다와 육지에서 우리 군의 대대적인 무력시위에도 불구하고 당초 협박과 달리 북이 더 이상의 도발을 하지 않고 자숙(?)한 것이 다행이다. 그것은 우리가 전쟁억지력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전쟁억지력이란 북이 ‘전쟁 즉 자멸’이라는 인식을 할 수 있도록 군사적 우위를 보여주는데서 나온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확전을 우려해 북이 요구대로 군사훈련을 중단했더라면 지금쯤 우리 군을 비롯한 국민의 마음이 얼마나 찜찜할까? 그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우리 군의 대응 조치는 적절했고 그만하기 다행인 사건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연평도 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건 발생 시점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사건 자체가 정쟁의 대상이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야당과 재야에서는 대통령의 국군통수권자로서 정당방위 차원의 조치들에 대해서까지 시비를 걸었다. 심지어 MB의 대북정책이 연평도 사건을 유발했다는 피해자 책임론까지 나왔다. 이것이 얼마나 망발인지 부처님의 비유법 하나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독화살을 맞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화살을 뽑아내야 한다. 그런 다음에 독이 전신에 퍼지지 않도록 응급조치를 해야 할 것이다. 누가 왜 쏘았는가? 활을 쏜 자를 응징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비유를 연평도 사건에 적용해 보면 어떤가? 응급조치 속에는 제2, 제3의 화살이 날아오지 않도록 반격도 포함된다. 반격은 최선의 방어이기 때문이다. 이 때 반격은 정당방위에 해당 한다. 여기에는 도덕성은 물론이고 전략적 판단도 개입될 틈이 없다. 모기에 물리면 자동적으로 손이 가는 조건반사에 무슨 이유나 판단이 개입된 여지가 있겠는가.
매사는 순서다. 순서가 틀리면 모두 엉망이 돼버린다. 우리 영토 안에 적의 포탄이 날아와 평화로운 마을이 쑥대밭이 됐고 민간인이 죽고 다쳤다. 이런 정황에서 피해자 책임론을 들먹이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필경 정신 나간 사람이다. 이런 논란은 사태가 완전히 수습되고 유사 사태의 재발방지 장치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후에 제기해도 늦지 않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무역센터가 비행기 테러로 폭삭 주저앉았다. 미국의 심장부가 적에게 유린된 경천동지 할 이 사건으로 누구도 부시 대통령의 인책론을 들먹인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미 대륙은 애국심 하나로 뭉쳤고 이 애국심을 기반으로 부시 대통령은 미국의 패권을 더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우리는에게 귀감이 되는 사례다.
차제에 확실히 해둘 것이 있다. 전 군에 '진돗개' 발령이 내려진 비상사태하에서 국군통수 권자의 국토방위를 위한 군 지휘권에 해당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통치권역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 기간에 정쟁을 중단하지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국군 통수권에 해당하는 통치행위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정쟁의 대상으로 삼지 말자는 것이다. 다만 대통령은 자신의 통치행위에 대해 차기 선거와 역사의 평가를 통해 무한책임을 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