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인터뷰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과 답하는 사람이 함께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시대 기록이다. 손석희와 신해철의 만남은 단순한 방송 출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론과 예술, 이성과 감성, 질문과 사유가 서로를 비추며 한국 사회의 금기와 상식을 흔들었던 지성의 대화였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시대를 향한 문제의식만큼은 누구보다 뜨거웠던 두 사람. 그들의 대화는 오늘날에도 언론의 품격과 공론장의 역할, 그리고 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책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대한민국 언론사와 대중문화사를 통틀어 가장 강렬하면서도 품격 있는 만남을 꼽으라면, 언론인 손석희와 음악가 신해철의 조우를 빼놓기 어렵다. 한 사람은 냉철한 이성과 송곳 같은 질문으로 한국 언론의 중심에 선 저널리스트였고, 다른 한 사람은 뜨거운 열정과 거침없는 언어로 청춘의 해방구를 자처했던 음악가였다. 얼핏 서로 다른 세계에 서 있는 듯 보였지만,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시대를 향한 문제의식과 인간에 대한 성찰이라는 공통분모 위에서 깊은 교감을 이어갔다. 많은 사람들은 두 사람의 만남을 '스타 앵커와 스타 음악가의 인터뷰' 정도로 기억한다. 그러나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2026년 6월, 멕시코시티 아스테카 스타디움의 밤하늘은 전 세계에서 모여든 축구 팬들의 함성과 열기로 들끓고 있었다. 지구촌 최대 축제인 북중미 월드컵 개막식 무대. 거장 안드레아 보첼리의 장엄한 목소리가 경기장을 감싼 뒤, 한 동양인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무대 중앙에 섰다. 클래식과 EDM, 힙합과 K-팝이 어우러진 공식 주제가 'DNA'의 하이라이트 순간, 경기장을 가득 채운 것은 다름 아닌 한국어였다. "또 넘어져도 나, 또다시 일어나." 전 세계 수억 명의 시청자들에게 전달된 이 한 줄은 단순한 응원가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 노래를 부른 음악가 이재(EJAE) 자신의 삶이었고, K-팝이라는 거대한 산업의 이면에서 묵묵히 버텨온 수많은 창작자들을 향한 헌사였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BTS 정국이 'Dreamers' 세계를 매료시켰다면, 2026년의 이재는 가장 한국적인 언어와 정서를 앞세워 또 다른 역사를 써 내려갔다.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인 이재를 바라보면 화려함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그의 출발점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연습생 시절의 고독한 시간이었다. 거대 기획사의 시스템 속
명함 한 장이 사람을 설명하는 시대다. 이름보다 직함이 먼저 읽히고, 경력보다 호칭이 먼저 평가받는다. 교수, 박사, 총장, 원장, 석좌교수, 특임교수, 겸임교수, 명예교수…. 어느새 우리 사회는 직함의 시대를 넘어 직함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직함이 많아질수록 그 의미는 희미해지고, 권위가 남발될수록 신뢰는 약해진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직함이 아니라 직함에 걸맞은 책임과 품격이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본지 편집국장) = 교수와 박사가 넘쳐나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가. 명함을 주고받는 일이 많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개를 갸웃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교수, 박사, 총장, 원장, 석좌교수, 특임교수, 겸임교수, 명예교수…. 어떤 명함에는 이름보다 직함이 더 크게 적혀 있고, 직함만 여러 줄 나열된 경우도 적지 않다. 그 화려함에 압도되다가도 문득 궁금해진다. 과연 이 직함들은 모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원래 교수는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교원을 뜻한다. 박사는 엄격한 학문적 과정을 거쳐 취득한 최고 학위다. 하나는 직위이고 하나는 학위다. 그러나
정치의 가치는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느냐로 평가되지 않는다. 오히려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추고 필요한 곳으로 향할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영국의 전 총리 알렉 더글러스 흄이 보여준 '아름다운 하향(下向)'의 정치철학은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최근 목포시의원으로 당선된 손혜원 전 국회의원의 행보 역시 이러한 정치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알렉 더글러스 흄(Sir Alec Douglas-Home, 1903~1995)은 영국의 총리(수상)라는 국가 최고 권력의 정점에 올랐던 독특한 인물이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국가가 그의 외교적 역량을 필요로 하자, 그는 주저 없이 사실상 한 단계 아래의 직책인 외무장관직을 수락했다. 이는 세계 정치사에서도 드문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사람이 다시 아래로 내려가 실무 책임을 맡는다는 것은 철저한 자기 절제와 국가를 향한 순수한 헌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흄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자리에 앉아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였다. 지위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역할의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한 명쯤의 '파수꾼' 세우고 살아간다. 부모일 수도 있고, 스승이나 사회적 지도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파수꾼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혼란과 절망 앞에 선다. 세계적인 작가 하퍼 리의 소설 <파수꾼>은 바로 그 순간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정의의 상징이었던 아버지의 몰락 앞에서 한 인간이 자신의 양심을 발견해 가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성숙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세계 문학계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앵무새 죽이기>로 전 세계인의 추앙을 받았던 하퍼 리(Harper Lee, 1926~2016)의 '잃어버린 초고', <파수꾼>이 반세기 만에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출간과 동시에 거대한 논쟁의 중심에 섰다. 우리가 정의의 화신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애티커스 핀치가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모임에 참석하는 노인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수꾼>은 단순한 '실망스러운 후속작'이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은 『앵무새 죽이기』가 남긴 순수한 도덕주의의 균열을 메우며, 한 개인이 어떻게 시대의 광기 속에서 자신의 양심을 독립시키는가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현대 표준 피아노의 건반은 총 88개다. 52개의 흰 건반과 36개의 검은 건반으로 구성된 이 악기는 오늘날 클래식과 재즈, 영화음악과 대중음악까지 아우르며 인간 감성의 가장 정교한 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 88개의 건반이 오늘처럼 당연한 기준이 되기까지는 약 300년에 걸친 기술 혁신과 예술적 갈망의 시간이 존재했다. 피아노의 역사는 단순한 악기 발전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사의 기록이다. 피아노 이전 건반 악기의 중심에는 하프시코드(쳄발로)가 있었다. 건반을 누르면 장치가 줄을 '뜯는' 방식이었던 하프시코드는 화려하고 선명한 음색을 지녔지만 결정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다. 연주자가 건반을 세게 누르든 약하게 누르든 음량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즉, 인간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표현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1700년경, 이탈리아 피렌체의 악기 제작자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는 음악사의 흐름을 바꾸는 혁신을 만들어낸다. 그는 줄을 뜯는 대신 '해머로 때리는' 새로운 구조를 고안했다. 이것이 바로 피아노의 시초인 '그라비쳄발로 콜 피아노 에
거리의 테이크아웃 컵에서 시작된 사유가 인간의 사상과 사회의 타락으로 확장된다. 최창일 시인은 커피 한 잔조차 정치와 상업의 계산 속에서 소비되고 버려지는 오늘의 현실을 통해, 물질적 쓰레기를 넘어선 '정신적 공해'의 위험성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디오게네스에서 칸트, 키르케고르와 플라톤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의 사유를 빌려 인간의 책임과 자기 성찰의 필요성을 강하게 묻고 있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구수한 커피가 어느 날 '탱크'로 둔갑해 거리의 쓰레기가 되어 휘젓고 다니고 있다.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자동차 바퀴에 치이며 도시의 미관을 해치는 이것들을 우리는 '쓰레기'라고 부른다. 그러나 쓰레기는 단순히 보기 싫은 시각적 불편함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공기를 더럽히고 토양을 오염시키며, 끝내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명백한 '공해(公害)'다. 물질 세계의 쓰레기가 환경을 파괴한다면, 정신적·사회적 세계의 쓰레기는 공동체의 근간을 흔든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대낮에 등불을 들고 아테네 거리를 헤매며 "사람을 찾고 있다"고 외쳤다. 수많은 인간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음에도 그가 정작 '인간다운 인간'을 찾지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억압의 시대마다 사람들은 끝내 '자유'라는 이름을 써 내려갔다. 시는 선언이 아니라 가장 조용하고 치열한 저항이었다. 1942년, 나치 점령 하의 파리. 인쇄소도, 출판사도, 말 한마디도 검열의 그물 아래 놓인 시절이었다. 폴 엘뤼아르(Paul Éluard, 1895~1952)는 그 어둠 속에서 단 하나의 낱말을 향해 시를 썼다. "자유". 그 시는 처음엔 지하에서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고, 이윽고 영국 RAF 비행기가 프랑스 상공을 날며 전단지로 뿌렸다. 점령된 땅에 씨앗처럼 흩뿌려진 시. 그것이 엘뤼아르의 '자유'였다. 시는 단순하다. 반복의 형식이다. 스물한 개의 연(聯)이 똑같은 구조로 이어진다. "내 학교 공책 위에 내 책상과 나무들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무엇 위에 그 이름을 쓰는가. 어린 시절의 기억 위에, 폐허 위에, 부재(不在)의 침묵 위에, 그리고 마침내 "내 삶을 되찾아" 온 한 낱말-자유-위에. 엘뤼아르는 연인에게 바치는 시처럼 그것을 썼다. 자유란 사랑받아야 할 이름, 불러야 비로소 존재하는 이름이라는 듯이. 그로부터 삼십팔 년 후, 지구 반대편의 봄날에 또 다른 이름들이 적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