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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있는 아침] 박이도 시인의 '목숨'

감상평/정신재(시인·평론가·국제PEN한국본부 이사)

목숨
- 박이도 시인(1938- )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남의 손에 이끌리어 다니는 강아지처럼
나는 남의 이야기에 나를 빼앗기고
손오공처럼 날아다니고 있었다

세상만사 낌새도 못 차리고
겨울 개구리 잠자듯
좁고 답답한 어둠 속에
허깨비처럼 살았구나
그때의 시간은 현실이었나, 꿈이었나
성경은 아브라함의 가계(家系)를 선포하고
영웅 신화들은 생명의 존엄을 선포한다
결코 철학적일 수 없는 목숨이어라.

■ 감상평

존재로서 살아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삶을 뒤돌아보니 '손오공처럼 날아다니'는 꿈을 꾸기도 하지만, 남의 눈치를 보며 살 때가 많았다. 남이 강남 간다 하니 따라 가고, 직장에서는 상사의 눈치를 보아야 했으며, 이웃 간에는 층간 소음이 안 나도록 신경을 썼다.

남이 자식들 잘 키우니 나도 키우고, 남이 여행 간다 하니 나도 가고 하는 식이다. 이와 같이 물신주의가 판치는 가운데 생존 경쟁을 하다 보니, '겨울 개구리 잠자듯/ 좁고 답답한 어둠 속에/ 허깨비처럼 살고' 말았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에는 인간의 권리를 향한 외침이 있었건만, 개인이 어느 정도 살 만하니까 어느덧 빈부의 차가 나타났고, 그래도 가족들과 살 집은 있어야겠기에 열심히 허리띠를 졸라맸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자녀들도 각기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떠나고, 지난날은 '현실이었나, 꿈이었나' 인생무상(人生無常)이다.

더 이상 현재는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 있지 않고, 순식간에 과거가 되어 버리고, 남는 것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성경이나 신화에서는 위대한 자를 알리지만, 개인에게는 언제나 평범한 일상이 남을 뿐이다.

그러나 '결코 철학적일 수 없는 목숨'이지만, 길거리를 활보하며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그러니 나의 존재를 들여다보는 사색의 편린들을 모아 보는 것이 어떨까. '목숨'이 있어 행복하다.

- 정신재(시인·평론가·국제PEN한국본부 이사)

■ 박이도 시인 약력

1938년 평북 선천에서 출생한 박이도(朴利道 ) 시인은 1946년 북한에서 월남해 1963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84년 경희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1980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2003년 경희대학교에서 정년퇴임했다.

1959년 자유신문 신춘문예에 시 '음성(音聲)',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황제'로 등단했으며, 시집 '회상의 숲', '북향(北鄕)', '폭설', '바람의 손끝이 되어', '불꽃놀이', '빛의 형상', '데자뷔' 등과 수필집 '선비는 갓을 벗지 않는다' 등 많은 시집과 수필집, 평론집 등을 출간하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해 왔다.

1962년 제1회 신인예술상 수상를 비롯해 '편운문학상', '기독교문화대상', '제2회 문덕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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