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시인에게 자연은 밥이다. 달은 반찬과 같은 재료다. 목월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는 유명한 시구를 선물했다. 목월은 "옥양목 같은 달밤이다/ 옥색 데님을 두르고/ 달놀이를 갔다"와 같은 시를 남겼다. 소월은 달을 사랑한 나머지 그의 호가 밝고 하얀‘흰 달’의 이미지를 담아 만들었다. 한용운은 '달을 보며'에서는 달을 님으로 비유하며, 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시를 만들었다. 달에 관한 시라면 이백을 뒷전에 둘 수 없다. 대표적으로 '파주문월(把酒問月)'에서 달은 "거울 같은 밝은 보름달"로 묘사한다. 선궁(仙宮)에 걸린 거울 같은 이미지를 담았다. 다른 시 '월하독작(月下獨酌)'에서 달이 시인에게는 영혼의 거울이자 확대된 자아로 묘사했다. '꽃 사이에 술 한 병 놓고,/ 벗 없이 혼자 마시노라./ 잔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니,/ 그림자 비추어 세 사람이 되었구나./ 달은 본래 술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는 그저 흉내만 내네./ 잠시 달을 벗하고 그림자를 거느리고,/ 이 봄을 마음껏 즐겨보세./ 내가 노래하니 달도 서성이고,/ 내가 춤추니 그림자도 어지럽구나./ 취하기 전엔 함께 즐기지만,/ 취하고 나면 각자 흩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나문희 배우가 유 퀴즈에 출연, '영원한 가객' 故 김광석(1964~1996)의 '서른 즈음에'를 불렀습니다. 공동 출연자인 김영옥 배우는 노래를 들으며 눈물에 감정을 흘렸습니다. 찡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기원전 322)가 말하는 '비극론' 장면이었습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론'은 얼핏 보기에는 무관해 보입니다. 깊이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詩學)에서 비극의 핵심 요소로 카타르시스(비참한 운명을 보고 간접 경험)를 강조합니다. 이는 관객이 연민과 공포를 경험함으로 감정 정화를 이루는 과정을 연결한다는 이론입니다. '서른 즈음에' 노래는 이와 유사한 효과를 불러일으킵니다. 노래는 청자(듣는 이)로 하여금 시간의 흐름과 청춘의 상실을 세포들에 전합니다. 동시에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꺼내 보입니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머물러 있는/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학인과 침침한 피맛골에서 소주 한 병을 마셨다. 세상살이가 힘들다 한다. 가슴을 맞대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서로 온기를 나누며 사는 세상이 아니라 푸념한다. 너무 답답하여 AI에게 우리 사회에 필요한 어른을 한 명 달라고 했다 한다. 그랬더니 AI가 "요즘 한국에 어른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 하드란다. 그러면 옛날에는 한국에 어른이 있었느냐 물었다. "옛날이야 어른이 많았지요. 김수환 추기경이나 구상 시인과 같은 사람이 종교계의 어른이요. 시인의 어른이 아니었소.." AI의 말을 듣고 보니 그 시절의 어른이 새삼 떠오른다. 김수환 추기경은 한국 천주교의 상징적 인물이다.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을 미친 성직자다. 추기경이 살던 시절은 지금의 혼란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대학가에는 연일 학생 시위가 있었다. 그러다가 시위대는 명동 성당으로 쫓겨가는 신세가 되었다. 엄혹한 시절의 경찰은 명동의 성당만은 성역으로 발을 넣지 않았다. 모두가 김수환 추기경이라는 시대의 어른 때문이라 하여도 무리는 아니다. 추기경은 1970~80년대는 군사독재 시기에 정권의 인권탄압을 비판하고 민주화 세력을 지원하는 일도 했다. 노동 사목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영상 너머에서 무엇을 찾을 것인가? 선명한 메시지를 만드는 힘, 영상력(映像力)에 있음을 영화는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 영상 너머의 고민을 담은 영화가 <하얼빈>이다. 영화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다룬 작품이다. 누아르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하얼빈>은 1908년 신아산 전투에서 안중근이 이끄는 독립군이 일본군과 벌인 전투로 시작된다. 1909년 하얼빈 의거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역사적 순간이 다루어진다. 누아르(Noir)는 프랑스어로 '검은색' 또는 '검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이 용어는 영화와 문학 분야에서 특정 장르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영화에서 누아르는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를 만든다. 범죄, 폭력, 사회적 부조리 등을 주제로도 널리 사용하는 기법이다. 누아르 영화의 뿌리는 1920년대와 1930년대 독일 표현주의 영화에서 찾을 수 있다. 본격적으로 1940년대부터 1950년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범죄 영화들은 '필름 누아르'라고 부르면서 이 용어는 영화 장르에서 자리 잡게 되었다. 현재 누아르의 최초 영화는 1940년에 개봉한 <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크리스마스트리의 역사는 여러 기원이 있다. 초기에는 8세기 독일에서 선교사 오딘이 떡갈나무 대신 가문비나무를 사용하여 예수의 탄생을 알리고 설교한 것이 시작으로 전해진다. 다른 한편의 기록은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16세기에 상록수에 촛불을 붙여 성탄 트리를 처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시 트리는 19세기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에 의해 영국에서 대중화되었고, 이후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처음 시작한 교회에 대한 명확한 기록도 없다. 초기의 교회에 크리스마스트리의 문화는 없었다. 당시 가톨릭교회는 매우 보수적인 태도로 크리스마스트리를 이교도의 상징으로 간주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받아들여졌다. 문화란 지금에서 보면 매우 타당하고 아름답지만, 시작은 엄청난 파장 안에서 나타난다. 잔잔한 파도가 거대한 풍랑이 되는 것과 같다. 학자들은 크리스마스를 이야기하면 괴테를 든다. 괴테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대중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1775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재상으로 궁정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했다. 당시 카톨릭교회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이교도의 상징으로 간주했지만, 괴테의 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작가들에게는 보물들이 한두 가지씩은 있다. 책상이 대표적이다. 화학물질이 발라지지 않는 자연스러운 책상이다. 바른 듯 바르지 않은 듯 옻칠의 책상도 있다. 학인은 유달리 명사의 책상보기에 취미를 가진다. 세상에 책상 보기 취미(趣味)를 가졌다는 말은 생소하다. 영국의 셰익스피어 기념관에, 들려 셰익스피어 책상을 보기 위해 몇 번을 방문하기도 했다. 경계하는 줄이 있어서 책상을 만져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눈으로 만지기를 몇 번이다. 프랑스의 정치가로 존경받는 드골 생가에 들려서는 책상을 만져 보는 기쁨을 가졌다. 지금은 어떤 환경인지 모르나 20년 전 드골의 기념관에서는 그가 사용하던 책상을 안내하는 사람의 눈을 피하여 슬며시 만져 볼 수 있었다. 학인은 국내의 박경리 문학관에서도 선생의 책상을 유심히 본다. 동행의 문인은 스치듯 지나치지만, 학인은 책상을 보면서 선생이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고 구상하였는가 하는 상상은 흥미롭지 않으냐 반문한다. 목마와 숙녀로 유명한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이라는 책이 있다. '몽크스 하우스의 정원 이야기'를 담았다. 책에는 정원의 이야기가 주되게 살펴져 있다. 3장의 11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이 땅은 술 마시게 한다>(1966년)의 권일송 시집의 제목이 새삼 회자 되는 시대다. 지난주 토요일 '착각의 시학', 송년회 자리. 통영에서 올라왔다는 시인은 지금의 시대를 권 시인의 시집 <이 땅은 술 마시게 한다>의 제목이 딱 떨어지는 시대라 한다. 권 시인과 함께 활동한 1960년대 동시대의 시인들이 대부분 전통적이거나 자연 친화적인 시의 경향을 보였다. 권일송 시인은 현실적이고 시사적인 사건들에서 소재를 즐겨 취하여 풍자·비판하는 주지적 시풍을 견지했다.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 떠오르는 천년의 햇빛/ 지는 노을의 징검다리 위에서/ 독한 어둠을 불사르는/ 밋밋한 깃발이 있다// [중략]//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 눈을 열면 심상치 않은 유린의 바람/ 그것은 외진 벼랑을 타고/ 미끄러. 져 내리는 살의와 이방의 꽃/ 짐승들의 머리 푼 주검이/ 놀에 비낀 텅 빈 광야의 한때// 허물어진 금관의 둘레 만큼이나/ 아아라히 저무는 가장 인간적인 것/ 무더운 원색의 여름날/ 땀 흘린 도주의 난간 위엔/ 처형을 기다리는 문명한 달과/ 디모크래시의 피 벌은 함성이/ 묻어나 있다// 이 땅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한국에 키스의 도입은 소설로부터 시작된다. 나도향은 1922년에 <젊은이의 시절> 소설에서 키스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키스‘ 문자문화를 처음 펼치는 것이다. 이후 이광수는 1932년 <흙>의 소설에서 키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어 1933년 심훈은 <영원의 미소>에서 키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1939년에 김유정은 소설 <애기>에서 뽀뽀라는 말을 사용한다. 시인으로서는 한용운이 <님의 침묵>에서 키스라는 말을 1925년 사용한다. 시는 먼저 쓰고 시집은 1926년에 나왔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이별은 뜻밖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시 감상에서 유독 어느 문장, 단어에 마음 쓰이는 경우가 있다. 학인과 대화 하며 마음에 두는 문장을 묻는 것은 흔한 질문이다. 시인은 서정주 '국화 옆에서'를 읽으면 ‘뒤안길’이라는 단어가 생각을 멈추게 한다는 말을 주고받는다. '뒤안길'은 지나간 시간, 젊은 시절의 시간이 주마등이 된다. 시골에서는 대안(큰 집의 안쪽)이라 하는 '뒤꼍'도 들어 있다. 으슥하여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도 있다. 마음에 드는 다른 의미는 젊음의 추억이 담긴 심리적 공간이기도 한다. 우리의 삶은 시간의 흐름 속에 성숙하게 된다. 시간의 흐름은 심리적 뒤안길에서 이것저것 상심도 하며 성장하는 것들이다.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의 모습을 성찰하는 것이다. '국화 옆에서'의 미당은 시를 만들며 한국의 자연, 문화, 정서를 넣는데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토속적인 체취가 스며들고 있다. '뒤안길'은 평범한 단어지만 리듬과 음절의 조합에 특별한 주의도 들어 있다. 이로 인해 '국화 옆에서'는 유려한고 율동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시란 모름지기 아주 평범한 단어를 적절하게 사용하면 뛰어난 언어 건축(묘미)이 된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의 단어를 가지고 수많은 밤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대한민국에서는 왜 4대 성인 중 예수와 석가의 탄생일만, 빨간 글씨의 휴일일까요? 4대 성인 중 제자를 가장 많이 둔 성인은 누구일까요? 4대 성인은 일반적으로 공자(기원전 551~479년), 석가모니 (기원전 563~483년), 소크라테스(기원전 470~399년), 예수(기원전 4년경~기원후 30년경)다. 모두가 기원전 시대에 활동했다. 예수만 기원 후까지 활동했다. 직접 저술을 남기지 않고 제자들에 의해 가르침이 전해졌다. 당시 기준으로 모두 장수했다. 예수만 제외된다. 같은 성인이면 네 사람 모두 탄생일에 휴일이 되는 것이 공평할 수 있다. 4대 성인이라도 종교를 탄생시킨 성인에게는 신도에 의해 휴일이 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라는 답을 내리기도 한다. 80억 인구에 기독교 신자는 2020년 기준으로 24억 명으로 추산한다. 세계 인구 31.1%에 해당하는 수치다. 불교 신자는 5억 3500만 명으로 인구의 8~10% 정도다. 유교의 신자는 통계가 없다. 한국을 기준으로 하면, 예수와 석가의 탄생일에만 휴일이다. 다만 공자의 탄생일에 쉬는 기관이 딱 한군데 있다. 9월 28일, 공자의 탄생일에 성균관 대학교는 기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동네 골목을 돌아다니면 자그마한 카페서점이 있다. 책 관련 단체들이 모여 '바람직한 독서 모임을 위한 시민연대'를 만들어 토론하는 모습을 본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와 투박한 아저씨도 둥근 탁자에 앉아 있다. 그들은 공공 도서관을 중심으로 역사상 금서로 지정된 책도 토론한다. 우리에게 '금서의 시간', '금지 가요곡'의 시간은 군사 정권의 시간으로만 알았다. 아직도 이념을 이유로 도서를 검열하고 금서 목록을 만드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고개를 갸웃한다. 사람 마음이란 게 읽어라 읽어라 하는 것보다 읽지 말라 하면 더 보고 싶은 법이다. 독서 읽기에서도 금서라는 말은 읽기의 우선 호기심을 자극한다. 불온서적을 갖고 있기만 해도 감옥에 가던 시절 95%가 넘었던 청년층의 독서율이 최근 30%대로 떨어졌다. 그러고 보면 금서가 독서 읽기에 자극의 시간이 된다. 학인에게도 대학 시절 한 권의 금서를 만난다. <금강>이다. 창작과 비평에서 나온 책이다. 금강은 금서로 지정이 되자 더는 출판이 되지 않았다. 불온복제로 은밀히 전해지던 책이다. 대학생의 책가방을 전경이 뒤졌던 시절이다. 유난히도 대학가의 거리에는 전경이 많이 깔려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한글날은 눈들이 반겨주는 '빛나는 날'이다. 한글은 눈의 보석이다. 한글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한다. 오늘날 국문 또는 한글을 사용하기 전 세종임금께서 민족문자로 발표한 것이 훈민정음이다. 훈민정음은 세종임금께서 1443년(세종25)에 창제하셨다. 1446년(세종 28) 반포하셨다. 세종임금은 우리 민족이 쉽게 배워 편리하게 쓸 수 있는 것에 고민하셨다. 우리말은 완벽하게 표기하는 장점이 갖는 데 노력도 하셨다. 세종임금의 이러한 노력에 문자 생활을 확대하고, 민족문화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구실을 했다. 민족문자를 우리나라만이 만든 것은 아니다. 동아시아 각국이 모두 중세 동안에 한문과 자국어 두 가지 글쓰기가 필요해, 한자를 차용(借用)하며 자국어를 표기하는 문자를 만드는 작업을 일제히 했다. 우리는 향찰(鄕札)을 사용했다. 향찰은 당문(唐文, 漢文)이라 하여 대립하는 뜻으로 향가의 문장과 같은 우리말의 문장이라는 뜻이다. 현재 국어학에서 향찰이라는 말은 향가의 문장과 같다. 우리말의 차자로 완벽하게 표기하는 문장이나 그 표기체계(표기법)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20세기에 들어서며 학자들은 모든 차자표를 이두(吏讀)라고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세로쓰기의 편집,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 권일송 시집은 1966년 9월 10일 발행 됐다. 137 페이지 책값은 250원이다. 판형은 세로쓰기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 <진달래> 김소월의 시집은 단기 4284년(서기 1950년)에 숭문사에서 펴냈다. 가격은 230원이다. 백석 시인의 정본 시집, 깊은샘 도서출판에서 원본 그대로 2007년 1월에 펴냈다. 당시의 가격을 표기하지 않았다. 정본이라는 말은 처음 펴낸 시집을 그대로 다시 만들었다는 말이다. 이들의 시집은 세로쓰기다. 세로쓰기는 중국, 일본, 한국 등에서 전통적으로 널리 쓰였다. 세로쓰기는 주로 한자의 사용과 관련이 깊다. 문서나 책의 디자인에 따라 일반적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편집이 됐다. 우리나라가 한문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일본, 중국과 같이 세로쓰기를 자연스럽게 사용됐다. 대표적으로 성경도 그렇다. 세로쓰기는 문화의 특성과 역사적 배경에 따라 발전해 왔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책들은 가로쓰기로 시작되었다. 이처럼 인쇄술 발달과 함께 가로쓰기는 책의 판형에 자연스럽게 세계의 모든 나라는 가로쓰기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나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세상이 온통 병이 들었다. 아니 병이 든 것이 확실하다. 나 자신이 세상 병의 한 부분이다. 문제는 병이 들어 병소(病巢)임이 분명한데 인정하지 않는다. 작가는 병든 세계 속에서 온몸으로 그 병을 앓고 있는 이의 다른 이름이다. 이 상황의 중심에 서 있으면 그 실체가 보이지 않는 법이다. 작가가 병든 세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세계 안에 있으면서 그 세계로부터 한발 비켜나 세계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더 정직, 직설로 말해보자. 작가는 도둑, 소경, 고아, 무당, 광대, 칼잡이와 마찬가지로 세계 안에 정주하지 못한다. 세계 밖을 하염없이 떠돌아야 하는 저주받은 운명들이다. 이 저주받은 운명이란 범속한 인간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지만 작가에게는 그 예술을 위한 하나의 지복(至福)인지 모른다. 여름 폭한, 날씨를 원망하지만, 그 날씨는 지복을 타고나지도 못했다. 스스로 움직일 힘이 없다. 주어진 환경에 바퀴 되어 나쁘면 나쁘게 우락부락한 몰골로 가야만 하며 꿈을 꾸지 못한다. 저 가을 산을 넘어가는 사람은 있으나 가을 산은 그저 정해진 시간 안의 부분일 뿐이다. 우리 삶에는 열리고 닫히는 많은, 문들이 있다. 어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학인은 장정(裝幀) 보기가 취미다. 교보문고에, 들려 신간(新刊)의 장정을 보는 것은 출판의 흐름 즉 경향(景香)을 알게 한다. 표지를 넘기다 보면 개성을 드러낸 저자의 사진을 보는 것도 꽤 흥미롭다. 교보문고 입구에는 노벨상 수상자 초상화 전(展)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카뮈의 그림도 의문을 품는다. 교육적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다는 뜻이다. 34년 전에 설립된 교보문고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대산 신용호 창립자의 정신이 담긴 우리나라 대표적인 문화 공간이다. 종각 쪽에서 들어오면 횡보 염상섭의 좌상 뒤 돌판에 그 문구가 십계명처럼 새겨졌다. 교보의 노벨 수상자들의 초상은 우리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세계 최고의 석학들을 만나고 꿈을 키우게 하는 뜻을 담고 있다. 교보문고는 1992년부터 노벨상 수상자들의 초상화를 전시했다. 지난 2010년 리모델링 과정에서 그 초상화들이 사라졌다. 시민들이 아쉬움과 복원 요청이 잇따랐다. 교보문고는 시민의 여론을 부응하고 새로운 예술적 영감과 인문 정신이 깃든 예술 문화 공간으로 수상자의 전시공간을 다시 마련했다. 노벨 수상자의 초상화는 개성이 강한 화가들의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