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수수께끼 같은 시인이에요." 랭보 시인을 두고 황현산 평론가의 말이다. 시인은 보편적으로 나이 들면서 시의 세계가 무르익는다.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 1854~1891)는 반대였다. 10대에 시를 완성했고, 19살에 완전히 시를 그만두었다. 세상에 대한 분노, 혁명, 예언, 욕망, 도피, 언어의 실험을 다 해보고는 "이제 됐다"라는 듯 사라졌다. 허허 그 이후가 가관이다. 시를 쓰는 대신 무기 밀매상이 되었다. 시와 무기 밀매상은 하늘고 땅 사이 거리감이다. 이런 삶이 가능한가? 랭보에게는 가능했다. 그는 시가 '삶을 구원하지 못한다'라는 것을 알아버린 천재였다. 프랑스 북동부의 샤를빌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범상치 않았다. 가출을 밥 먹듯 했다. 학교에서 언어에 능통, 프랑스어가 아닌 라틴어로 시를 지어 선생들을 당황 시켰다.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건 15세 무렵이다. 그리고 16세에 쓴 시 '지옥에서의 한 철'은 지금도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고백으로 평가된다. 민음사에서 펴낸 <지옥에서 한철>이 1974년에 출간 1판 18쇄, 2015년 2판 25쇄, 2024년 3판 1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는 상상력이다. 문명의 역사는 언제나 상상력에서 시작됐다. 상상력을 예술가나 어린아이들의 전유물로 생각한다. 역사 속 가장 위대한 변화는 상상력이 풍부한 지도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세계를 바꿔온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인문학은 상상력의 학문이다. 더더욱 시(詩)는 상상의 사유영역이다. 영상 예술인 영화는 상상력의 극이다. 시와 노래가 사랑받는 것은 상상력이 만드는 사유기 때문이다. 로마의 시저는 제국을 상상했다. 미국의 링컨은 해방된 인간 공동체를 그렸다. 김구는 통일의 한국을 꿈꾸었다.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은 것에 국민은 애석하다. 그들 모두는 당시에는 '비현실적'이란 소리를 들었지만, 결국 그들의 상상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실현으로 나아가거나 키워졌다. 이처럼 상상력은 개인의 능력을 넘어 시대를 움직이는 구조와 체제를 바꾼다. 법도 마찬가지다. 법은 현실을 규정하는 도구이지만, 그 바탕에는 '그 사회가 바라는 세계'를 담은 상상력이 있다. 법은 단순히 금지하거나 허용하는 규칙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이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지에 대한 정신적 설계도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한국의 근간, 격동의 소식을 듣는 독일거주 학인의 편지다. 편지는 그리 흥미롭지 않다. 독일의 민주주의 벌판이 오늘에 이르게 된 과정을 소상하게 들려준다. "독일은 20세기 인류 역사상 가장 어두운 범죄 국가였던 나치 독일로부터 어떻게 오늘날의 가장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로 변화할 수 있었을까?”로 시작된다. 민주주의 들판의 여정은 단순히 제도의 변화나 외세의 개입이 아니었다. 독일 사회 내부의 성찰과 과거 청산, 교육, 그리고 법적·도덕적 책임의 수행이라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우선, 독일의 탈 나치 화(Entnazifizierung)는 단지 정치적 권력에서 나치 인물을 제거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연합국은 나치 지도자들을 국제법정에 세워 뉘른베르크 재판을 단행했고, 전쟁범죄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독일 내부에서 벌어진 '기억과 사과의 문화'다. 전후 세대는 자신들의 부모 세대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 침략전쟁, 인권유린에 대해, 묻고, 따지고, 반성했다. 정치가 아닌 시민사회와 지식인들이 주도한 이 '과거사 청산'의 흐름은 독일 민주주의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편집국장 =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각오로 글을 써야 한다. 영감의 잔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셔 비워야 한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소로의 속삭임' 중에서 5월의 첫날, 차 한 잔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며 문득 소로의 말을 떠올렸다. 이 말은 단지 작가에게만 해당되는 조언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삶 또한 봄처럼 영원히 계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는 깨닫는다. 사랑할 시간, 감사할 시간, 용서하고 화해할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지를. 그래서 우리는 삶이 허락한 매 순간을 아끼고, 영감의 잔, 사랑의 잔에 담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음미해야 한다. 어느덧 2025년의 3분의 1이 흘러갔다. 지금까지가 한 해를 채우기 위한 준비였다면, 이제 시작되는 3분의 2는 본격적인 출발의 시간이다. 그 출발선에 선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는 이름처럼 우리 모두에게 귀한 선물 같은 달이다. 5월은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이 이어지는 '가정의 달'이다. 여기에 하나 더, '나눔의 달'이라는 의미를 더해보면 어떨까. 나눔은 결코 거창한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참기름(참깨)은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인도지역에서 경작되고 있었다. 참깨는 향유나 의약품으로 사용되었다. 참깨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한나라 시대부터 기름으로 사용한 기록이 나온다. 한국에 사용한 시기는 삼국시대 이전부터다. 조선 시대는 양반이 주로 사용했다. 동양권에 사용되던 참기름은 한류 바람이 불며 유럽의 나라들까지 식재료로 확산, 활용되는 실정이다. 한국에서는 참기름에 대한 인식은 식재료를 넘어 진실의 차원으로 불린다. '참 군인', '참기름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참기름이 던지는 뉘앙스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완성하는 조미료의 이미지만은 아니다. 깊은 열과 압력을 견뎌낸 끝에 비로소 향기롭고 맑은 기름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참기름의 본질이다. 겉껍질을 태우고 불순물을 걸러낸 후, 한 방울씩 짜내는 그 정성스러운 과정은 진실하고 순수한 것만 남기려는 사람의 마음과 닮았다. 반면 '참 군인'이라는 말은 어떤가. 병영 안팎의 풍경 속에서 수없이 소비되는 '군인'이라는 단어가 '참'이라는 접두어 하나만으로 단번에 무게를 얻는다. 참 군인은 단순히 계급장을 달고 지휘하는 이가 아니다. 국가와 국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영화 '올빼미'는 조선 시대 궁중에서 벌어진 미스터리 사건을 펼쳐지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단순한 사실 사극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진실을 본 자와 외면한 자, 그리고 진실을 침묵하게 만드는 권력의 역학을 통해, 오늘날 정치와 사회의 거울로 다가온다. 특히 '말할 수 없는 진실'을 둘러싼 불안과 침묵, 시각장애인의 눈을 통해 드러나는 ‘역설적인 시선’은 현 정치 현실과도 절묘하게 겹쳐진다. 영화 속 주인공 경수는 앞을 보지 못하는 침술사다. 육체의 눈은 감겨 있으나 정신의 눈, 영혼의 눈은 열려 있다. 그는 왕세자의 죽음을 목격했지만, 말할 수 없다. 신분의 벽, 권력의 공포,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시각장애인이라는 한계가 그의 입을 막는다. 진실을 둘러싼 싸움, 특히 권력형 부패 사건이나 선거결과를 부정으로 내모는 엉뚱 시선도 은유한다. 사건의 진실 공방에서 영화는 ‘경수’의 시선을 빌린다. 내부고발자, 양심선언자, 그리고 국민 개개인이 그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쉽게 침묵 당하거나 조롱받는다. 혹은 자발적 침묵으로 자신을 지운다. 침묵은 생존의 전략이자, 시대의 비극이다. 침묵이 부르는 역사의 참상을 올빼미는 흥미진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철면피(鐵面皮)'라는 말은 한자 그대로 '쇠로 된 얼굴 가죽'을 의미한다. 낯짝이 쇠가죽처럼 두껍다는 뜻이다. 뻔뻔스럽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이 말은 오늘날에도 정치인, 종교인, 그리고 때로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과 같다. 고전으로 여기는 실학자 연암 박지원(1737~1805, 정조시대)의 <허생전>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철면피’라 부를 수 있을까? 허생전의 시대는 실학보다 성리학이 뿌리를 내렸다. 양반과 백성의 계급 차이, 행동이 정해져 있었다. 이런 성리학을 싫어했던 실학자는 소설로 성리학을 비판했다. 오늘날 성리학이 없어지고 실학의 시대로 착각한다. 실학의 근본은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다. 지금도 엄연하게 조선의 성리학이 존재한다. 기득권(권력자)은 양반행세를 하며 국민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조선의 시대와 다르지 않은 정신착란의 패륜이다. 허생전에 등장하는 허생은 묘한 인물이다. 글만 읽는 선비다. 가난했고, 아내의 구박도 들었다. 어느 날, 그는 돌연 집을 나와 변 부자에게 돈을 꾸어 과일과 말총으로 거상이 된다. 이 대목만 보면 그는 부단한 자기 혁신가요, 시대를 앞서간 경영 천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상가(喪家)의 개'라는 말은 논어 <양화편(陽貨篇)>에 나오는, 공자의 탄식 속 한 문장이다. 오늘의 후학은 공자의 논어 양화편을 꾸준하게 연구하고 있다. 정치의 현실에 벗어나 유랑하는 공자의 심중을 들여다보며 현실 정치와 비교도 한다. 공자는 기원전의 철학자다. 그런데도 공자의 논어는 현실의 정치나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가져온다. 공자는 정치에 잠시 발을 들여놓는다. 정치는 춘추전국 시대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역사는 우연일 수도 있지만, 필연의 연속일 수도 있다. 공자는 처음부터 인문학에 속하는 시학을 공부하지 않았다. 법무부 장관으로 정치에 입문한다. 공자는 법무부 장관을 5개월 정도를 하고 마치 오늘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처럼 내팽개쳐지고 말았다. 공자는 정치를 벗어나 방랑자가 된다. 선학의 가르침을 배우고 그들의 학문에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자 한다. 공자를 추종하는 제자는 한두 명에서 3천 명에 이르는 현학의 지지를 받았다. 그렇게 떠도는 공자에게 농부가 입바른 말을 한다. 바로 그 장면이 논어 양화편의 이야기다. 길을 잃고 상가(喪家) 앞을 떠돌던 개처럼, 갈 곳을 잃은 자신의 처지를 그렇게 표현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칼릴 지브란(Khalil Gibran, 1883~1931)은 말하는 시인으로 불린다. 칼릴은 종이를 앞에 두고 한숨을 쉬는 시인이 아니다. 사람들 앞에서 말로 예언을 흩뿌리는 구도자다. 지브란의 '예언자' 주인공 알 무스타파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마을 사람들 질문에 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의 말은 설교가 아니다. "사랑에 대하여 말하여 달라", "일과 노동에 대하여 말하여 달라", "자녀에 대하여 말하여 달라" 이때 지브란은 칠판 대신 하늘을 바라본다. 달빛처럼 흐르는 멋진 언어의 대답이 나온다. "당신들의 아이들은 당신의 아이가 아니다. 그들은 삶이 자기 자신을 갈망하는 아들딸이다." 말은 뭔가 심오한 것 같으면서도, 어디선가 한 무더기 바람이 불어와 귀를 간질이는 재치의 말 같기도 하다. 지브란은 똑똑한 철학자보다 고요한 연못 위를 걷는 광인처럼, 천천히 미쳐가는 예언자로도 보인다. '예언자'의 저서는 1923년에 나왔지만, 지브란의 언어는 2025년에도, 3025년에도 들리고 있을 것이다. 왜냐고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사랑은 너를 원하니 네 속 깊은 곳까지 부숴버리라는 것이다." 이런 말은 소크라테스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산책'과 '풍경'의 언어는 시인과 예술인이 선호한다는 분석도 있다. 산책과 풍경에는 넉넉한 여유가 걸어 다니기에 그럴 것으로 짐작된다. 수많은 시와 노래는 풍경과 산책 안에서 탄생 되었음을 주장해도 시비를 걸만한 위인은 없을 것이다. 요즘 말하고 싶지 않은 풍경이 있다. 계엄을 정리하는 헌법재판소에서 거짓말하는 풍경들이다. 그러한 가운데 탄핵을 마무리하는 변호사의 시간에 독특한 장면이 있었다. '시인과 촌장'의 노랫말 '풍경'을 인용하는 변호사다. 매우 이례적 풍경이다. 가시덤불로 비유하고 싶은 부류들에 거룩한 풍경의 노랫말을 인용하는 장순옥 변호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평소 풍경의 노래를 좋아하는 말로 변론을 하기 시작했다. 장 변호사는 가난한 대학 시절부터 턴테이블을 자취방에 놓고 음악을 좋아했다는 후문이다. 노래는 때때로 우리의 기억을 풍경으로 만든다. 어떤 노래를 들으면 특정한 장면이 떠오르고, 그 장면은 우리가 살아온 시간과 얽혀 있다. 시인과 촌장의 노래 ‘풍경’ 역시 그런 힘을 지닌 곡이다. 이 노래는 단순한 멜로디와 서정적인 가사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안에는 깊은 사색과 감성이 녹아 있다. "눈을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정치가 계절을 앞지른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이다. 광화문 광장은 시련이다. 정치를 보는 관점도 다양하다. 시민의 시선으로 보는 것이 가장 보편일 수 있다. 아니다, 시민 시선이라도 정치색이 다르면 빨강, 파랑, 노란색일 수 있다. 이럴 때면 과거라는 역사 속에서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고려 시대 '좌주문생(座主門生)'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과거 시험(科擧) 제도가 중심이 되는 관료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관계였다. 좌주(座主)는 과거 시험에서 시험을 주관하거나 감독한 대과(大科)의 시관(試官, 출제자)이다. 특히 문과(文科)의 초시(初試)와 복시(覆試)에서 합격자를 가려내는 역할을 맡았던 고위 관료를 가리킨다. 문생(門生)은 좌주에 의해 합격한 과거 급제자다. 즉, 좌주는 과거 시험의 출제자이자 심사관이고, 문생은 그 시험을 통과한 제자들이다. 고려에서는 유교적 관료 체제가 점진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과거 시험이 주요한 인재 등용 방식이 되었다. 당시에는 음서(蔭敍, 문벌 귀족의 자제가 시험 없이 관직을 얻는 제도)의 영향이 강하여 '좌주문생' 관계가 조선만큼 절대적이지는 않았다. 조선이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채택하면서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작가에게 글은 희망과 자유, 진리를 향한 분화구다. 생명력과 사상이 응축된 산물이다. 한국의 소설가와 시인들은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들의 철학과 정신을 담은 말을 남기며 눈을 감는다. 시인과 소설가의 유언은 단순한 작별 인사가 아니라, 삶과 문학, 그리고 시대를 향한 메시지가 된다. 몇몇 대표적인 문인들의 마지막 유언을 통해 그들의 사유 담긴 의미를 되새겨본다. 천재적 시인 이상(1910~1937)은 결핵으로 요절했다. 일본에서 병상에 누워 있던 그는 마지막 순간 "이제 가야겠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이 말은 단순한 죽음의 예고가 아니라, 그가 평생을 살아오며 실험적 문학을 탐구했던 삶의 연장선으로 볼 수도 있다. 그는 시대를 앞서간 문학적 혁신가였고, 그의 죽음마저도 새로운 문학 세계로 떠나는 여정처럼 보인다. 이상의 실질적인 유언은 부인 변동임 무릎이었다. 시인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변동림은 도쿄로 갔다. 부인의 무릎에서 이상은 "센비키야의 멜론이 먹고 싶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한국인의 가슴을 울리는 시인 김소월(1902~1934)은 우울증과 시대적 절망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유언으로 전해지는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글쓴이 자신을 필자라고 쓰는 것을 흔히 본다. 또는 내가라고 직접적인 표현을 한다. 칼럼이나 수필을 읽으면서 '필자', '내가'라는 표기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능하면 필자라는 말을 피하여 필자의 입장이 되곤 했다. 더욱이 내가라는 말도 싫었다. 내가라는 말은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에 단골 단어였다. 뭔가 성숙한 단어를 쓰고 싶었다. 어느 작가는 '학인'이라고 표현하였다. 지적이고 좋은 단어다. 하지만 선배 작가가 사용하는 학인의 표기도 따라 하기 싫었다. 생각하다가 절에서 사용하는 도반(道伴)이라는 단어가 좋았다. 스승 밑에서 짝을 이루어 공부하는 사람을 도반이라 한다. 그런데 도반은 이미 사용하는 단어다. 생각한 것이 시도반(詩道伴)이었다. 시를 같이 공부한다는 뜻이다. 언어라는 것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은 천지 차이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느 출판사에 '노르웨이산 가구'라는 표기로 Norwegian Wood라고 썼다. 미국의 출판사에서는 '노르웨이 숲'이라고 해석하여 썼다. 이렇게 글쓴이와 번역가의 차이에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다. 우리가 글을 쓰면서 하나의 단어와 사물의 표기에 잠 못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용인시 병)과 이기헌(경기 고양시 (병) 그리고 뉴스토마토는 오는 3월 6일(목) 14시부터 16시까지 국회 의원회관 2층 제3세미나실에서 '국방을 정상화하고 발전시키는 9가지 제안'을 주제로, 국방 현안 세미나를 연다. 이 세미나는 뉴스토마토 K국방연구소(소장 박창식, 前국방홍보원장)가 기획했다. 이번 세미나는 지난 몇 해 동안의 국방 운영과 최근의 계엄 사태에서 드러난 국방 영역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한국 국방의 발전 방향을 새로이 모색하기 위해 마련했다. 발표 주제와 발표자는 다음과 같다. ○ 국민 속에서 신뢰받는 '국민의 군대' 1-1. 국민의 군대로 가는 길, 구체적 실천이 필요하다(최병욱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 1-2. 독립전쟁 정통성을 확고하게 계승해 국군의 뿌리를 되찾자(박창식 뉴스토마토 K국방연구소 소장) 1-3.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직업군인의 명예와 자부심을 높여야 한다(최병욱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 ○ 국민 생활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는 ‘강력한 군대’ 2-1. 북한 핵 위협, 한미동맹에 기반한 압도적 억제와 안정적 위기관리 체계로 대응해야 한다. 핵무장이 아니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시인에게 자연은 밥이다. 달은 반찬과 같은 재료다. 목월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는 유명한 시구를 선물했다. 목월은 "옥양목 같은 달밤이다/ 옥색 데님을 두르고/ 달놀이를 갔다"와 같은 시를 남겼다. 소월은 달을 사랑한 나머지 그의 호가 밝고 하얀‘흰 달’의 이미지를 담아 만들었다. 한용운은 '달을 보며'에서는 달을 님으로 비유하며, 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시를 만들었다. 달에 관한 시라면 이백을 뒷전에 둘 수 없다. 대표적으로 '파주문월(把酒問月)'에서 달은 "거울 같은 밝은 보름달"로 묘사한다. 선궁(仙宮)에 걸린 거울 같은 이미지를 담았다. 다른 시 '월하독작(月下獨酌)'에서 달이 시인에게는 영혼의 거울이자 확대된 자아로 묘사했다. '꽃 사이에 술 한 병 놓고,/ 벗 없이 혼자 마시노라./ 잔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니,/ 그림자 비추어 세 사람이 되었구나./ 달은 본래 술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는 그저 흉내만 내네./ 잠시 달을 벗하고 그림자를 거느리고,/ 이 봄을 마음껏 즐겨보세./ 내가 노래하니 달도 서성이고,/ 내가 춤추니 그림자도 어지럽구나./ 취하기 전엔 함께 즐기지만,/ 취하고 나면 각자 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