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억압의 시대마다 사람들은 끝내 '자유'라는 이름을 써 내려갔다. 시는 선언이 아니라 가장 조용하고 치열한 저항이었다. 1942년, 나치 점령 하의 파리. 인쇄소도, 출판사도, 말 한마디도 검열의 그물 아래 놓인 시절이었다. 폴 엘뤼아르(Paul Éluard, 1895~1952)는 그 어둠 속에서 단 하나의 낱말을 향해 시를 썼다. "자유". 그 시는 처음엔 지하에서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고, 이윽고 영국 RAF 비행기가 프랑스 상공을 날며 전단지로 뿌렸다. 점령된 땅에 씨앗처럼 흩뿌려진 시. 그것이 엘뤼아르의 '자유'였다. 시는 단순하다. 반복의 형식이다. 스물한 개의 연(聯)이 똑같은 구조로 이어진다. "내 학교 공책 위에 내 책상과 나무들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무엇 위에 그 이름을 쓰는가. 어린 시절의 기억 위에, 폐허 위에, 부재(不在)의 침묵 위에, 그리고 마침내 "내 삶을 되찾아" 온 한 낱말-자유-위에. 엘뤼아르는 연인에게 바치는 시처럼 그것을 썼다. 자유란 사랑받아야 할 이름, 불러야 비로소 존재하는 이름이라는 듯이. 그로부터 삼십팔 년 후, 지구 반대편의 봄날에 또 다른 이름들이 적혔다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본지 편집국장) = 스승의 날을 맞아 교권 추락과 교육 불신이 심화되는 현실 속에서, 한 시대 참교육자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이숙례(李淑禮) 전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원장의 10주기 추모문집 <사랑과 그리움, 파랑새의 추억>(도서출판 가온)은 오늘날 사라져가는 '참스승'의 의미를 조용히 일깨운다. 씨 뿌리는 마음으로 평생 아동교육에 헌신했던 그의 삶은, 무너진 교단 앞에서 우리 사회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되묻게 한다. 오월이면 사람들은 카네이션을 떠올린다. 그러나 오늘날 '스승의 날'은 축하와 감사의 의미보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얼마나 깊이 스승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되묻게 만드는 날이 되어가고 있다. 교권은 무너지고, 교사는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민원과 고소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교실은 배움의 공간이라기보다 갈등과 불신이 교차하는 현장이 되었고, 교사는 학생을 올바르게 지도하기보다 혹여 문제에 휘말릴까 두려워 눈치를 보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한때 교단은 아이들의 영혼을 키우는 자리였다. 교사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비춰주는 등불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교육의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문장을 해석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은 읽는 순간 이미 독자의 감정을 붙든다. 이 시는 사랑의 시이면서 동시에 병상일기이고, 상실의 기록이며, 존재를 붙드는 기도의 언어다. 사람들은 이 시를 눈물의 시, 간호의 시, 순애보의 시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도 읽을 필요가 있다. 바로 '명사'가 아니라 '동사'의 시로 읽는 것이다. 명사는 대상을 고정하지만, 동사는 살아 움직인다. 명사가 존재를 말한다면, 동사는 삶을 말한다. '접시꽃 당신'의 핵심은 ‘아내’라는 존재 자체보다 그 존재를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화자의 몸과 마음에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 시는 동사로 증언한다. 기다리고, 닦아주고, 바라보고, 견디고, 부르고, 울고, 살아내는 동사들. 그 동사들이 모여 한 인간의 영혼을 흔드는 깊은 서정을 만든다. 도종환의 시 세계는 본래 정적인 풍경보다 움직이는 감정에 가깝다. 그의 언어는 언제나 누군가를 향해 흐른다. 특히 '접시꽃 당신'에서는 병든 아내를 둘러싼 일상의 움직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요즘 한 젊은 검사의 이름이 법조계와 정치권 안팎을 술렁이게 하고 있다. 정재인 검사. 2020년 변호사시험 합격 후 검찰에 입문한 6년 차 검사다. 그녀가 최근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내란 혐의 재판에서 내놓은 "징역 20년" 구형 논고는 단순한 법정 발언을 넘어섰다. 35년 선배 법조인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사실과 원칙으로 맞선 그의 모습은, 오랜만에 '검찰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것은 보수의 본질이며, 동시에 정의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기대감을 잃어버린 검찰 조직 안에서 그는 마치 메마른 숲에 떨어진 작은 이슬 한 방울처럼, 희미하지만 분명한 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보수란 무엇인가. 흔히 정치적 우파의 이름으로 소비되지만, 그 본질은 법과 질서, 공동체 가치의 수호에 있다. 정재인 검사는 바로 그 본질을 몸으로 드러냈다. 지난 4월 27일 서울중앙지법. 박성재 전 장관은 2024년 비상계엄 선포 당시 법무부 간부회의 소집 등 내란 가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정 검사는 박 전 장관의 취임사와 검사 선서를 인용하며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물었다. "5월 1일 신임 검사 임관식을
전 세계 뮤지션들이 한국 무대를 특별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만 명의 관객이 한 목소리로 노래를 완성하는 '떼창'은 단순한 호응을 넘어 하나의 집단적 예술로 자리 잡았다. 전통 공동체 문화와 현대 팬덤이 결합해 탄생한 이 독특한 공연 방식은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새로운 문화 언어로 세계를 향해 확장되고 있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떼창'은 이제 단순한 신조어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고유명사가 되었다. 전 세계 뮤지션들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이유 중 하나, 바로 이 독특한 공연 풍경 때문이다. 수만 명의 관객이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면. 이는 단순한 호응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합창이자 집단적 공명이다. 서구 공연 문화의 기준에서 보면 이 광경은 낯설다. 정숙을 미덕으로 삼는 클래식 공연장이나, 즉흥적 반응을 즐기는 재즈 무대와 달리, 한국의 '떼창'은 관객이 공연의 일부를 넘어 '공연 그 자체'가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현상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상징적인 장면이 있다. Eminem은 2012년 내한 공연에서 한국 관객들의 폭발적인 떼창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평소 감정 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외교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가운데, 시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 목소리는 또 다른 의미를 드러낸다. 그것은 외교적 수사를 넘어 인간의 존엄과 보편적 인권을 향한 ‘시적 언어’의 발화였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시는 언제나 청정(淸淨)을 지향한다. 꾸밈없는 언어로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고, 권력이 외면한 자리에서 목소리를 낸다. 시인은 아름다움을 노래하되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다. 그것이 시의 윤리이며, 시가 수천 년을 살아남은 이유다. 2026년 4월, 이재명 대통령은 SNS를 통해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인권 침해 영상을 공유하며 "유대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와 다를 바 없다"고 밝혔다. 즉각 외교적 파문이 일었다. 이스라엘 외교부는 강하게 반발했고, 국내 야권은 ‘SNS 외교 참사’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러나 시인의 눈으로 이 발언을 바라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보인다. 알자지라(Al Jazeera)는 해당 영상을 자체 검증한 뒤, 2024년 9월 요르단강 서안 카바티아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팔레스타인 남성의 시신을 옥상에서 밀어 떨어뜨린 실제 사건임을 확인했다. 이를 두고 알자지라는 "문서화된 학대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한 사극이 세계를 건너고 있다. 조선의 왕과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영국과 프랑스, 미국을 넘어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흥행 수치와 평단의 반응을 넘어, 이 영화는 지금 '한국적 서사'가 어떻게 ‘보편의 언어’로 확장되는지를 보여준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왕과 사는 남자>가 세계를 유영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해외 개봉 소식이 아니라, 한국 서사의 새로운 확장에 대한 징후다. 미국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관객 지수 96%를 기록하며, 북미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이미 <범죄도시4>, <서울의 봄>, <극한직업>의 북미 성적을 넘어서는 흐름은 이 영화가 지닌 힘을 방증한다. 유럽의 시선은 냉정하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영국의 가디언은 이 작품을 "15세기 폐위된 군주의 피신을 다룬 생동감 있는 한국 사극"이라 평가하며, 배우 유해진의 연기가 서사를 지탱하는 중심축이라고 짚었다. 동시에 우화적 서사의 균열을 지적하기도 했다. 반면 아시아의 평단은 훨씬 깊은 공감의 층위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한국 현대 시비의 효시는 김소월(金素月)이다. 1968년 한국일보사 주관으로 서울 남산에 소월의 시비가 건립됐다. 일명 소월길이다. '진달래꽃'을 새긴 그 돌은 한국에서 최초로 공공장소에 세워진 근대 시인의 시비로 기록된다. 시비(詩碑)가 처음 세워진 장소가 남산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도성의 안산(案山)이자 서울의 상징인 그 산은 오래전부터 한국인의 정서가 모이는 곳이었다. 그 자리에 소월의 '진달래꽃'이 새겨졌다는 것은, 당대 사람들이 이미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시가 무엇인가'를 직감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진달래꽃'은 1922년 <개벽>에 발표된 이후 백 년이 넘도록 한국인의 마음속에서 살아 있는 시다. 7·5조 민요조 리듬과 이별의 정한을 억누르면서도 꽃을 뿌리는 역설의 미학은 어느 시대에도 낡지 않았다. 시비는 문단이 아니라 국민이 먼저 알아본 시의 자리에 세워진 셈이다. 집계 가능한 범위에서 단일 작품으로 가장 많은 시비를 거느린 시인은 윤동주(尹東柱)다. 그의 '서시'는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1968년 건립)를 비롯해 원주 미래캠퍼스, 일본 도시샤대학 이마데가와 캠퍼스, 우지 강변 등에 각각 독립
한국 문학계에는 작가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유난히 많다. 특히 시인의 이름을 내건 문학상은 하나의 단체가 아닌 여러 단체가 각각 제정하고 운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윤동주, 김소월, 정지용 등의 사례에서 보듯, 한 작가의 이름 아래 여러 문학상이 공존하는 이른바 '복수 주최 문학상' 구조는 한국 문학계의 독특한 생태계를 보여준다. 이는 작가의 문학적 위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문학상의 권위와 공정성 문제를 함께 생각하게 한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한국 문학계에서 작가의 이름을 딴 문학상은 단순한 시상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특히 한 작가의 이름으로 여러 단체가 각각 문학상을 제정하고 운영하는 이른바 ‘복수 주최 문학상’ 현상은 그 작가의 문화적 위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 문학계의 다층적 생태계를 드러낸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윤동주 시인이다. 한국문인협회가 제정한 윤동주문학상은 오랜 전통과 권위를 이어오고 있으며, 윤동주기념사업회, 대학, 문학 단체 등 여러 기관이 각기 다른 성격의 윤동주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상이 있는가 하면, 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문학상, 문예지와 문학 단체가 공동 주최하는 상도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본지 편집국장 = 20세기 이후 현대 민주주의 이론을 정립한 독일의 대표적 철학자 Jürgen Habermas(위르겐 하버마스)가 14일(현지시간)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스타른베르크에서 별세했다. 향년 96세. 한 세기를 관통하며 민주주의의 철학적 기초를 탐구해 온 거장의 퇴장은 단순한 학자의 부고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날 민주주의가 직면한 근본적 질문을 다시 우리 앞에 던진다. 우리는 지금 서로 대화하고 있는가. 하버마스는 20세기 이후 현대 민주주의 이론을 정립한 대표적 사상가다. 철학과 사회학, 정치학을 넘나들며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했다. 그의 대표 저서 The Structural Transformation of the Public Sphere(<공론장의 구조변동>)과 The 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의사소통 행위 이론>)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의 토론과 의사소통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철학적으로 정립한 기념비적 저작으로 평가된다. 그가 제시한 핵심 개념은 바로 '공론장(公共論場, Public Sphere)'이다. 공론장이란 시민들이 공적인 문제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이백과 두보는 동양이 낳은 시의 거목이다. 시대를 거슬러 당나라 천보 3년(744년) 여름, 낙양의 한 주점에서 두 시인 거인이 마주 앉았다. 한 사람은 이미 한림학사로 천하에 명성을 떨친 이백(李白, 701~762)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아직 무명의 젊은 시인 두보(杜甫, 712~770)였다. 이백은 44세, 두보는 33세. 열한 살 차이의 이 만남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당 시가(詩歌)의 황금기, 성당(盛唐)을 상징하는 ‘태양과 달의 교차’로 후대에 영원히 기록되는 계기가 되었다. 술잔을 사이에 두고 시작된 대화는 시 한 수, 한 수로 이어지며 중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우정을 꽃피웠다. 그들의 낙양 만남 이야기와 그 우정이 당나라 문학에 미친 깊고 넓은 여파를 더듬어 본다. 이백은 고력사(高力士) 등 권력자들의 미움을 사 장안을 떠나 고향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자유분방한 천재 시인에게 관직은 어울리지 않았다. 낙양에 잠시 머물며 술 한 잔을 찾던 그는 주점 말석에 앉아 조용히 취해 있었다. 그곳에 두보가 나타난 것이다. 진사 시험에 낙방한 뒤 고민이 많던 33세의 두보는 이백의 소식을 듣고 일부러 찾아왔다. 은
소설의 첫 문장은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가 열리는 순간이다. 그 한 줄에는 작가의 세계관과 언어의 결, 서사의 방향과 철학이 농축되어 있다. 최창일 시인은 카뮈, 톨스토이, 김유정, 오웰 등 문학사의 대표적인 첫 문장들을 통해, 왜 첫 문장이 곧 작품의 운명을 결정하는지, 그리고 그 문장이 어떻게 독자를 현실에서 문학의 세계로 건너가게 하는지를 짚어본다.[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소설의 첫 문장은 단순히 이야기의 시작이 아니다. 그것은 독자가 들어서는 세계의 문이며, 작가가 자기 세계를 여는 선언이다. 한 문장 속에는 작품 전체의 정조, 세계관, 시점, 언어의 결이 농축되어 있다. 독자는 그 한 줄을 통해 작가가 어떤 눈으로 세계를 보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지금 어디로 들어가고 있는지를 직감적으로 감지한다. 좋은 첫 문장은 문학적 긴장을 품고 있으며, 독자에게 '이 세계를 계속 보고 싶다'라는 유혹을 던진다. 첫 문장은 가장 먼저 독자의 감각을 사로잡는다. 문장의 길이, 리듬, 어조, 단어 온도는 작품의 정서를 결정짓는다. 카뮈의 <이방인>은 이렇게 시작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일지도
대통령이 넥타이를 벗는 순간, 무엇이 달라질까. 그것은 단순한 복장 선택이 아니라 권력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다. 노무현과 버락 오바마, 서로 다른 나라의 두 대통령이 공통으로 선택한 ‘노타이’는 탈권위적 지도력이라는 시대의 언어였다. 이 칼럼은 넥타이라는 시각적 상징을 통해, 민주주의가 권위와 거리를 두는 방식이 어떻게 정치의 본질을 바꾸었는지를 짚어본다.[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대통령의 넥타이는 단순한 복식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 권력의 시각적 상징이며, 근대 국가가 오랫동안 축적해 온 권위의 결정체다. 정장과 넥타이는 ‘국가 원수다움’을 구성하는 일종의 의례였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넥타이를 벗는 장면은 사소한 스타일의 변화가 아니라, 권력과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을 드러내는 정치적 언어에 가깝다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과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서로 다른 국가, 다른 문화, 다른 정치 환경 속에 있었지만 공통으로 ‘넥타이를 벗은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로 기억된다. 두 사람 사이에 직접적인 영향 관계를 입증할 만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이들의 선택은 21세기 민주주의가 공유한 하나의 흐름, 곧 탈권위적 지도력이라는 시
한 해가 저물 무렵이면 우리는 습관처럼 ‘송년회’나 ‘망년회’를 떠올린다. 오래 써 온 말이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은 어딘가 메마르다. 최근 사단법인 한글문인협회가 연말 행사의 이름을 '마무리'라 부른 장면은, 연말을 대하는 우리의 언어와 감수성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말 하나가 시대의 정서와 문화의 온도를 드러낸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우는 순간이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한 해가 저물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송년회'나 '망년회'라는 말을 떠올린다. 오랫동안 써 온 익숙한 단어들이지만, 어딘가 마음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자어 특유의 딱딱함 때문일까. 연말이라는 시간의 온기와 여운을 전하기에는 감정의 결이 다소 멀게 느껴진다. 이런 가운데 사단법인 한글문인협회(이사장 정명숙)가 올해 행사의 이름을 '2025년 마무리 행사'라 붙인 점은 눈길을 끈다. 한자어 대신 한글로 삶의 시간을 부르는 이 선택이 새삼 반갑다. 세종대왕도 미소 지으실 법한 우리말이다. 언어는 시대의 감수성을 담아야 하기에, 우리말의 멋과 온기를 살린 표현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의미 깊다. '송년회'는 '보낼 송(送)' 자에 '해 년(年)'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크리스마스는 한 해의 끝에 다가오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다. 인간의 영혼 깊은 곳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과도 같다. 희미해진 도덕적 감수성, 상처 입은 인간관계, 절망과 회복의 단면들이 이날을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 속에서 어둠과 빛이라는 두 세계를 오가며 형상화된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문학을 읽는 일은 단순한 감상 이상의 작업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우리 내부에 여전히 남아 있는 ‘회복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찰스 디킨스의 작품 '크리스마스 캐럴'은 크리스마스 문학의 원형이자, 가장 오래 사랑받는 성탄의 서사다. 스크루지는 인색함과 냉소가 몸에 밴 한 인물이다. 그는 타인의 고통에 냉담하고, 공동체의 행복을 '쓸모없는 감상주의' 정도로 치부한다. 성탄 전야, 그에게 찾아온 세 유령은 인간의 삶을 현실 너머의 차원에서 조명한다. 과거의 유령은 잊힌 기억들을 통해 그에게 인간적 상처의 기원을 보여준다. 현재의 유령은 그가 외면한 공동체의 따뜻함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유령은 죽음 앞에서 무력한 한 인간의 절경(絶境)을 비춘다. 크리스마스의 밤, 스크루지는 단지 착해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