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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창일 시인, "왕이 아니라 인간을 보다"

'왕과 사는 남자' 해외 흥행이 던지는 질문
역사 너머 보편의 감정…세계는 왜 이 조선의 이야기에 울었는가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한 사극이 세계를 건너고 있다. 조선의 왕과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영국과 프랑스, 미국을 넘어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흥행 수치와 평단의 반응을 넘어, 이 영화는 지금 '한국적 서사'가 어떻게 ‘보편의 언어’로 확장되는지를 보여준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왕과 사는 남자>가 세계를 유영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해외 개봉 소식이 아니라, 한국 서사의 새로운 확장에 대한 징후다.

미국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관객 지수 96%를 기록하며, 북미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이미 <범죄도시4>, <서울의 봄>, <극한직업>의 북미 성적을 넘어서는 흐름은 이 영화가 지닌 힘을 방증한다.

유럽의 시선은 냉정하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영국의 가디언은 이 작품을 "15세기 폐위된 군주의 피신을 다룬 생동감 있는 한국 사극"이라 평가하며, 배우 유해진의 연기가 서사를 지탱하는 중심축이라고 짚었다. 동시에 우화적 서사의 균열을 지적하기도 했다.

반면 아시아의 평단은 훨씬 깊은 공감의 층위를 보여준다. 소년 왕이라는 존재가 단순한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고통을 인식하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인간'으로 그려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음식과 결핍, 빈곤과 위로가 서사의 핵심 동력으로 작동한다는 해석은 특히 인상적이다.

홍콩 기반 영화 매체 'City on Fire'는 장항준 감독의 연출을 두고, 정치적 격랑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교류에 집중한 선택을 높이 평가했다. 다만 일부 서사 전개의 속도와 시각효과에 대한 아쉬움도 함께 언급했다.

북미 관객의 반응은 보다 직관적이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웃음과 눈물이 공존한다"는 평가처럼, 감정의 진정성에 대한 반응이 압도적이다. 자막이라는 장벽마저 무너뜨릴 만큼의 몰입감은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이다.

중화권에서는 또 다른 흥미로운 해석이 등장한다. 역사적 사건을 자국의 경험과 비교하며, 권력의 방식과 윤리적 선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는 동일한 서사가 문화적 배경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읽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동남아시아 관객들은 이 영화를 '감정의 언어'로 받아들인다. 쿠데타와 유배라는 무거운 소재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간의 이야기로 풀어낸 점에서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결국 이 영화가 세계를 건너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이 '조선의 이야기'이기 이전에,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음식과 결핍, 권력과 소인, 신체의 쇠약과 존엄의 회복, 이 모든 요소는 국경을 초월하는 보편의 문법이다.

특히 주목할 지점은, 죽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관객의 감정 속에서 완성하게 하는 서사의 방식이다. 절제된 비극, 여백의 미학은 한국적 정서를 넘어 세계적 감각으로 번역되고 있다.

유럽의 관객들이 영화관을 나서며 눈시울을 붉힌다는 소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눈물은 역사에 대한 이해 때문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왕과 사는 남자>는 묻는다. 왕은 누구인가, 그리고 인간은 무엇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은 인간을 어떻게 살리는가.

이 질문 앞에서, 국적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화평론가)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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