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문학은 때로 한 시대의 기억을 조용히 붙들어 두는 가장 깊은 그릇이 된다. 거창한 역사서가 기록하지 못하는 민초의 삶과 감정, 그리고 일상의 작은 숨결까지 담아내기 때문이다.
제4회 서울시민문학상 시 부문 본상에 김예태 시인의 작품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어리버리', '이팝나무 꽃 피다'가 선정됐다.
심사위원단은 세 작품이 개인의 기억에서 출발해 민족의 역사와 서민들의 삶을 섬세한 서정으로 확장해 나가며, 인간을 향한 깊은 연민과 따뜻한 시선을 보여준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번 수상작들은 서로 다른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공통적으로 '사람'과 '시대'를 향한 시인의 애정 어린 시선을 담고 있다.
어린 시절의 놀이, 일상의 언어, 생활 속 사물 등 평범한 소재가 시인의 손을 거치면서 역사와 삶의 상징으로 변모한다는 점에서 김예태 시 세계의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제4회 서울시민문학상 시 부문 본상에 선정된 김예태 시인의 작품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어리버리', '이팝나무 꽃 피다'는 바로 그러한 문학의 본질을 다시 환기시키는 작품들이다.
세 편의 시는 서로 다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개인의 기억과 민족의 역사, 그리고 서민들의 삶을 하나의 서정으로 엮어낸다.
어린 시절의 놀이, 일상의 언어, 생활 속 사물 등 평범한 소재를 통해 시대의 풍경과 인간의 마음을 길어 올리는 김예태 시인의 시 세계가 응축되어 있다.
골목놀이 속에 스민 민족의 시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수상작 가운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누구나 어린 시절 한 번쯤 경험했을 골목놀이를 모티프로 삼는다. 술래가 돌아서며 외치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짧은 순간, 아이들은 숨고 달리며 시간을 견딘다.
시인은 이 장면을 단순한 놀이의 기억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그 짧은 순간을 역사 속에서 숨고 견디며 살아온 민초들의 시간과 겹쳐 놓는다. 아이들이 숨어버린 뒤 텅 비어버린 놀이터의 풍경은, 어쩌면 격동의 시대를 지나온 한 세대의 기억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확장된다.
특히 "북서풍 반만년에 진딧물은 여전하고"라는 구절은 역사 속 외세와 시련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며, 그 속에서도 "빳빳한 심장"으로 피어나는 무궁화의 생명력을 통해 민족의 끈질긴 생존 의지를 보여준다.
시의 마지막에서 떠오르는 꽃나무의 이미지는 긴 세월의 풍상을 견뎌온 사람들에 대한 시인의 조용한 헌사로 읽힌다.
인간의 빈틈을 품는 연민의 언어… '어리버리'
'어리버리'는 언뜻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단어를 시적 사유로 확장한 작품이다. 보통 '어리버리하다'는 표현은 어설프고 미숙한 상태를 가리키지만, 시인은 그 속에 숨어 있는 인간 관계의 감정을 들여다본다.
시 속에서 '어리버리'라는 단어는 상대적 우월감과 박탈감을 드러내는 언어이면서 동시에 인간적인 허점을 상징한다. 형사 콜롬보의 어리숙한 캐릭터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은 인간의 결핍과 서투름이 오히려 관계의 긴장을 풀어주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물렁물렁해져도 그대의 연민이 사랑인 걸 난 알지"라는 시구는 경쟁과 효율이 강조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잊히기 쉬운 인간적 온기를 환기시킨다. 시인은 해학과 풍자를 통해 인간의 약점과 결핍을 비난하기보다 포용하는 따뜻한 시선을 보여준다.
이팝나무 꽃에 담긴 시대의 연대기… '이팝니무 꽃 피다'
세 번째 작품 '이팝나무 꽃 피다'는 한국 현대사의 빈곤과 성장의 기억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시다. 시인은 50원짜리 동전에 새겨진 벼 이삭의 낟알 수를 모티프로 삼아 시대의 경제적 변화를 상징적으로 제시한다.
낟알이 스물여덟에서 서른둘, 마흔다섯, 쉰 개로 늘어나는 과정은 보릿고개와 분식의 시대, 그리고 산업화의 시간을 지나온 서민들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배고픔을 견디며 살아온 시간은 어느새 도시의 가로수로 피어난 이팝나무 꽃으로 번져간다.
이팝나무 꽃은 쌀밥을 의미하는 '이팝'에서 유래한 이름처럼 풍요와 희망의 상징이다. 그러나 시인은 마지막에 "싸전들은 목을 저리 길게 빼고 누구를 기다리나"라는 질문을 던지며 풍요의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결핍과 공허를 돌아보게 한다.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
김예태 시인의 시는 거창한 수사나 장식적인 언어보다 담담한 일상의 언어로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그의 시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나 사회 그 자체라기보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민족의 역사와 시대의 변화, 인간 관계의 미묘한 감정까지도 결국 사람의 삶 속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시선은 김예태 시인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인간적 연민과 따뜻한 통찰의 바탕이 된다.
문단에서는 그의 시 세계를 두고 "삶의 기억 속에서 시대의 의미를 길어 올리고, 연민의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서정의 미학"이라고 평가한다.
거창한 구호보다 일상의 언어로 시대를 비추는 그의 시는 독자들에게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문학은 사람을 향한 마음"
김예태 시인은 수상 소감에서 문학의 본질을 '사람을 향한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랑과 자비, 연민의 마음으로 문학을 섬겨온 시간이 이렇게 귀한 상으로 이어져 깊이 감사드린다"며 "문학은 결국 사람을 향한 마음이며, 그 마음을 나누는 봉사의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수상은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이웃들과 함께 나누어야 할 축복의 시간"이라며 "앞으로도 우리 시대의 아픔과 희망을 따뜻한 시선으로 기록하는 시를 쓰겠다"고 밝혔다.
연구와 창작을 함께 이어온 시인
김예태 시인은 숙명여대와 대학원을 거쳐 충북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시와 수필, 평론 등 다양한 장르에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시집 <빈집구경>, <예술은 좋겠네>, <곡선에 대한 명상>을 비롯해 수필집 <문을 연 아가씨>, <문을 닫은 아저씨> 등을 펴냈다.
또한 '식민지 시대 소설의 저항의식에 관한 연구', '문덕수 초기시의 시어 변이와 상징', '김남조 시에 나타난 아픔과 치유의 과정' 등 문학 연구 논문을 통해 학문적 작업도 병행해 왔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이사와 사단법인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창작과 연구, 문단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시민문학상 본상 수상은 한 시인이 오랜 시간 인간과 시대를 바라보며 걸어온 문학의 길을 다시 비추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시가 보여주듯, 문학은 여전히 사람의 삶과 기억을 가장 따뜻하게 기록하는 언어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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