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엄지피아노'라고도 불리는 '칼림바'는 피아노와 같이 음계가 양옆으로 배치되어, 양손으로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건반을 튕기면서 연주하는 악기이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도 손쉽게 배우고 연주할 수 있는 악기, '칼림바'가 인기몰이 중이다. 크기도 작아서 휴대하기도 좋고, 가성비 역시 좋다.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내어 다른 악기에 비해 소리가 크지 않아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며 시간과 가성비도 좋다. 장진영 사단법인 칼림바코리아 한국칼림바음악교육협회 대표를 만나 '칼림바'의 매력에 빠져보자. ▲ 칼림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고 십수년간 음악교육을 하고 있는 중이다. 우연히 알고리즘에 의해 칼림바 연주를 처음 본 순간 영롱하고 아름다운 소리에 전율을 느꼈고 칼림바와 사랑에 빠졌다. 칼림바를 배우고 연구하면서 음악교육의 새로운 바람을 불어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칼림바 교육을 시작하였다." ▲ 한국칼림바음악교육협회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 달라. "사단법인 칼림바코리아는 국내 1호 칼림바 협회이자, 국내 1호 칼림바 민간 자격 등록기관인 한국칼림바음악교육협회를 전신으로 하고 있다. 바로 국내1호 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오늘도 눈이 내리 내요" 학인의 전화다. "무슨 말씀이세요. 4월인데요. 저 사는 동네, 성북동은 쾌청합니다." "아 네, 저의 마음에 눈이 내린다는 것입니다."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학인의 마음의 온도,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침묵이 대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이라는 것은 폭은 함을 상징도 하지만 매섭고 우중충한 날씨가 되기도 한다. 특히 시인들에게는 눈에 대한 인식이 트라우마인 경우도 있다. 시간은 1945년이다. 용정의 3월 초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용정역에서 2백 리나 떨어진 두만강 변의 한국 영토인 상삼봉역(上三奉驛)에는 그날따라 정갈한 농지기(혼수 婚需의 전라도방언)를 입고 나온 시골 사람이 붐볐다. 눈은 내리면서 얼어붙고 있다. 그날의 눈은 눈물을 흘리면서 휘날리는 것이다. 모두가 긴장된 모습들이다. "저기 온다, 저기." 시선들이 한곳으로 쏠렸다. 백발이 성성한 윤영석 앞으로 흰 상자 하나가 건네졌다. 차가운 시간의 공간에서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고인이 된 시인의 유골은 눈이 내리는 상삼봉역에 말이 없이 내린 것이다. 별의 시인, 서시의 동주는 말이 없이 돌아왔다. 모든 것이 멈춤의
(전남 보성=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보성군민들을 위한 24여 년의 지역정치와 생활정치를 펼쳐 온 임영수 전 전남도의회 의원(지난달 24일 사퇴)이 6.1 지방선거 보성군수에 출마한다. 지방 기초자치단체 보성 의원으로서 6선 기록을 가진 임영수 더불어민주당 보성군수 예비후보는 "농민들에게 실질적 이득이 가도록 행정해야 한다"라고 우선 출마의 변을 밝혔다. 지난 1일 전남 보성군 보성역 앞에 임시 캠프를 차린 임영수 더불어민주당 보성군수 예비후보를 직접 만나 그가 가진 정치철학과 군민들을 위한 정치인으로서의 자세 등을 상세히 들어 보았다. 임 예비후보는 먼저 농촌기본소득단계별지급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농촌기본소득은 '농촌지역' 모든 주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직업이 농민인 경우에만 지급하는 '농민기본소득'과 다르다. 도농간 격차 해소와 인구유입을 통한 국토균형발전의 수단으로 제기된다. 현재 보성인구는 4만이 무너져, 3만 9천여 명이라고 임 예비후보는 말한다. 임 예비후보는 전시적 행정이 아닌 행동하는 기초자치단체장이 되길 원하고, 보성군 녹차 산업 발전에 남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임 예비후보는 "보성이 지리적 요건상 고흥, 벌교 등과 지나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절친이 몇이나 되세요?" 학인의 물음이다. 절친, 다섯 명이면 잘 산 인생이란다. 학인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선 휴대 전화기에 저장된 숫자를 본다. 600여 명이 저장됐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다 절친은 아니지 않은가. 학인은 로빈 던바(Robin Dunbar·옥스퍼드대) 교수가 30년간 분석한 자료를 들어가며 말을 이어간다. 참고로 던바 교수는 '사랑에 관한 연구'와 같은 흥미로운 저서의 심리학자다. 던바 교수는 인간이 주저 없이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사회적 뇌'는 150명이라 한다. 150명이라는 수는 인간이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공동체의 크기를 가리킨다. 피그미족이 이루는 공동체는 150명이다. 피그미족을 예로 든 것은 신체가 작은 인간이 가장 순수하게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종족을 하나의 사례로 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10년 동안 조사한 결혼식의 하객은 평균 144명이었다. 수천만 명이 도시에 모여 살지만, 인류가 소속감을 느끼는 공동체의 크기는 일정한 수준이라 설명한다. 던바 교수의 분석은 친밀이란 인간이 이루는 공동체의 크기를 친밀함에 따라 구분이 된다. 우정의 원리라는 가설로 절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한국 시단에 영글진 시(詩)의 씨앗은 단연 이규보(1168~1241)에서 시작된다 해도 좋다. 이규보 시인 하면 술의 끝에 시가 흐르고 있다. 열한 살에 숙부가 장난삼아 시를 짓게 하면서 ‘지(紙)’자를 운(韻)으로 주었다. 옛 선비들은 시의 운을 주는 것이 보편이었다. '기나긴 종잇길에 모학사(붓)가 가고/ 술잔의 마음은 항시 국선생(누룩)에 있다.' 종이에 연상되는 것은 붓이다. 거기에 이어지는 행(行)에 술잔을 내세운 것이 섬 듯, 혀를 내두를 시성(詩聖)이 아니런가. 분명 11세의 소년으로 엉뚱하기 이를 데 없다. 숙부는 물론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규보의 집안은 하인이 80여 명이라는 것을 보면 여유 있는 집안이다. 규보 시인이 11세에 술맛을 알았다는 것은 생물학적 논리로 규정하지 말자. 시성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더욱이 이 시인의 주량과 술을 즐긴 나이를 가늠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무의미다. 이 시인이 술을 좋아한 것은 분명하다. 그의 시편에는 '시의 즐거움', '술의 즐거움'이 따라다녔다. 이규보는 2만 수의 시를 남겼다는 평론이다. 하지만 상당수가 유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술은 시가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이태석 신부가 배추밭을 일구고, 김근태 의원이 옆에서 보고 있었다." 학인의 꿈 이야기다. 꿈인즉, 이태석 신부가 멀리 아프리카 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에서 선교를 시작한다. 가난(家難)만 있고 부유(富有)가 없다. 빈부격차도 없다. 톤즈에서 주민을 위해 헌신하던 이태석 신부의 기록 영화다. '울지마 톤즈' 영상을 보다가 잠들어 꾼 꿈이 아닌가 싶다는, 부연설명에 이해가 됐다. 그런데 김근태 의원의 등장은 무엇이냐 물었다. 학인도 밋밋한 꿈이라며 피식 웃는다. 다만 이태석 신부와 김근태 의원같이 선하디선하고 소명의식이 뚜렷한 선인(善人)이 천국에서도 공동체를 만들어 김치를 밥상에 올리는 모양이라는 해석이다. 김근태 의원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 군사정권하에 모진 고문과 옥살이를 당했다. 후일 의원이 됐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일찍 저세상 사람이 됐다. 이태석 신부는 선교지 톤즈에서 성당보다 학교를 먼저 짓고 교육과 의료 활동을 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한국에서 보지 못한 두 가지를 보았다. 금방이라도 손바닥에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무수한 밤하늘의 별‘과 ’손만 내밀면 금방 터질 것 같은 투명하고
(경남 하동=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한국근현대차(茶)산업의 선구자이자 산증인인 명인 홍소술 옹이 8일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전통식품명인 30호 홍소술옹은 1958년 전쟁이 할퀴고 가 폐허가 된 자리에 곡식이 아닌 차(茶)나무를 심었던 우리나라 차 사업의 선구자다. 2007년 대통령 산업 포장증을 수상하고 죽로차 명인으로 지정되었다. 한국차생산자연합회 회장을 맡아 대한민국차산업발전에도 기여했다. 유족 측에 따르면 홍소술 옹은 "우리차의 정신과 가치는 국민들의 차에 대한 관심도에 달려 있으니, 한국차산업문화 발전을 위해 우리나라 차산업인들과 차문화인들이 함께해야 한다"며 "이같은 마음으로 한국차산업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라"고 유언을 남겼다. 우리차산업과 차문화에 대해 마지막까지 걱정해왔던 죽로차명인 홍소술 옹이 이날 오전 숙환으로 별세하자 전국차문화산업인들의 추모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홍소술 옹은 차 나무를 재배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시절 전통차 복원과 다도문화에 뜻을 가지고 하동 화개면에 야생 녹차 재배를 시작했다. 이 후 야생 녹차 재배를 위해 매일 산을 오르내리며 풀을 뽑고 돌을 고르며 야생녹차에 대한 애정을 더욱 키워 나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아직은 찬 바람 속의 매화가 눈을 비빈다. 한 권의 시집으로 후학의 관심을 받는 시인 김수영은 창경궁 매화를 유난히 좋아했다. 김수영 시인이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았었다. 김수영 시인과 더불어 김종삼, 조병화, 박태진 시인, 소설가로 이병주, 장용학, 유주현, 김광식도 지난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작가마다 행사들이 있었다. 유독 눈여겨 보였던 행사가 김수영 시인이다. 김수영 시인은 1959년에 펴낸 <달나라의 장난> 한 권의 시집이 전부다. 그가 남긴 시는 어림, 180여 편, 산문 100여 편, 한편의 단편소설이 전부다. 그렇지만 김수영 시인은 특별한 시인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김수영 시인 관련 석·박사 논문이 330여 편에 달한다. 180수의 시, 한 권의 시집을 가진 시인에게 학문적으로 접근한 후학이 많다는 것은 어떤 특별함일까?. 그의 시에는 시의 핏줄이 선연하다. 김수영을 읽으면 첨단과 구식이 자유롭게 넘나든다. 김규동 시인은 "시집이 많아서 좋은 시인만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스승 김기림 시인이 시집이 3권이 전부인데 자신의 시집이 배가 더 많은 6권을 냈다며 스승에 부끄럽다 했다.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