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한 사극이 세계를 건너고 있다. 조선의 왕과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영국과 프랑스, 미국을 넘어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흥행 수치와 평단의 반응을 넘어, 이 영화는 지금 '한국적 서사'가 어떻게 ‘보편의 언어’로 확장되는지를 보여준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왕과 사는 남자>가 세계를 유영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해외 개봉 소식이 아니라, 한국 서사의 새로운 확장에 대한 징후다. 미국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관객 지수 96%를 기록하며, 북미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이미 <범죄도시4>, <서울의 봄>, <극한직업>의 북미 성적을 넘어서는 흐름은 이 영화가 지닌 힘을 방증한다. 유럽의 시선은 냉정하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영국의 가디언은 이 작품을 "15세기 폐위된 군주의 피신을 다룬 생동감 있는 한국 사극"이라 평가하며, 배우 유해진의 연기가 서사를 지탱하는 중심축이라고 짚었다. 동시에 우화적 서사의 균열을 지적하기도 했다. 반면 아시아의 평단은 훨씬 깊은 공감의 층위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한국 현대 시비의 효시는 김소월(金素月)이다. 1968년 한국일보사 주관으로 서울 남산에 소월의 시비가 건립됐다. 일명 소월길이다. '진달래꽃'을 새긴 그 돌은 한국에서 최초로 공공장소에 세워진 근대 시인의 시비로 기록된다. 시비(詩碑)가 처음 세워진 장소가 남산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도성의 안산(案山)이자 서울의 상징인 그 산은 오래전부터 한국인의 정서가 모이는 곳이었다. 그 자리에 소월의 '진달래꽃'이 새겨졌다는 것은, 당대 사람들이 이미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시가 무엇인가'를 직감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진달래꽃'은 1922년 <개벽>에 발표된 이후 백 년이 넘도록 한국인의 마음속에서 살아 있는 시다. 7·5조 민요조 리듬과 이별의 정한을 억누르면서도 꽃을 뿌리는 역설의 미학은 어느 시대에도 낡지 않았다. 시비는 문단이 아니라 국민이 먼저 알아본 시의 자리에 세워진 셈이다. 집계 가능한 범위에서 단일 작품으로 가장 많은 시비를 거느린 시인은 윤동주(尹東柱)다. 그의 '서시'는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1968년 건립)를 비롯해 원주 미래캠퍼스, 일본 도시샤대학 이마데가와 캠퍼스, 우지 강변 등에 각각 독립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경제위기의 그림자는 언제나 약한 곳부터 덮친다. 금리가 오르고 경기가 식어갈수록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기업의 재무제표가 아니라 서민들의 식탁이고, 가계부이며, 결국 한 사람의 삶이다. 빚은 숫자로 기록되지만, 파산은 삶으로 기록된다. 이러한 시대의 한복판에서, 무너지는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한 사람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서민금융의 제도와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무형 전문가, 조성목 원장이 다시 ‘서민의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사단법인 서민금융연구원은 4월 5일, 연구원을 설립하며 초대 원장을 맡았던 조성목 전 원장이 제4대 원장으로 공식 취임했다고 밝혔다. 연구원 설립 10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그의 복귀는 단순한 인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위기의 서민금융 현장을 다시 점검하고 방향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가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 "통계가 아니라 사람을 보겠다" 조성목 원장은 취임사를 통해 "통계 속 숫자가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는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연구원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 말은 그의 오랜 현장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정책을 만드는 자리에도 있었고, 금융 범죄를
한국 문학계에는 작가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유난히 많다. 특히 시인의 이름을 내건 문학상은 하나의 단체가 아닌 여러 단체가 각각 제정하고 운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윤동주, 김소월, 정지용 등의 사례에서 보듯, 한 작가의 이름 아래 여러 문학상이 공존하는 이른바 '복수 주최 문학상' 구조는 한국 문학계의 독특한 생태계를 보여준다. 이는 작가의 문학적 위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문학상의 권위와 공정성 문제를 함께 생각하게 한다. [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한국 문학계에서 작가의 이름을 딴 문학상은 단순한 시상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특히 한 작가의 이름으로 여러 단체가 각각 문학상을 제정하고 운영하는 이른바 ‘복수 주최 문학상’ 현상은 그 작가의 문화적 위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 문학계의 다층적 생태계를 드러낸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윤동주 시인이다. 한국문인협회가 제정한 윤동주문학상은 오랜 전통과 권위를 이어오고 있으며, 윤동주기념사업회, 대학, 문학 단체 등 여러 기관이 각기 다른 성격의 윤동주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상이 있는가 하면, 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문학상, 문예지와 문학 단체가 공동 주최하는 상도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본지 편집국장 = 20세기 이후 현대 민주주의 이론을 정립한 독일의 대표적 철학자 Jürgen Habermas(위르겐 하버마스)가 14일(현지시간)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스타른베르크에서 별세했다. 향년 96세. 한 세기를 관통하며 민주주의의 철학적 기초를 탐구해 온 거장의 퇴장은 단순한 학자의 부고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날 민주주의가 직면한 근본적 질문을 다시 우리 앞에 던진다. 우리는 지금 서로 대화하고 있는가. 하버마스는 20세기 이후 현대 민주주의 이론을 정립한 대표적 사상가다. 철학과 사회학, 정치학을 넘나들며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했다. 그의 대표 저서 The Structural Transformation of the Public Sphere(<공론장의 구조변동>)과 The 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의사소통 행위 이론>)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의 토론과 의사소통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철학적으로 정립한 기념비적 저작으로 평가된다. 그가 제시한 핵심 개념은 바로 '공론장(公共論場, Public Sphere)'이다. 공론장이란 시민들이 공적인 문제를
미당의 시정신을 계승해 온 문학 단체 미당시맥회가 제12대 회장으로 이혜선 시인을 선임했다. 오랜 창작 활동과 국내외 문학 교류를 통해 시적 지평을 확장해 온 그는, 전통의 계승과 새로운 시의 모색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짊어지게 됐다.[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미당시맥회 운영위원회는 제12대 회장에 이혜선 시인을 선임했다고 12일 밝혔다. 이 신임 회장은 1981년 월간 '시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후 꾸준한 창작 활동과 문단 활동을 병행해 온 중견 시인이다. 그는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장과 문화체육관광부 문학진흥정책위원을 역임했으며,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국제PEN한국본부 자문위원, 동국대학교 외래교수 등을 지내며 문학과 제도권을 잇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또한 인도 펀잡 지역에 본부를 둔 국제윤리학회에서 저명학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해 '둔촌 이집문학상'과 'Literary Asia' 그랑프리 문학훈장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작품성과 위상을 인정받았다. 시집 <새소리 택배>, <흘린 술이 반이다>, <시간의 독법> 등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온 그의 시는 한국을 넘어 이탈리아, 독일, 이집트, 그리스,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이백과 두보는 동양이 낳은 시의 거목이다. 시대를 거슬러 당나라 천보 3년(744년) 여름, 낙양의 한 주점에서 두 시인 거인이 마주 앉았다. 한 사람은 이미 한림학사로 천하에 명성을 떨친 이백(李白, 701~762)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아직 무명의 젊은 시인 두보(杜甫, 712~770)였다. 이백은 44세, 두보는 33세. 열한 살 차이의 이 만남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당 시가(詩歌)의 황금기, 성당(盛唐)을 상징하는 ‘태양과 달의 교차’로 후대에 영원히 기록되는 계기가 되었다. 술잔을 사이에 두고 시작된 대화는 시 한 수, 한 수로 이어지며 중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우정을 꽃피웠다. 그들의 낙양 만남 이야기와 그 우정이 당나라 문학에 미친 깊고 넓은 여파를 더듬어 본다. 이백은 고력사(高力士) 등 권력자들의 미움을 사 장안을 떠나 고향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자유분방한 천재 시인에게 관직은 어울리지 않았다. 낙양에 잠시 머물며 술 한 잔을 찾던 그는 주점 말석에 앉아 조용히 취해 있었다. 그곳에 두보가 나타난 것이다. 진사 시험에 낙방한 뒤 고민이 많던 33세의 두보는 이백의 소식을 듣고 일부러 찾아왔다. 은
소설의 첫 문장은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가 열리는 순간이다. 그 한 줄에는 작가의 세계관과 언어의 결, 서사의 방향과 철학이 농축되어 있다. 최창일 시인은 카뮈, 톨스토이, 김유정, 오웰 등 문학사의 대표적인 첫 문장들을 통해, 왜 첫 문장이 곧 작품의 운명을 결정하는지, 그리고 그 문장이 어떻게 독자를 현실에서 문학의 세계로 건너가게 하는지를 짚어본다.[편집자 주]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소설의 첫 문장은 단순히 이야기의 시작이 아니다. 그것은 독자가 들어서는 세계의 문이며, 작가가 자기 세계를 여는 선언이다. 한 문장 속에는 작품 전체의 정조, 세계관, 시점, 언어의 결이 농축되어 있다. 독자는 그 한 줄을 통해 작가가 어떤 눈으로 세계를 보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지금 어디로 들어가고 있는지를 직감적으로 감지한다. 좋은 첫 문장은 문학적 긴장을 품고 있으며, 독자에게 '이 세계를 계속 보고 싶다'라는 유혹을 던진다. 첫 문장은 가장 먼저 독자의 감각을 사로잡는다. 문장의 길이, 리듬, 어조, 단어 온도는 작품의 정서를 결정짓는다. 카뮈의 <이방인>은 이렇게 시작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