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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민주주의다"

'공론장'을 잃어가는 시대 … SNS 분열과 정치의 진영 대립 속에서 다시 묻는 하버마스의 질문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본지 편집국장 = 20세기 이후 현대 민주주의 이론을 정립한 독일의 대표적 철학자 Jürgen Habermas(위르겐 하버마스)가 14일(현지시간)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스타른베르크에서 별세했다. 향년 96세.

한 세기를 관통하며 민주주의의 철학적 기초를 탐구해 온 거장의 퇴장은 단순한 학자의 부고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날 민주주의가 직면한 근본적 질문을 다시 우리 앞에 던진다.

우리는 지금 서로 대화하고 있는가.

하버마스는 20세기 이후 현대 민주주의 이론을 정립한 대표적 사상가다. 철학과 사회학, 정치학을 넘나들며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했다.

그의 대표 저서 The Structural Transformation of the Public Sphere(<공론장의 구조변동>)과 The 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의사소통 행위 이론>)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의 토론과 의사소통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철학적으로 정립한 기념비적 저작으로 평가된다.

그가 제시한 핵심 개념은 바로 '공론장(公共論場, Public Sphere)'이다. 공론장이란 시민들이 공적인 문제를 자유롭게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사회적 공간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권력이나 강제가 아니라 이성과 논리다.

시민은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토론에 참여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주체이며, 민주주의는 선거라는 제도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지속적인 대화와 토론 속에서 유지된다는 것이다.

1929년 독일에서 태어난 하버마스는 어린 시절 나치 독일의 몰락과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경험했다. 이러한 역사적 체험은 그의 철학적 사유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는 독일 사회가 과거의 범죄를 외면하거나 미화하려는 움직임에 맞서 지식인의 책임을 강조했고, 1980년대 독일 지성계를 뒤흔든 Historikerstreit(역사학자 논쟁)에서도 나치 범죄를 정면으로 성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평생 던진 질문은 분명했다.

인류는 어떻게 폭력과 독재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는 그 해답을 '의사소통'에서 찾았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서로를 설득하며 합의를 만들어 가는 사회, 바로 그 공론장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토대라는 것이다.

이 철학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깊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 우리의 공론장은 과연 건강한가.

한국 정치의 현실을 보면 갈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정책을 둘러싼 토론보다는 진영 간 공격과 비난이 정치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설득과 타협 대신 편 가르기가 정치의 일상이 되어 가고 있다.

문제는 정치권만이 아니다. 인터넷과 SNS(Social Networking Service) 공간 역시 갈등의 장으로 변해 가고 있다.

SNS는 누구나 발언할 수 있는 새로운 공론장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가짜 뉴스(fake news)와 혐오 표현, 감정적 언어가 확산되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서로 다른 의견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는 '확증의 공간'으로 기능하는 경우도 많다.

대화는 설득이 아니라 공격이 되고, 토론은 합의가 아니라 분열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버마스가 제시한 공론장의 조건은 명확하다. 첫째,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권력이나 돈이 아니라 이성과 논리로 설득해야 한다. 셋째,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합리적 합의(合理的 合意, Rational Consensus)를 찾아야 한다.

이 세 가지 원칙이 무너질 때 공론장은 사라지고 민주주의 역시 흔들린다.

민주주의는 단지 투표라는 절차로만 유지되는 제도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토론하는 대화의 문화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말할 자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사회다.

말은 넘쳐나지만 경청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공론장도 존재하기 어렵다.

하버마스는 평생 대화의 힘을 믿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토론하고 설득하며 공통의 결론을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민주주의는 국회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광장에서, 학교에서, 카페에서, 그리고 일상의 대화 속에서 자란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다시 질문하게 된다.

지금 우리의 사회는 과연 서로 말할 수 있는 공론장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듣고 있는가.

하버마스의 죽음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어쩌면 바로 이 질문일 것이다. 민주주의의 미래는 그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 속에서 결정될 것이다.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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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서울시민문학상 시 부문 본상에 김예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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