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나라를 북한에 바치는 자에게 표를 줄 수 없다. 버스에서 주부의 말이다. 투표로 나라를 구해야 한다고 한다. 확신에 찬 주부의 말은 시도반에 이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펼치게 한다. "모든 시대는 그 시대를 정직하게 바라본 사람에 의해 다시 쓰인다." 글쓴이 이영희의 말이다. 그는 기자였고, 교수였고, 사상가였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 '질문'을 던진 사람이었다. 우리가 아무도 말하지 않던 '분단의 논리'와 '이데올로기의 감옥'에 대해, 질문하고 답한다. 1970년 출간된 <전환시대의 논리>는 금기의 영역을 정면으로 다뤘다. 지금도 ‘그 책, 봤다’라는 말에는 묘한 울림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불편함 속에, 우리는 자주 외면해온 진실의 언어가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 이 책이 던지는 첫 질문이다. 우리는 왜 남북으로 갈라졌고, 그 상태로 고착되었으며, 그것을 마치 ‘운명’처럼 수용하게 되었는가. 이영희는 이렇게 묻는다. “이념은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는가, 아니면 인간을 수단으로 만드는가?”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비판한다. 단순한 반미가 아니다. ‘왜 미국의
(세종=미래일보) 박인숙 기자 = 제비는 해마다 같은 장소로 돌아와 둥지를 튼다. 봄의 전령으로 알려진 제비는 매서운 추위를 피해 남쪽 나라에서 겨울을 보낸 후, 봄기운이 스며드는 3~4월이면 자신이 둥지를 튼 그곳으로 다시 귀향한다. 계절의 순환을 따라 자연스럽게 돌아오는 것이다. 제비의 귀환은 긴 기다림 끝에 맞이하는 푸른 희망이며,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다. 혁명처럼 벅차고, 이슬처럼 맑은 그 감동은 우리의 가슴에 환희로 번진다. 가지마다 낡은 것들은 사라지고, 새로운 생명이 숨을 틔운다. 제비는 주로 사람이 사는 집의 처마나 건물 외벽에 둥지를 튼다. 이는 포식자로부터의 안전, 바람과 비를 피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연못이나 논밭 등 먹이가 풍부한 장소가 인근에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과 제비는 오래전부터 공존해 왔다. 고향집 처마에도 어김없이 제비 가족이 돌아왔다. 그들은 둥지 속에서 새끼를 기르다 가을의 끝자락까지 머물다 떠나곤 했다. 고향은 어촌이지만, 소나무와 참나무가 자라는 낮은 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보리와 감자, 콩 같은 작물들이 자라는 그 땅은 야생 생물에게는 낙원이었다. 초저녁이면 산 너머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울던 부
(서울=미래일보) 최현숙 기자 = 한 해의 절반가량에 해당하는 달, 6월이다. 초여름 길목의 햇살은 더욱 깊어졌고, 바람은 한층 푸르러졌다.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은 저 언덕머리까지 깃발처럼 출렁이고, 나무들은 묵묵히 제 가지를 뻗는다. 장미의 겉잎이 바삭하게 말라갈 무렵, 계절은 제 몫을 다하듯 여름의 속살로 스며든다. 이름 모를 들풀들이 골목 어귀에 무성히 피어나고, 산과 들은 침묵 속에서 초록을 부풀린다. 시인은 6월을 '빛나는 상처'라 말하고, 농부는 '수확의 약속'이라 부른다. 한여름의 들판에서 땀으로 일궈가는 농부들의 등줄기에서는 이미 가을로 향하는 몸짓이 꿈틀거린다. 논두렁에 앉아 허리를 펴는 짧은 숨결 속에도 씨앗을 뿌릴 때의 기도와 거두어야 할 날들의 무게가 함께 얽혀 있다. 이 계절을 건너는 이들은 늘 한걸음 앞을 본다. 누군가는 기억을 꺼내는 회상의 달로, 또 누군가는 새로운 다짐을 품는 시간으로 이 달을 맞는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6월은 무엇으로 다가오는가. 우리는 무엇을 보고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는가. 기억의 저편을 더듬다 보면, 6월은 단지 아름답기만 한 달은 아니다.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이름 아래, 그 숲 어딘가에는 바람에 나
(서울=미래일보) 박인숙 작가 = 2025년 상반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천국보다 아름다운'이 종영했다. 이 드라마에서 그려진 '천국'은 유유히 날아다니는 나비들과 바람 없는 날의 햇살, 수북한 구름을 안은 하늘과 들꽃으로 가득한 골목, 단아한 주택들이 있는 마을이었다. 그곳엔 고요한 일상과 평화로운 사람들이 있고, 이미 세상을 떠난 그리운 이들과의 재회도 가능했다. 낯설지 않은 모습이었다. 우리가 지금 간절히 바라는 삶과 닮아 있었다. 드라마는 사후 세계를 상상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과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질문한다. 무너짐 대신 상상과 희망으로, 절망 대신 견뎌냄으로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최근의 현실과 맞물리며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그 여운이 이어진 채,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시작됐다. 또 한 번 역사의 분기점 앞에 선 우리는, 다시금 '우리의 나라'를 묻고 있다. 나는 지난겨울을 잊지 못한다. 권력의 유한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던 자가 계엄령을 선포하려 했다. 민주주의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법 위에 군림하려던 그 시도는, 이 나라가 지닌 민주주의의 뿌리를 한순간 흔들었다. 우리는 그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2006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은 한강 변에 나타난 돌연변이 괴물이 사람들을 해치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 이면에 자리한 메시지는 물리적 괴물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괴물성’이다. 괴물은 과학의 오만, 권력의 무능, 책임 회피의 집합체로 만들어진다. 영화 속 괴물은 강을 기어 다니며 사람을 삼켰지만, 우리 사회엔 지금, 언어로 사람을 삼키는 '사람괴물'이 넘쳐난다. 언어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언어가 점점 '괴물화'되고 있다. 혐오와 조롱, 비꼼과 편 가르기가 난무하는 SNS 공간, 정치인의 막말, 언론의 선정적 기사, 연예인의 무책임한 발언까지, 공적 언어는 더는 품격을 잃은 정도가 아니라, 흉기와 같다. 말은 살을 에는 칼처럼 날카롭고, 누군가를 겨눈다. 때로는 개인을 집단 린치하는 데 동원되기도 하고, 때로는 거짓을 진실처럼 포장해 사회를 왜곡시키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괴물은 처음부터 괴물이 아니었다. 영화의 괴물도, 사회의 괴물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의 무책임한 방치, 누적된 분노, 외면받은 상처, 그리고 체계적 부조리가 결국 하나의'‘형상'을 만들어낸다. 지금 한국 사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본지 편집국장) = 2025년 6월 3일, 제21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가 사상 초유의 상황 속에서 조기에 치러진다.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재임 중 국가 비상사태를 명분으로 한 일방적인 비상계엄 선포를 강행했으며, 이는 국회의 동의 절차를 무시하고 헌법상 권력 분립 원칙을 심각히 침해한 행위로 평가받았다. 헌법재판소는 이를 헌법 위반 및 국민주권 훼손 행위로 판단하고, 헌정 사상 두 번째 대통령 파면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역사의 한 페이지 앞에 서 있다. 이 같은 사태 이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권 교체의 의미를 넘어, 국민주권의 회복과 민주주의의 복원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특히 오늘부터 시작된 사전투표에는 출근 전 투표소를 찾는 시민들, 가족과 함께 방문하는 유권자들의 모습이 이어지며 높은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오늘은 그 대통령선거의 사전투표 첫째 날이다. 전국 각지의 사전투표소에는 투표용지를 손에 쥔 시민들의 진지한 발걸음이 이어진다. 어떤 이들은 출근길을 잠시 멈춰, 또 어떤 이들은 자녀의 손을 잡고 투표소를 찾는다. 그들은 단지 한 표를 던지는 것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수수께끼 같은 시인이에요." 랭보 시인을 두고 황현산 평론가의 말이다. 시인은 보편적으로 나이 들면서 시의 세계가 무르익는다.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 1854~1891)는 반대였다. 10대에 시를 완성했고, 19살에 완전히 시를 그만두었다. 세상에 대한 분노, 혁명, 예언, 욕망, 도피, 언어의 실험을 다 해보고는 "이제 됐다"라는 듯 사라졌다. 허허 그 이후가 가관이다. 시를 쓰는 대신 무기 밀매상이 되었다. 시와 무기 밀매상은 하늘고 땅 사이 거리감이다. 이런 삶이 가능한가? 랭보에게는 가능했다. 그는 시가 '삶을 구원하지 못한다'라는 것을 알아버린 천재였다. 프랑스 북동부의 샤를빌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범상치 않았다. 가출을 밥 먹듯 했다. 학교에서 언어에 능통, 프랑스어가 아닌 라틴어로 시를 지어 선생들을 당황 시켰다.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건 15세 무렵이다. 그리고 16세에 쓴 시 '지옥에서의 한 철'은 지금도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고백으로 평가된다. 민음사에서 펴낸 <지옥에서 한철>이 1974년에 출간 1판 18쇄, 2015년 2판 25쇄, 2024년 3판 1
(광주=미래일보) 박인숙 작가 = 민주주의의 이정표인 광주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5월의 흰 꽃잎이 바람을 타고 허공에 흩날리고, 젖은 도로 위에는 숨결처럼 흩어진 잎들이 뒹굴었다. 이 계절이 오면, 우리는 광주를 떠올린다. 그리고 우리는 묻는다. 침묵하는 자들, 그들은 누구인가. 비겁자들이다. 양심을 져버린 무리들이다. 그들을 땅속 깊이 묻은 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진실을 왜곡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민주투사들은 여전히 깨어 있다. 민주주의라는 불씨를 가슴에 품고 쓰러져 간 이들의 눈물은 비가 되어 땅을 적신다. 계엄군의 총칼 앞에서도 타협을 거부하고 싸웠던 이들. 그들의 생명을 빼앗고 그 진실을 깊이 묻어버린 자들은 누구인가. 우리는 여전히, 그들의 진정한 이름을 듣지 못했다. 1980년 5월, 광주.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소외를 겪던 도시에서, 11공수여단의 유혈 진압은 비극의 서막이 되었다. 계엄군은 상가와 학원에 난입해 시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젊은이들을 무차별 폭행하고 대검으로 찔렀다. 마침내 시민들은 참지 못하고 민주주의를 향한 거리 투쟁에 나섰다. 그들은 죽음을 각오했다. 광주는 전쟁터였다. 거리엔 부상자가 속출했고, 헌혈 행렬은 끊이지 않았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는 상상력이다. 문명의 역사는 언제나 상상력에서 시작됐다. 상상력을 예술가나 어린아이들의 전유물로 생각한다. 역사 속 가장 위대한 변화는 상상력이 풍부한 지도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세계를 바꿔온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인문학은 상상력의 학문이다. 더더욱 시(詩)는 상상의 사유영역이다. 영상 예술인 영화는 상상력의 극이다. 시와 노래가 사랑받는 것은 상상력이 만드는 사유기 때문이다. 로마의 시저는 제국을 상상했다. 미국의 링컨은 해방된 인간 공동체를 그렸다. 김구는 통일의 한국을 꿈꾸었다.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은 것에 국민은 애석하다. 그들 모두는 당시에는 '비현실적'이란 소리를 들었지만, 결국 그들의 상상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실현으로 나아가거나 키워졌다. 이처럼 상상력은 개인의 능력을 넘어 시대를 움직이는 구조와 체제를 바꾼다. 법도 마찬가지다. 법은 현실을 규정하는 도구이지만, 그 바탕에는 '그 사회가 바라는 세계'를 담은 상상력이 있다. 법은 단순히 금지하거나 허용하는 규칙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이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지에 대한 정신적 설계도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이새날 서울시의회 의원(교육위원회, 국민의힘, 강남1)은 7일 서울고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제54회 전국소년체육대회 서울대표 결단식'에 참석해 서울 대표 선수단을 격려했다. 이날 결단식에는 학생선수 856명을 비롯해 학부모, 교사, 지도자 등 약 1,000명이 함께했으며, 학생선수단 입장, 축하공연, 격려사, 단기 전달식, 선수 선서, 스포츠 가치 실천 선언 순으로 진행됐다. 이새날 의원은 격려사를 통해 "서울을 대표해 출전하는 우리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노력한 만큼 값진 결과를 거두길 바란다"며 "학생선수들이 즐겁고 안전하게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대표 선수단은 오는 5월 24일부터 27일까지 경상남도 김해 일원에서 열리는 제54회 전국소년체육대회에 참가해 35개 종목에서 기량을 겨룰 예정이며, 금메달 80개 이상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생선수들의 경기력 향상과 안전한 훈련 환경을 위해 훈련비, 안전설비비, 지도자 인건비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학습권과 인권 보장을 위해 방과 후와 휴일을 활용한 훈련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한편 이새날 의원은 지난해 제53회 전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한국의 근간, 격동의 소식을 듣는 독일거주 학인의 편지다. 편지는 그리 흥미롭지 않다. 독일의 민주주의 벌판이 오늘에 이르게 된 과정을 소상하게 들려준다. "독일은 20세기 인류 역사상 가장 어두운 범죄 국가였던 나치 독일로부터 어떻게 오늘날의 가장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로 변화할 수 있었을까?”로 시작된다. 민주주의 들판의 여정은 단순히 제도의 변화나 외세의 개입이 아니었다. 독일 사회 내부의 성찰과 과거 청산, 교육, 그리고 법적·도덕적 책임의 수행이라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우선, 독일의 탈 나치 화(Entnazifizierung)는 단지 정치적 권력에서 나치 인물을 제거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연합국은 나치 지도자들을 국제법정에 세워 뉘른베르크 재판을 단행했고, 전쟁범죄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독일 내부에서 벌어진 '기억과 사과의 문화'다. 전후 세대는 자신들의 부모 세대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 침략전쟁, 인권유린에 대해, 묻고, 따지고, 반성했다. 정치가 아닌 시민사회와 지식인들이 주도한 이 '과거사 청산'의 흐름은 독일 민주주의
(서울=미래일보) 최현숙 기자 = 봄이 옅어져 가는 오월은 따스한 햇살과 함께 여름 길을 향해 조용히 걸어가는 계절이다. 낮과 밤을 가르는 빛마저 부드럽고 환해지며, 무성한 초록은 바람에 살며시 흔들린다. 계절의 경계가 흐려지는 길목에서 또 다른 풍경이 스며들고, 사람의 마음도 더 깊고 푸르러진다. 오월은 감사와 고마움 뒤에 찾아오는 미안함이 마음 한쪽에 꽃잎처럼 내려앉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자라는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한때 작고 여렸던 나의 시간을 들여다보게 되고, 학창 시절 등을 토닥이던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도 떠오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깊이 다가오는 것은 어버이날이다. ‘엄마’, ‘아버지’라는 이름은 가슴 깊이 접어 두었다가도 그리움으로 다시 피어나는,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월은 살아 있는 동안 더 많은 손을 잡고, 더 많은 눈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게 한다. 또한 누군가의 품을 떠올리게 하며, 지나온 시간 속에 내가 받았던 고마움을 되새기게 한다. 미처 전하지 못했던 감사함과 너무 늦게 깨달은 미안함이 오월의 바람을 타고 마음을 흔든다. 감사는 종종 늦고, 사랑은 말보다 깊으며, 미안함은 오래도록 가
(서울=미래일보) 박인숙 작가 = 석양이 바다 위로 노을 져 간다. 유성들이 민둥산 뒤로 달리던 밤하늘의 별들과, 검은 바다를 황금빛으로 일렁이게 했던 풍경이 5월이면 어김없이 떠오른다. 달빛이 부서지던 바다의 침묵을 깨며 노를 저어 가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파도 위에 너울진다. 차고 시린 바람을 마주하며 하늘 끝 수평선을 투사처럼 바라보시던 어머니도 생각난다. 그 침묵으로 가족을 지탱하기 위해 등에 짊어졌던 무게가 떠오르는 계절이다. 프랑스 추리 소설의 대가 조르주 심농(Georges Simenon)이 아버지를 회고하며 쓴 산문집 『아버지의 초상』에는 이런 말이 있다. "그가 떠난 뒤에야 나는 그를 만났다." 아버지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그의 부재 이후에야 가능했다는 고백이다. 심농은 말한다. 세상은 그 이름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사람들 덕분에 굴러간다고.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명의 존재들이라고, 그 진실을 조용히 증명한다. 심농처럼 나 역시 가정의 달 5월이 되면, 세월을 거슬러 아버지를 다시 떠올려보게 된다. 새벽 어스름한 어둠 속으로 조용히 배를 밀고 나가시던 아버지. 수평선 너머 침묵 속으로 사라지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다리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편집국장 =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각오로 글을 써야 한다. 영감의 잔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셔 비워야 한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소로의 속삭임' 중에서 5월의 첫날, 차 한 잔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며 문득 소로의 말을 떠올렸다. 이 말은 단지 작가에게만 해당되는 조언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삶 또한 봄처럼 영원히 계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는 깨닫는다. 사랑할 시간, 감사할 시간, 용서하고 화해할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지를. 그래서 우리는 삶이 허락한 매 순간을 아끼고, 영감의 잔, 사랑의 잔에 담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음미해야 한다. 어느덧 2025년의 3분의 1이 흘러갔다. 지금까지가 한 해를 채우기 위한 준비였다면, 이제 시작되는 3분의 2는 본격적인 출발의 시간이다. 그 출발선에 선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는 이름처럼 우리 모두에게 귀한 선물 같은 달이다. 5월은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이 이어지는 '가정의 달'이다. 여기에 하나 더, '나눔의 달'이라는 의미를 더해보면 어떨까. 나눔은 결코 거창한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참기름(참깨)은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인도지역에서 경작되고 있었다. 참깨는 향유나 의약품으로 사용되었다. 참깨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한나라 시대부터 기름으로 사용한 기록이 나온다. 한국에 사용한 시기는 삼국시대 이전부터다. 조선 시대는 양반이 주로 사용했다. 동양권에 사용되던 참기름은 한류 바람이 불며 유럽의 나라들까지 식재료로 확산, 활용되는 실정이다. 한국에서는 참기름에 대한 인식은 식재료를 넘어 진실의 차원으로 불린다. '참 군인', '참기름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참기름이 던지는 뉘앙스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완성하는 조미료의 이미지만은 아니다. 깊은 열과 압력을 견뎌낸 끝에 비로소 향기롭고 맑은 기름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참기름의 본질이다. 겉껍질을 태우고 불순물을 걸러낸 후, 한 방울씩 짜내는 그 정성스러운 과정은 진실하고 순수한 것만 남기려는 사람의 마음과 닮았다. 반면 '참 군인'이라는 말은 어떤가. 병영 안팎의 풍경 속에서 수없이 소비되는 '군인'이라는 단어가 '참'이라는 접두어 하나만으로 단번에 무게를 얻는다. 참 군인은 단순히 계급장을 달고 지휘하는 이가 아니다. 국가와 국